창세기 18:22~33은 중보기도의 대표적인 예이다. 

아브라함이 패역한 땅 소돔과 고모라를 위해 애절하게 하나님께 기도하는 장면이다. 나는 이 말슴을 읽을 때마다 가슴이 뭉클해진다. 아브라함의 간절한 기도는 그렇지만 그 기도에 대한 하나님의 반응 때문이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한낱 피조물인 아브라함의 기도에 일일이 대답하시면서 당신의 계획을 변경하고 계신다. 


'의인 오십이 있을지라도 주께서 그곳을 멸하시고 그 오십 의인을 위하여 용서치 아니하리이까'(창18;24)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내가 만일 소돔 성중에서 의인 오십을 찾으면 그들을 위하여 온 지경을 용서하리라'(창18:26) '사십오인을 찾으면 멸하지 아니하리이까... 사입인이면... 삼십인이면... 이십인이면...' 하지만 의인 십인이 없어 결국 아브라함은 기도를 그치고 만다. 


아마 그 기도를 마치고 애타는 눈물을 흘리며 돌아선 것은 아브라함만이 아니었을 것이다. 하나님 역시 의인 십인이 없는 소돔과 고모라를 향해 말 할 수 없는 안타까움과 애절한 마음이셨으리라. 어저면 아브라함이 그러한 하나님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헤아렸기에 그토록 간절하게 부르짖었는지도 모른다. 


중보기도는 하나님의 마음을 가지고 누군가를 위해 기도하는 것이며, 누군가를 대신하여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이다. 


중보기도의 모델은 다름아니 예수님이시며, 주님은 공생애 사역동안 제자들을 위해, 영혼들을 위해 누구보다도 간절하게 기도하셨다. 베드로가 주님을 부인할 것을 아셨지만 또 그가 그러한 침체에서 벗어나 제자의 길을 가도록 중보기도 하신 분도 역시 주님이 아니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