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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신곡 (단테 알레기에리)

감사또감사 2014.07.20 20:30 Views : 927

신곡 (단테 알레기에리)
-영원한 구원의 역정(歷程)-

신곡을 쓴 단테 알레기에리(Dante Alighieri)는 1265년 5월 21일, 이탈리아 피렌체에서 태어났다. 그는 한때 피렌체를 다스리던 6인의 행정위원중의 한 사람이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황제파와 교황파간의 당쟁에 휩쓸려 교황파로부터 교황과 도시를 전복시키기 위한 음모를 꾸몄다는 죄목으로 사형을 언도받았다. 그는 그의 정치적 동료들과 함께 유랑의 길에 올랐다. 이후 20여 년 동안 방랑의 삶을 보내다가 이방 땅에서 삶을 마감하게 된다.

신곡(神曲)은 이 방랑 기간 동안에 쓰여졌다. 신곡은 인간의 영원한 운명을 신앙 깊은 눈으로 바라보고 쓴 기독교 문학의 진수(眞髓)라 할 작품이다. 독일의 문호 괴테가 “인간의 손으로 만든 최고의 것”이라고 격찬한 이 작품 속에는 정치, 사랑, 철학과 문학, 고대 신화, 그리고 기독교 신학에 대한 핵심적 요소들이 들어있다.

단테는 고통의 쓰디쓴 추방생활을 하는 동안 하늘과 땅을 노래한 이 성시(聖詩)를 위해 오랫동안 뼈를 깎는 고생을 거듭하여 몸까지 여위었다. 그의 유랑의 시기가 얼마나 괴로웠던가에 대하여는 단테가 천국에서 만난 고조부의 입을 통해 “남의 빵이 얼마나 입에 쓰고, 남의 계단을 오르내리기가 얼마나 괴로운 일인가…….” 라는 말을 통해서도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그 고난 덕택에 그는 하나님께 대한 신앙을 갖게 되었고 이 장엄한 시를 쓸 수 있게 되었다. 그는 이 시가 자신의 추방생활의 고통을 상쇄시키고도 남을 의미 있는 업적이 되고 시인으로서 영예의 월계관을 쓸 수 있게 만들어 주기를 소망했다.

“생의 절반을 보낸 나는 올바른 길을 잃고 홀로 어두운 숲속에 서 있었다. / 아, 그토록 음산하고 울창하며 험한 그 숲을 어찌 다 말로 표현할 수 있으리…….”
단테의 신곡 서문이다. 이 서곡 시에서 단테는 “우리의 연수가 70이요, 강건하면 80이다.”(시90:10)고 하신 성경 말씀에 따라 “생의 절반…….”이란 말로 자신의 나이를 밝힌다. 그의 나이는 70의 절반, 곧 35세다. 이 서곡은 당시, 쓸쓸하고 황량한 추방생활 가운데서 앞길을 예측할 수 없는 어두운 삶을 살고 있던 단테의 처지를 묘사한다. 이때, 갑자기 표범과 사자, 암늑대가 그를 향해 달려든다. 표범은 육욕과 관능의 향락을 상징하고 사자는 폭력, 또는 오만을 상징하며 비쩍 마른 암늑대는 탐욕을 상징한다. 단테는 이러한 것들에 의해 영적, 정신적으로 고통을 받고 있었다. 이 괴로운 시간에 단테가 평소 흠모하던 시인 베르길리우스가 나타나 그와 함께 죽음 이후의 세계를 여행하게 된다
.
베르길리우스는 자기를 찾아와 “죽음의 그림자가 어른거리는 곳에서 울음 섞인 신음을 토해내고 있는” 단테를 구해주기를 부탁한 베아트리체의 말을 듣고 단테와 함께 지옥과 연옥을 여행하기로 결심하게 되었다고 했다. 단테는 이 여행을 통해 이 땅에서의 희노애락을 뛰어 넘어 영원한 천국의 소망을 갖게 되었으며 고난 가운데서도 올바른 신앙을 가지고 주의 말씀에 따라 살아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신곡은 지옥, 연옥, 천국, 각 편마다 33곡으로 이루어져 있고 서곡까지 합해 100곡으로 이루어져 있다. 100이란 완전을 상징하는 숫자로, 단테는 신곡이 이 상징적인 숫자를 통해 완벽한 작품이라는 것을 나타내려고 했다. 그리고 자신의 이름과 함께 작품 속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들을 실명으로 언급했다. 그렇게 함으로써 이 작품의 역사성과 당시의 사회상을 여실하게 보여주는 동시에 역설적으로 픽션의 구조를 갖추려고 한 것이다.

단테를 말할 때, 베아트리체를 빼놓을 수 없다. 이 작품에서도 베아트리체가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그녀는 단테가 아홉 살 때 만난 여성으로 그의 작품 ‘신생’에서 단테는 그녀를 처음 보았을 때부터 사랑에 빠졌었노라고 쓰고 있다.

베아트리체는 포르티나리에서 태어나 바르디 가문(단테의 가문보다 더 부유한 귀족가문)으로 결혼 해 갔으나 24세의 젊은 나이로 죽었다. 단테는 아홉 살 이후, 열여덟 살 때 한 번 더 그녀를 만났는데 그때 사랑은 보다 완전하게 단테를 사로잡았다. 그녀를 향한 단테의 사랑은 처음에는 단순히 세속적이고 육적인 것이었겠지만 그 사랑은 점차 거룩하고 영원한 것으로 변하여, 그녀의 아름다움은 신성(神性)의 반영으로 바뀌어 갔다. 그는 그 사랑을 고통으로서가 아닌, 삶의 의미와 찬미로 받아 들였다.

그녀는 단테가 기독교적 이상상(理想像)으로 생각하는 독창적인 구원(久遠)의 여성상이다. 그녀는 영원한 여성성(女性性)을 가진 아름다운 연인이고 어머니지만 동시에 최상의 미덕과 힘을 갖추고 엄격하면서도 다정스레 단테를 가장 높은 지고천까지 인도해 줄 수 있는 영적 권위를 가진 인물이기도 하다. 그녀의 아름다움과 힘, 지혜와 포용력, 거룩함은 서구사람들이 가슴 깊이 희구하고 있는 이상적인 여성상이다.

중세시대에 살았던 단테는 가톨릭의 교리인 연옥의 존재를 충실히 믿고 있었다. 이것은 개신교의 입장에서는 받아들이기 힘든 부분이다. 성경은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히9:27)라고 말씀하고 있다. 또한 크고 적은 죄에 따라 지옥과 연옥으로 나뉘어 가는 것이 아니라 '길과 진리이며 생명이신 예수를 믿지 않는 것이 곧‘ 죄이므로 예수를 구주로 영접하지 않은 사람은 누구든지 지옥으로 간다는 것이 성경의 진리이다. 그러나 독자들은 이 작품을 읽으면서 연옥의 세계가 다름 아닌 지옥의 연장선임을 깨닫게 된다. 그곳에 있는 영혼들이 괴로움을 겪는 것은 지옥의 영혼들 못지않기 때문이다.

지옥과 연옥은 굴곡 많은 인생의 한 단면들이다. 그런 길은 이성과 지성을 갖춘 베르길리우스가 안내해야 한다. 단테는 각 장면에서 의문이 일어날 때마다 베르길리우스에게 질문하고 베르길리우스는 성실하고도 자상하게 단테에게 대답한다.
그러나 베르길리우스의 역할은 거기까지다. 림보(단테는 림보를 세상에서 특별한 죄를 짓지는 않았지만 복음을 듣지 못하여 믿지 않았기에 천국에 들어가지 못한 사람들이 들어가 있는 곳, 지옥과 같은 벌을 받지는 않으나 기쁨도 없는 곳이라고 믿고 있었다.)에 살고 있는 그는 진정한 천국의 영적 삶에 대해선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천국으로 들어간 단테는 이제야말로 자신이 그토록 사랑했던 베아트리체와 함께 점점 더 위로 올라가며 무엇이든지 의문 나는 것에 대한 답을 얻는다. 그의 질문 속에는 평소 우리가 갖고 있던 질문들도 많이 있다. 예컨대 성경에 수많은 믿음의 용사들이 있는데 왜 하필이면 솔로몬에게 특별한 지혜를 주셨을까?와 같은 질문이다. 또 단테가 하나님께서는 어찌하여 우리들의 속죄를 위해 하필이면 그리스도의 죽음이란 방법을 택하셨을까 하고 의문을 가졌다. 이때 베아트리체는
“…….복종의 피조물인 인간은 스스로 보속(補贖)할 수 없으니 / 하나님께선 인간을 완전한 삶으로 회복시키고자 하나님 자신의 길을 택할 수밖에 없었으니……. / 하나님의 아들이 스스로 낮추어 육신을 입지 않고서는 / 다른 어떤 방법으로도 완전한 정의에 합당한 보상은 불가능했던 것이지요.” 하고 설명한다.

그러나 천국의 마지막에 단테는 베아트리체를 떠나 삼위일체 되신 하나님의 영광과 찬란함 앞에 완전히 압도 당한다. 물론 그녀는 여전히 불멸의 빛나는 영혼이지만 단테가 하나님의 장엄한 빛 앞에 설 때, 그의 시력은 더 이상 베아트리체를 바라볼 수가 없었다. 드디어 삼위일체 하나님 한 분 외에는 다른 어떤 것도 시야에 들어오지 않게 된 것이다.

“내 사랑의 대상은 지고선(至高善)인 하나님이며 저의 사랑의 알파와 오메가는 오직 하나님입니다.…….우주의 존재와 나 자신의 존재 및 나를 위해 죽으신 그리스도가 나를 그릇된 사랑의 바다에서 끌어내어 올바른 사랑의 바닷가에 놓아주었습니다.” 이것이 단테의 신앙고백이었다.

지옥편
“비통의 도시로 가려는 자, 나를 거쳐서 가라……. 여기 들어오는 너희는 모든 희망을 버려라.”
지옥의 문 위, 돌에 적혀 있는 무시무시한 글귀이다. 이 문 안에는 아무런 희망도 없는 사람들의 신음과 탄식소리가 칠흑같이 어두운 하늘에 올려 퍼지고 있었다. 이곳에 있는 망령들은 밤낮없이 캄캄한 대기 속에 끝없이 떠돌아다니고 있어, 마치 회오리바람에 날리는 모래알과 같았다.

또 지옥은 그 환경의 어둡고 음침함과 소름끼치는 슬픔 외에도 서로가 서로를 향해 미움의 이를 갈고 있는 곳으로 묘사되어 있다.
“서로 발길로 차고 이빨로 물어뜯는 고통 속에서 한숨짓고 있는 처참한 사람들을 지나…….”

지옥은 인류 최초의 타락과 연관되어 있다. 그 타락은 온 인류에게 남과 자신을 해치는 고통을 가져다 주었다. 베르길리우스가 대답한다.
“하늘의 저주를 받는 죄악은 모두 남을 해치는 데 그 목적이 있나니, 그런 목적은 모두 폭력이나 사기에 의해 이루어지느니라. 더욱이 기만은 인간만이 가지고 있는 것이므로 특히 하나님의 노여움을 사게 되나니”

단테는 인간의 죄와 그에 합당한 처벌의 순위를 지옥의 아홉 구덩이를 통하여 보여준다. 이 지옥에는 교황 아나스타시우스같은 이들도 있었다. 단테는 당시 세속과 교회의 권력을 쥐고 있던 황제와 교황들의 타락을 천국에서 만난 사람들의 말을 통해 이렇게 전한다.

오스티아의 주교이며 추기경이었던 피에트로 다미아노는 자신은 수도원에서 감람나무 즙만을 마시고 더위나 추위도 아랑곳하지 않고 오직 명상과 기도만을 하였는데 오늘의 성직자들은 “좌우에서 부축하고, 앞에서 손을 잡아 이끌고, 뒤에서 옷자락을 들어줘야 할 만큼 뚱뚱해졌도다. 그들은 그들의 말까지 망토 자락으로 덮고 있나니 하나의 모포 아래서 두 마리의 짐승이 가고 있는 셈이로다.” 하며 성직자들의 부패를 개탄한다.

베네딕투스 또한 교황들의 타락을 질타한다.
“일찍이 돌담으로 에워싸였던 수도원은 이제 짐승들로 가득하고 수도사의 성스럽던 옷은 썩은 가루 가득 찬 자루로 변해 버렸구나. 그들은 고리대금업자보다 더 타락했다. 베드로는 금도 은도 없이 전도했고 나는 기도와 단식으로, 프란체스코 형제는 겸손한 가난으로 교단을 가꾸기 시작했노라.”

베드로 역시 이런 자들을 향해 분노한다.
“내게, 내게, 내게 주어진 자리(교황의 자리)들을, 나의 그 자리를 빼앗은 자들이 내 무덤을 피로 더럽히고 악취 풍기는 시궁창으로 만들어 버렸다…….나에게 맡겨진 천국 열쇠 또한 세례를 받은 자들 간의 싸움에서 기치가 되어 펄럭이라 함이 아니었노라. 내 초상을 도장에 새겨, 부당한 이득을 취하고 사람을 기만하는 특전으로 사용함은, 나를 부끄럽게 하고 분노를 일으키게 하는도다…….목장마다 목자의 옷을 걸친 탐욕스러운 이리가 널려 있으니…….”

단테는 지옥에서 고통 하는 생전의 교황들을 보며 “운명에 좌우되는 부귀를 놓고 사람들은 서로 아옹다옹한다만 그것은 결국 한 순간의 허망한 것임을. 지금 궁전에 쌓여 있던 황금이, 이 피로에 지친 망령들에게 어떤 평안을 줄 수 있으랴.” 하고 탄식한다.

지옥의 구조는 역피라미드의 원추형으로 이루어져 있고 모두 아홉 개의 옥으로 되어 있으며 지구의 예루살렘 표면으로부터 지구 가장 안쪽으로 계속 내려간다. 지옥은 복음을 듣지 못했기에 하나님을 믿지 않았던 아리스토텔레스, 소크라테스, 플라톤, 키케로, 히포크라테스, 유클리드 등 위대한 철학자들과 학자들이 하늘을 진동시키는 삭막한 한숨 소리와 어둠속에 앉아 있는 제 1옥, 림보에서부터 시작된다.

지옥의 아홉 개의 구덩이는 끊임없이 불어오는 광풍으로 죄인들을 들볶아대는 곳, 더러운 흙탕물에 누운 채 고통스레 몸을 뒤척이는 곳, 캄캄한 원을 빙빙 돌며 서로 욕을 하고 이빨로 물어뜯는 곳, 시뻘건 불길에 이리저리 밀려다녀야 하는 곳, 심한 악취가 나는 무덤에 갇혀 비명을 지르는 곳, 벌겋게 끓는 강물에 잠긴 채 비명을 지르는 곳, 죄인들이 흉악한 나무에 갇혀 신음을 삼켜야 하는 곳, 온갖 질병과 상처로 고통을 당하는 곳, 똥물 속에 잠기고 구멍에 거꾸로 박힌 채 마귀들의 갈퀴로 계속 찔림을 받아야 하는 곳, 끓는 역청 속에 잠겨 고통당하고 마귀들이 칼로 난도질을 당하는 곳 등등 읽기에도 끔찍한 모습들이 그림을 보듯 자세하게 묘사되어져 있다.

그 가장 안쪽에는 하나님을 거역한 사탄 루치페르(루시퍼)가 우주에서 가장 차가운 바람을 일으키며 모든 영혼들을 얼어붙게 하고 있다.
마왕 디스(루시퍼)를 본 순간 단테는 몸과 마음이 얼어붙어 녹초가 되어 도저히 표현할 수 없는 공포 속에 갇히게 되었다. 디스는 커다란 몸통에 추하고 더러운 모습을 하고 있었다.

“그는 자기를 지으신 분(하나님)에게 반역했으니 / 모든 재앙이 그 분으로부터 비롯된 것은 당연한 일이로다. / 그의 머리에서 세 개의 얼굴을 보았을 때, 나 얼마나 커다란 놀라움에 사로 잡혔던가! / 앞쪽의 얼굴은 새빨갛고, 오른 쪽 얼굴은 희뿌연 노란 색이고, 왼쪽 얼굴은 검은 색이었다.”

이 루시퍼의 각 얼굴 아래에는 커다란 배의 돛보다 더 큰 날개가 두 개씩 달려 있었는데 그 날개를 퍼덕일 때마다 코키토스(제 9옥)가 온통 얼어붙고 여섯 개의 눈에선 피맺힌 눈물이 떨어지고 입에선 핏물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지옥에 있는 영혼들의 죄는 밑으로 내려갈수록 더 큰 죄로 설정되어져 있다. 부절제(애욕, 탐욕, 낭비/인색, 분노) 보다는 폭력(타인, 자신, 하나님에 대한)이, 폭력보다는 기만(사기)이, 기만보다는 배반(배신)이 더 큰 죄다. 모든 죄 중에 배신이 가장 큰 죄로 여겨지는 것은 신뢰에 대한 반역이기 때문이다.(이상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윤리학>에 나오는 죄의 배열을 따른 것임) 우리 삶에서 상처를 준 부분을 살펴보면 이해가 간다. 육체에 상처를 입히는 것보다, 마음에 상처를 입히는 편이 더 큰 상처를 준다. 그래서 지옥의 가장 밑에 있는 죄인들은 예수를 배반한 가룟유다, 케사르를 배반했던 브루투스들이고 이들은 얼음 같은 차가운 공간에서 루치페르의 입에 물린 채 벌을 받고 있는 것이다.

연옥편
연옥은 예루살렘과는 정 반대인 남반구에 솟아 있다. 연옥은 지구 바깥으로부터 위로 올라가며 일곱 개의 두렁길로 갈라진다. 연옥의 문을 지키는 천사는 단테의 이마에 7개의 P(peccata, 죄)를 그려준다. 이것은 연옥에서 속죄해야하는 오만, 질투, 분노, 태만, 탐욕, 폭식, 색욕의 7가지 악을 가리키는 것이다. 단테가 연옥의 각 두렁길을 통과할 때마다 천사가 그의 이마의 P 자를 지워준다. 연옥은 천국 대기소이지만 그곳 또한 자기가 지은 죄의 보상을 받고 있는 곳이다.

“둘째 옥의 두렁을 올라가니 영혼의 무리가 ‘원수를 사랑하라!’는 소리를 높이 외치며 하늘을 날아간다. 이 옥은 질투와 선망의 죄를 씻는 곳이다. 그들은 눈꺼풀이 철사로 꿰매져 있다. 단테는 이 옥에서 구이도 델 두카를 만난다. 그는 ‘내 피는 질투로 불타고 있어 다른 사람의 행복한 모습을 보게 되면 내 얼굴은 곧 증오의 빛으로 물들곤 했었다오. 스스로 뿌린 씨로 인해 지금, 여기서 이런 검불을 거두고 있나니 오, 인간들이여, 어찌하여 함께 누릴 수 없는 것에 마음을 쏟는단 말인가!’ 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길 한복판에 아름답고 향기로운 과일 나무 한 그루가 서 있었다. 그들이 그 나무에 다가가자 잎사귀 밑에서 큰 소리가 들려오는데 ‘너희들은 이 과일을 먹어서는 안 되느니라.’였다.
그 나무 밑으로 해골처럼 말라빠진 망령들이 ‘주여, 내 입술을 열어 주소서’(시51:15)를 노래하며 지나갔다. 그들은 지상에서 폭식폭음 하다가 이곳에서 기갈로 죄를 씻는 자들이다. 저마다 눈자위가 거무스름하게 움푹 꺼지고 얼굴은 창백했으며 피골이 상접할 정도로 말라 비틀어져 있었다.”

“그때 맹렬한 불길 속에서 “지극히 자비로우신 하나님이시여!” 하는 찬미가가 들렸고 그 불길 속을 지나가는 망령들이 보였다. 그들은 음란죄를 저지른 영혼들이었다. 그들은 특히 여색과 남색을 저질렀다. 그들은 ‘소돔과 고모라여!’ 하고 외치며 눈물을 흘리며 각각의 길을 떠나갔다. 그들 중에는 지상에 있을 때 아름다운 시를 써 감동을 주었던 여러 명의 시인들도 있었다. 그들은 불꽃 속에서 울음 섞인 노래를 부르며 자기들의 죄를 씻고 있었다.”

“다섯째 언덕위로 나아갔을 때, 그들은 여기저기 땅바닥에 엎드려 울고 있는 자들을 보았다. 그들은 ‘내 영혼이 진토에 붙었도다.’ 하고 외치고 있었다. 단테가 그 중 하나에게 어찌하여 이렇게 하고 있느냐고 물었을 때, 그는 ‘나는 베드로의 후계자(교황)였소. 진흙탕 속에서 깨끗하게 지켜야 하는 내 법의가 얼마나 무거운가를 한 달 남짓하여 뼈저리게 느끼게 되었소이다.……. 그때까지 나는 하나님을 잃고 탐욕에 깊이 빠진 가엾은 영혼에 불과했을 뿐, 그 때문에 이곳에서 벌을 받고 있다오…….’그는 이렇게 한탄을 하였다.”

이런 표현들은 연옥 또한 고통스러운 모습들임을 알게 해준다. 그러나 지옥은 죄인들끼리 악에 받혀 서로 물고 뜯으며 미움과 공포에 사로잡혀 있는 곳이지만 연옥은 깊은 슬픔과 고통가운데서도 하나님을 찬양하고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또는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같은 성경 말씀들을 암송하며 자신들의 죄를 씻기 위해 눈물을 흘리는 곳이다. 그리고 자신들의 죄를 다 씻고 난 후에는 천국에 오를 수 있다는 소망으로 얼굴이 빛나는 곳이기도 하다.

단테와 베르길리우스는 연옥을 모두 통과하여 길을 걷고 있었다. 그때 천사가 나타나 “마음이 정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하고 노래하면서 그들 앞에 펼쳐진 불꽃 속으로 지나가라고 말했다. “이 불꽃으로 죄를 씻지 않고는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

단테가 두려워하자 베르길리우스가 “저 불꽃 속에서 너는 고통스럽기는 하겠지만 머리털 하나도 상하지 않으리라.”고 말하면서 “이게 바로 너와 베아트리체 사이에 놓인 장벽이니라.”고 하였다. 그 말에 용기를 얻은 단테가 그 불꽃 속으로 들어가니 그 뜨거움이 끓는 유리보다 더 뜨거웠다. 그는 그 맹렬한 불속을 거쳐 건너편 언덕으로 나왔다. 거기엔 빛나는 광채가 펼쳐졌다.

“내 아버지께 복 받은 자들아, 어서 오라.”
단테는 눈이 부셔서 우러러 볼 수도 없는 빛 속에 울려 퍼지는 그 찬가를 들으며 한없이 넓은 지평선이 펼쳐진 곳으로 나왔다. 이곳에서 베르길리우스는
“이제 나로서는 더 이상 분별할 수 없는 곳까지 이르렀다. 이제부터는 네 기쁨의 원천(베아트리체)을 안내자로 삼으라.”하고 말하고 자신이 있던 곳으로 돌아갔다. 드디어 단테는 천국에 이른 것이다.

천국편
천국은 아홉 개의 천계를 통과하여 열 번째 하늘의 성삼위 하나님이 계신 엠피레오(광명천)에 도달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이곳은 우주의 가장 높은 곳이며 빛나는 천사와 성인들이 앉아 있는 곳이다. 단테는 이곳에서 성 베르나르의 안내로 찬양이 울려 퍼지는 가운데 하나님의 얼굴을 뵙고 삼위일체의 성스런 교리를 터득하게 된다.

천국은 단테의 우주관에 의해 월천, 수성천, 금성천, 태양천, 화성천, 목성천, 토성천, 항성천, 원동천, 지고천(엠피레오)의 단계로 되어있다. 각 천국의 단계로 오를 때마다 그곳은 더 크고 찬란한 빛들이 빛나고 그 빛속에 있는 영혼들 또한 갈수록 더욱 아름답게 빛난다.

“만물을 움직이시는 분의 그 영광 온 누리 두루 비치나니 / 어떤 곳에는 강하고 어떤 곳에는 약하구나 /…….오, 신성한 힘이여!”

단테는 갑자기 주위가 찬란하게 빛나는 것을 느끼면서 첫째 하늘인 달로 올라간다. 올라가면서 그는 온통 태양의 불꽃으로 이글거리는 하늘을 보았다. 베아트리체는 “당신은 번개가 하늘에서 번쩍이는 것보다 더 빨리 당신 본래의 거처를 향해 날아오르고 있답니다.” 라고 말했다.

단테는 천국의 가장 낮은 단계인 월천으로부터 시작하여 계속해서 더 높은 천국으로 올라가다가 아홉째 천국인 원동천으로 가기 전, 지고천에서 베드로로부터 신앙의 질문을 받는다.

베드로는 “독실한 그리스도 신자로서 신앙이 무엇인지 네 생각을 말하라.”고 단테에게 질문했다. 단테는 “아버지시여, 믿음이란 당신의 친애하는 형제(사도바울)께서 기록한 바와 같이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입니다.”고 대답했다.

베드로는 “옳은 생각이다…….그런데 너는 이 화폐(신앙)를 가지고 있느냐?” 하고 질문했다. 단테가 네, 라고 대답하자 베드로는 “이 귀중한 보석(신앙)은 어디로부터 너에게 온다고 생각하느냐?”고 다시 물었다. 단테가 “신약과 구약에 끝없이 내리는 흡족한 성령의 비가 나에게 분명한 진리를 가르쳐 줍니다.”라고 대답하고 베드로로부터 신앙의 인정을 받는다. 하나님을 뵙기 전 신앙의 검증이 필수라는 것을 암시하는 대목이다.

마침내 단테는 엠피레오에 계신 하나님을 뵙는다. 그는 그때의 감격을 이렇게 쓰고 있다.
“단테는 위를 쳐다보았다……. 그 하나님의 빛은 언어를 초월하는 것, 단테의 기억력은 그만 졸도해 버렸다. 그것은 마치 꿈을 꾼 사람이 깨어난 후에 감동은 남아 있으나 아무것도 기억할 수 없는 것과 같았다. 그는 넋을 잃은 채 그저 하나님을 가만히 바라볼 뿐이었다.

그 숭고한 빛 속에 세 가지 빛깔을 띤 같은 크기의 원이 나타났다. 첫째 원은 둘째 원에 의해 반사되고 셋째 원은 그 두 원에서 한결같이 발산되는 순수한 불길처럼 보이는 무지개 같았다. 그 빛은 자체의 빛깔로 인간의 영상을 그려내는 듯했다. 그것은 너무나도 신비한 광경이었다. 단테는 그 영상은 그리스도 속에 신성과 인성이 신비롭게 결합되어 있음을 나타내는 모습임을 깨닫는다.
이 찬란하고 영광스러운 모습을 본 후, 단테의 기력도 쇠진한다. 자신의 열망이나 의지, 모두 태양과 별들을 움직이시는 하나님의 큰 사랑에 의해 움직이고 있음을 느낄 뿐이다.”

단테를 하나님이 계신 엠피레오까지 인도한 영혼은 12세기의 작가이자 위대한 교회 이론가이며 시토 수도원 원장이었던 성 베르나르이다. 단테의 영적 순례의 성장에 따라 베르길리우스에서, 베아트리체, 성 베르나르로 인도자가 바뀌었다.

여행하는 동안 단테는 수많은 영혼들을 만난다. 그리고 지옥에서 벌을 받도록 운명 지워졌거나, 그들의 과실(過失)을 연옥에서 속죄하도록 허락받았거나, 또는 구세주와 함께 하늘나라에 거하도록 은총 받도록 만든 영혼들의 지상에서의 삶에 대하여 설명을 듣는다.

지옥편이나 연옥편은 읽어 나가는데 큰 어려움이 없는 대신 천국편의 많은 부분들은 마치 고대의 철학서처럼 읽기에 매우 난해한 부분들이 많다. 이는 아마 지옥과 연옥편에는 타락한 인간성에 대한 징벌을 외형적인 면에서 부각시키고 천국 편에서는 신학적이고 형이상학적인 근거를 부각시키려 했기 때문일 것이다.

천국 편에서 단테는 성경에서 묘사하고 있는 천국의 상태, 즉 “수정 같은 맑은 물과 보석으로 꾸민 집, 열두 진주문, 황금 길과 열두 달 내내 열리는 과일 나무” 와 같은 외적인 것들을 거의 생략한 채, 주로 그곳에 있는 영혼들의 빛남과 기쁨의 삶과 즐겁고 화창한 찬미와 춤들만을 그렸다.

“단테는 그 빛 속에서 원을 그리며 돌아가는 많은 빛(성도)들을 보았다. 제일 처음 나타난 무리 속에서 들려오는 호산나 찬송은 어찌나 정결하던지 단테는 또 다시 듣고 싶은 마음 간절해졌다.”
사실 천국은 외적인 어떤 상태보다는 영혼 깊은 곳의 상태가 어떠한가가 더 중요시되는 곳이기 때문이다. 영혼 속 깊숙한 곳에서 출렁이는 기쁨과 평화, 사랑이야말로 천국의 참된 본질이 아니던가.

원동천에서 단테는 하나님을 뵙는다.
“축복은 하나님을 보는데서 비롯되는 것이지, 그 다음 단계인 하나님을 사랑하는데서 비롯되는 것이 아닙니다.” 베아트리체가 말했다. 단테는 그녀의 이 의미심장한 말을 곰곰이 생각한다.

단테가 살았던 13세기의 유럽은 그동안 가장 권위 있는 과목이었던 신학만이 아니라, 아리스토텔레스의 예술과 논리학, 철학 사상들이 지식인층에서 읽히고 연구되던 시대였다. 성서 주석가들이나 성직자들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출현을 막아보려고 힘을 기울였으나 시대의 변화를 거스를 수가 없었다. 한편 일단의 지식인들은 아리스토텔레스와 기독교 교리, 이 상반되는 권위를 서로 조화시키고 화해시키려고 노력했다. 성 토마스 아퀴나스는 이 화해의 주역이었다. 진보적 지식인이었던 단테는 이런 토마스 아퀴나스의 연구업적을 높이 사 천국의 자리에 앉혔다.

그러나 단테는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는 하나님을 이해하지 못했으므로 그들의 이론으로서는 결코 하나님의 뜻을 설명할 수 없다고 했다. 따라서 복음을 듣지 못했던 베르길리우스나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모두 하나님의 뜻을 이해할 수 없기에 림보에 있게 되었다. 플라톤이나 아리스토텔레스 등 위대한 인물들이 지옥의 입구인 림보에 있다는 단테의 단정은 어떤 사람들에게는 크게 걸림돌이 되는 부분들이다. 또한 그가 인용했던 수많은 신화, 철학적 사변들도 엄밀한 기독교의 입장에서는 걸림돌이 되는 부분들이다. 그러나 이것이 바로 당시 기독교의 현실이었으며 단테도 그 한계를 넘지 못했음을 감안해야 할 것이다.

단테는 신곡에서 많은 성서 구절들도 인용했다. 그 구절들은 각 문맥 속에서 깊은 사색가운데서 채택된 것들이다. 일례로 연옥의 입구에서 연옥 동산을 오르기 위해 배를 타고 도착하고 있는 많은 영혼들이 시편 114편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떠나올 때…….”를 노래한다. 이 시편 114편에 대하여 단테는 “이 시편은 그리스도를 통한 우리의 구원을 의미하고, 도덕적 의미로는 죄의 비참함과 슬픔으로부터 은총의 상태로 영혼이 구제됨을 의미하며 신비주의적으로는 이 세상의 죄의 구렁텅이로부터 영원한 영광의 자유 속으로 영혼이 들어감으로써 성화되는 것을 의미한다.”는 주해를 해놓았다. 그는 다른 많은 구절에 대해서도 주해를 해놓아 독자들의 이해를 도왔다.

신곡속의 단테는 인류 영혼의 대표자다. 지옥과 연옥은 고뇌의 상징이며 인간 본능과 유혹의 세계이다. 단테가 이런 과정을 거쳐 천국에 이르게 되는 것은 인간은 고뇌를 통해 영혼을 깨끗하게 정화할 수 있다는 그의 구원관을 보여준다. 인간은 고뇌가운데서도 주님의 계명인 믿음, 소망, 사랑으로 살아갈 때 비로소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이다.

단테는 그 시대의 중요한 정치적, 철학적, 신학적 주제들을 모두 조화시켜 완벽한 건축물과 같은 작품을 썼으며 도덕적 지혜와 고양된 윤리적 안목을 보여주었다. 신곡은 발표되고 나서 650여 년 동안 독자들의 영적 각성에 많은 도움을 주었으며 그의 놀라운 상상력은 여러 세대를 걸쳐 수많은 예술가들의 창작에 영감을 불어 넣어 주었다. 오귀스트 로댕은 이 작품을 읽고 거기에서 영감을 얻어 ‘지옥의 문’을 만들었다. 이 ‘지옥의 문’ 상단에서 울부짖는 수많은 이들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는 이가 바로 그의 조각 ‘생각하는 사람’이다.

윌리엄 버틀러 예이츠는 단테를 “그리스도교적인 최고의 상상력”이라고 불렀고 T. S 엘리엇은 “근대세계는 셰익스피어와 단테가 나눠 가졌다. 제 3자는 존재하지 않는다.”라고 하였으며 영국의 문예 비평가 토머스 칼라일은 신곡을 가리켜 “중세 1000년의 침묵의 소리”라고까지 격찬하였다. 그러나 그 무엇보다 신곡은 사후 인간의 삶에 대한 그림을 깊은 영적 상상력을 통해 적나라하게 보여줌으로써 모든 인류들에게 이 땅에서의 삶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워주었다는 것에 있을 것이다. (일부 한성철의 “신곡 작가론과 작품론”, 브리태니커 사전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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