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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말씀

신앙의 세계는 실제입니다

실체를 경험할 때 열매를 맺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에 대한 개념을 가지고 있습니다

몸이 교회 가면 하나님 만난 것으로 생각합니다.

머리의 생각으로 교리를 파악하면 하나님을 아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실체는 영입니다.

몸은 교회에 오지만, 생각은 신앙에 대해서 배우지만..

사람들이 하루종일 실제로 접하는 영은 흑암의 영이고 세상의 영이라는 사실을

많은 이들이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항상 어떤 영과 접합니다

주님의 영과 접하는가, 세상의 영과 접하는가..

여기에 우리의 삶의 모든 것이 달려있습니다.

하나님을 바라보지 않을 때..

하나님의 영이 아닌 다른 영을 접하고 그 영의 지배를 받기 때문에

성령의 열매를 맺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왜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영이 아닌 다른 영과 접하고 살게 될까요?

그 이유는 하나님의 영을 접하는 길이 아주 좁기 때문입니다

그 길은 온 천하에 오직 예수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선악과를 먹고 에덴에서 떨어지고 타락했습니다.

그다음부터는 흑암의 영들이 인간을 지배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를 의식하고 부르고 마시고 바라보지 않을 때는

항상 다른 영이 가까이 오게 되는 것입니다.

어둠 속의 유일한 빛인 예수를 의식하지 않으면

어둠의 영들에게 잡혀서

수많은 생각, 상념, 수많은 어두운 충동 속에서 이끌려 살고

낮은 욕망의 차원에서 더 발전 못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유일하게 예수를 바라보면 하늘이 열리고 빛이 옵니다.

그래서 예수께서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하신 것입니다. (요한복음 14:6)

그렇다면 어떻게 어둠의 영이 사람을 지배할까요..

간단합니다.

사람들이 주님이 아닌 세상을 바라보고 환경에 집중하면

바로 어둠의 영의 지배를 받게 됩니다.

예수를 바라보며 물 위를 걷다가

파도를 보고 빠져들어간 베드로 처럼

스마트폰에 빠져들고, 컴에 빠지고, 채팅에 빠지고..

주님 아닌 다른 것에 빠져드는 자체가, 자연스럽게 어둠의 영들의 지배를 받게 된 상태입니다.

물질 의식... 바깥을 보고 환경을 보거나

자아의식.. 남이 나를 어떻게 볼까.. 남에게 명예와 영광 얻기 위해 나를 의식하는 것..

이 두 가지를 통해서 흑암의 영들이 지배하게 됩니다.

그래서 자기를 부인하고

보이는 것을 부인하고

오직 예수를 의식하지 않으면

충만함을 받을 수가 없습니다.

우리 의식이 주님을 향하지 않으면

주님은 오실 수 없는 것.

그것이 영계의 법칙인 것입니다.

그래서 승리의 삶이란..

얼만큼 내가 살았는가..

아니면 그리스도로 살았는가.. 에 달려 있습니다

급하고 힘들 때만 기도하고 주를 의식하는 사람은

삶의 아주 일부분만 주의 영을 받고

나머지 시간은 흑암의 영들에게 잡혀 사는 것입니다.

기독교신앙은 그래서

하루 24시간 밥먹고 움직이는 모든 순간에..

내 의식 속에서 마음이 깨어서 주를 붙잡는 것입니다.

그 시간 외에는 더러운 영들, 뱀들의 지배를 받는 순간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예수. 예수. 예수. 하나님.

항상 주를 붙잡아야 산다는 것을 잊지 마세요.

이 시간 내 의식이 다른 영에게 있지 않기를 원합니다

내가 주를 항상 의식하며 살기 원합니다

바쁘고 힘든 순간에도 주를 기억하기 원합니다

내 의식을 사로잡아 주시옵소서

주를 부릅시다

예수.

예수.

예수.]

[이 세상은 영들의 전쟁터입니다.

그래서 크리스찬들이 실제적으로 영이 강해지면

살아있는 영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엘리야를 통해 불이 내렸을 때

모인 사람들이 모두 하나님 앞에 엎드리며

여호와 그는 하나님이시다~! 했던 것처럼

실제적인 영의 역사가 일어나면

음란이 소멸되고, 세상 사랑과 인간적인 애정이 소멸되고

흑암의 권세가 파괴되고 거룩하고 성결한 역사가 일어납니다

그런데 크리스찬들이 영의 실제를 잘 모르고 있습니다.

그것이 패배의 이유입니다.

살아있는 영. 살아있는 하나님의 충만함을 가지고 세상을 이겨야 합니다.

이기는 영을 주소서

나 혼자 간신히 먹고 유지하는 정도가 아니라

내가 주님의 영으로 충만할 때

주님에 대한 그리움. 기쁨이 일어납니다

충만함을 받아야 합니다.

외적 충만과 내적 충만이 있는데

삼손은 외적으로는 충만했지만,

내적인 교제의 친밀감, 사랑 기쁨을 모르니까

세상의 위로를 필요로 한 것입니다.

그리고 들릴라로 인해 넘어졌습니다.

주님은 실체이십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은 보이는 사람은 실체이고 주님은 허상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사람을 만나고 교제하면 거기에 기쁨 있으리라 생각하지요.

그러나 보이는 사람의 육체가 서로 만났기 때문에 외로움이 없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내 영과 그 사람의 영이 연결되어서 기쁨이 오는 것입니다.

상대방의 마음을 느끼니까 만족을 얻는 것이죠.

이 사람이 아직 하나님을 경험할 영의 수준이 아니고

세상의 기운들을 향해 열려있기 때문에

주님께 직접 충전을 받지 못하고 사람들을 통해 위로를 받는 것입니다.

그러나 영이 성장하고 주님의 실제 경험하게 될 때

이것은...남편도, 아내도, 자녀도 어떤 누구도 채워줄 수 없는

깊은 생수의 강이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주님은 너무나 살아계신 선명한 실제이시라는 것을 경험하게 되면

광야에 혼자 있어도 너무 벅찬 희열과 자유를 누리게 됩니다.

하나님은 실상이시기 때문에

내 영으로 주와 교통하면 거기에 만족이 있습니다.

사람은 그렇게 주님과 교제하도록 창조되었기 때문에

주님의 영이 임하시면 얼마나 행복한지

목숨도 무엇도 아깝지 않게 됩니다.

하나님을 즐길 수 있을 때..

예수를 즐길 수 있을

때 다른 군것질에 미혹되지 않습니다

주님. 나를 채우소서

나를 충만하게. 충만하게 하소서]

[사람들은 자기의 영에 얼마나 많은 어두움이 있는지를 잘 모르고 있습니다.

마귀가 가르치는 온 세상에 가득한 세상의 사상들.

거기에 세뇌되어서 우리 안의 영이 위축되고 눌리고 질식되고..

몸과 마음이 탈진하고 엉망이 되어있습니다.

그 이유는 어둠에 속았기 때문입니다.

마귀는 두가지를 통해서 사람을 공격합니다.

첫째는 물질 숭배이고

둘째는 자아 숭배입니다

이것이 애굽과 광야의 의미인 것입니다.

애굽과 광야를 넘어서야 한다는 것은

첫째 물질 숭배, 피조물 숭배, 보이는 것 숭배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의 중심은 돈입니다.

돈이 있으면 필요한 모든 것을 사고 얻을 수 있다는 가치관.

돈이 하나님이라고 가르치는 가르침이 세상에 가득합니다.

유치원부터 대학원까지 온 세상이 가르치는 것은

‘물질이 신이다. 돈이 왕이다. 보이는 것을 추구하라.’ 하는 것입니다.

돈을 많이 벌기 위해서 명문 대학에 가려고

어릴 때부터 아이를 다그치고 괴롭힙니다.

오직 돈을 많이 소유하기 위해 잠못자고 애쓰고 노력하고

아파도, 문제가 생겨도 돈으로 해결하려고 합니다.

아브라함이 기근 때문에 애굽에 내려간 것도

결국은 돈 사랑, 물질 숭배..로 인한 것이었습니다.

이러한 물질에 관한 숭배가 왜 마귀에게 사로잡히는 길인가.. 하면

물질은 실상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보이는 것은 썩습니다. 썩을 것을 숭배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셨습니다.

그러나 세상은 하나님에 의해 창조 되어서

그 안에 하나님의 생기가 있지만 생명은 아닙니다.

소멸되고 사라질 존재들입니다.

빛이 없는 것이 곧 어두움입니다. 어두움 자체는 실체가 아닙니다.

그처럼 세상은 어둠이며 실체가 아닙니다.

물질은 실체가 아니예요.

물질은, 피조물은 영원이 아니고 근원이 아닙니다.

아주 잠깐, 지금 잠시 살아있는 것 같아 보이지만

실상은 살아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근원이 아니고 신이 아닌 것에 경배하고 엎드리고

통장 잔고가 많이 남았으니 행복하다..

하는 사상의 배후에는 마귀가 있습니다.

그러한 가치관은 곧 마귀에게 온 것입니다.

아무도 보이지 않는 하나님과 보이는 물질을 동시에 추구할 수 없습니다.

보이는 것을 추구하는 것은 내 육체와 육성입니다.

그래서 보이는 것, 물질을 통해서 위안을 얻고 만족을 얻는 사람은

마귀로부터 벗어날 길이 없습니다.

근원이신 하나님을 통해 만족과 위로를 얻는 것이 아니라

눈에 보이는 피조물, 물질을 통해 만족을 얻으려 하니까

마귀가 그에 대해 권세를 갖게 되고,

의식과 영혼이 파괴되는 것입니다.

영혼은 비 물질적인 것이고 생명에 속한 것인데

보이는 것을 통해서 만족을 얻으라는 거짓말에 속아서

영혼의 평화를 잃고 있습니다.

언제까지 돈을 막아야 하는데..

돈 많이 주는 직장에 가야 하는데..

하면서 항상 마음을 졸이고 불안 초조하게 살아갑니다.

그 자체가 얼마나 비참한 것인지 모릅니다.

거기에서서 벗어나야 합니다.

두 번째는 자아 사랑입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다른 이들에게 잘 보이고 칭찬받고 인정받고 싶어하는지 모릅니다.

많은 이들의 행동의 동기가 인정받고 높아지고 싶은 것에 있습니다.

그래서 굴욕을 견디지 못합니다.

내 이상형, 내가 원하는 것, 내 기질에 맞고 내가 좋아하는 것을 찾습니다.

이런은 상황 싫어. 이런 사람은 싫어.. 하는 내 고유한 체질. 속성.

그것이 십자가에 못박혀야 할 자아인 것입니다.

인생은 내 뜻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이 이뤄지는 과정입니다.

내 자아의 취향과 속성이 벗어지고

주의 뜻대로, 주 앞에서 굴복하도록

내 영혼을 정화시키는 것이 인생 목적이며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과정인 것입니다.

우리는 자기 나름의 꿈과 비전과 목적과 방향을 가지고

이런 사업도 하고, 이런 대학도 가고, 연애도 하고.. 그러지만

인생의 흐름은 내 소원대로 가는 것이 아닙니다.

내 소원이 무너지고 내 속았던 의식이 깨어지고 무너지고

진정한 실체는 예수, 하나님이시다. 주님이시다.

이것을 깨달아 알도록 정화시키는 과정이 인생의 본질인 것입니다.

그런데 많은 분들이 속고 있습니다.

하버드든 어디든.. 세상의 모든 교육이 가르치는 것의 99.999 % 는 거짓이라는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모든 드라마, 문학, 영화, 모든 것이 가르치는 것은 거짓, 거짓, 거짓이라는 것입니다.

어린 시절 젊은 시절.. 책을 통해 영상을 통해 경험한 충격과 설렘, 눈물, 비통..

나중에 알고 보니, 그 모든 것이 내 혼을 형성하는 하나의 거짓이었습니다.

거기에는 진실이 없습니다.

“하나님이 모든 것의 주인이시다.

그 분이 내 감정, 생각, 의지.. 모든 것의 중심이 되어야 어둠에서 벗어난다.'

는 것을 가르쳐 준 세상의 책이나 문학, 드라마, 사상.. 은 없었습니다.

그것을 깨닫게 된 후, 얼마나 충격을 받고

거기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고난과 훈련을 통과했는지..

이것을 깨달으세요

지금 사상의 대부분은 거짓입니다

우리가 즐기고 좋아하는 많은 것들은

내 의식 속에 들어와서 내 의식을 혼미케 하는 것들입니다.

그리고 그 시작은 어둠으로부터 옵니다.

하나님께 무릎을 꿇고

“하나님 당신은 나의 왕입니다. 당신이 나를 창조했습니다.

모든 것을 당신의 뜻대로 하시옵소서.“

이렇게 되기까지 인간은 평안을 얻지 못합니다

제가 군대에서 주님을 경험하고 나서

방언을 하게 되고, 끝없이 방언을 하면서 너무 기뻐졌는데

어느 순간 주님께서 “너의 삶을 나에게 헌신하라” 고 하셨습니다.

그때 얼마나 충격을 받고 힘들었는지 모릅니다

나는 자유롭게 살고 싶은데.. 헌신을 한다면..그럼 내가 로봇이 되는 건가..

하면서 몇 주 동안 고민을 했습니다.

그 당시에는 주님께 헌신하는 삶의 행복이 무엇인지 몰랐으니까

두 주 정도 한없이 고민하다가, 무릎을 꿇고

“하나님. 제 인생을 하나님께 바칩니다. 이제 제 목표는 하나님입니다. 저의 개인적인 기호, 남겨놓지 않겠습니다. 주님께서 원하시는 대로 내 삶을 사용해 주세요.“

그렇게 무릎을 꿇고 헌신의 고백을 했는데

그 순간 쏟아져 들어오는 평화와 기쁨은 말로 할 수 없었습니다.

그 때가 25살이었습니다.

그리고 내 속에서 얼마나 불타는 갈망이 일어나는지..

그 이후로 하나님을 구하지 않고 잠든 적이 없습니다.

그 전에는 기도할 때는 뜨거우나,

기도 후에는 주님을 잊을 때가 많았습니다.

그러나 헌신의 고백을 한 후에는

내 속에서 주님을 향한 미칠 것 같은 그리움이 일어나서

온종일 주님을 잊을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아.. 이것은 내가 하는 것이 아니구나..’ 알게 되었습니다.

내가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

사상, 관점, 기호, 철학적 가치.. 모든 것에 혁명적인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태양계의 행성들이 태양을 중심으로 돌 듯이

내 모든 삶이 주님을 중심으로 돌기 시작했습니다.

주님께 나를 드리기 전에는

내 의지를 하나님께 드리면 재미없고 따분하고

마치 로봇처럼 기계적으로 비참하게 살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라 인생에서 가장 황홀한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내 삶을 주께 드리고

살든 죽든 내가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라..

그것이 얼마나 행복한 것인지

그렇게 헌신하고 그렇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나를 주께 드리지 않은 삶은

마귀의 진입을 허용하는 삶입니다.

겉으로는 내 맘대로 자유롭게 사는 삶 같지만

실상은 어둠의 영들에게 노예가 되어서 채찍에 맞는 비참하고 끔찍한 삶입니다.

그러나 주의 영이 있는 곳에는 자유함이 있습니다

성령의 충만을 받기 위해

목숨을 드리세요

주님..

나는 나를 바꿀 수 없습니다

당신이 나의 중심이 되어주세요

살든 죽든 주님의 원하심이 나의 원함이 되기 원합니다

나를 주께 드립니다.

주님. 나를 지배하소서

주님. 나의 주인이 되어주소서

물질을 우상으로 섬기고 싶지 않습니다

내 자아, 내 기분, 내 감정을 우상으로 섬기고 싶지 않습니다.

당신을 원하시는 것이 무엇입니까

내 삶을 어디로 이끌기 원하십니까..

말씀하시고 가르치시고 주장하소서]

[주님은 살아계신 실제입니다

우리의 영이 일어나서 주님의 영의 실제를 경험할 때

그것이 천국의 삶입니다.

주께서 사랑한다고 말씀하실 때 거기에는 놀라운 행복이 있습니다.

나는 그렇게 놀랍고 충일한 사랑으로 감싸는 달콤한 사랑의 음성을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그것은 주님만 하실 수 있는 음성입니다.

불안하고 두렵고 어찌할 바를 모를 때

“괜찮아. 평안할 찌어다..”

주께서 말씀하실 때

그 모든 풍랑이 떠나가 버리고

얼마나 평화롭고 행복한지

주님처럼 그렇게 말씀하시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여러분. 주님께서 가까이 임하실수록

그것은 놀라운 축복입니다

주님을 잘 모르는 사람들은

주님이 너무 가까이 오시면

너무 무섭고 두렵고 묶일 거 같다고 생각하지만

그러나 주님은 측량할 수 없이 온유하고 친절하고

사랑과 긍휼로 가득하신 분이십니다.

주께서 가까이 오시면 오실수록 그것이 행복이고 천국입니다

주님을 느낄 수 없는 것.

이것이 지옥입니다.

주님을 멀리 느끼는 것.

그것이 지옥이예요.

천국의 중심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 그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주님을 경험하지 못하는 이유는

주님이 아닌 다른 영이 있기 때문입니다.

다른 영들이 나를 두르고 지배하고 있기 때입니다.

많은 어리석은 이들은 그것을 쾌락이라고 생각합니다.

실제로는 묶임, 부자유, 더러움..일 뿐인데

영들에게 세뇌되어서 그것을 자유와 쾌락으로 여기고

주님이 오시면 그 쾌락을 앗아갈 것이라고, 묶이고 제한받고 피곤할 것이라고 오해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속는 것이고 착각입니다.

그래서 인생의 행복은 우리의 꿈이 무너지는 것에 있습니다.

헌신되지 않은 사람은 자신의 꿈이 무너지게 되어있습니다.

모든 빛이 사라지고 깜깜할 때 별빛이 선명하게 보이듯이

모든 것 이 어두워질 때..

나의 의지, 생각, 감정.. 다 무너지고

어찌할 바 모르고 암흑 속에 있을 때..

그 때 찬란한 별빛이 되신 주님이 보입니다

“두려워말라. 왜 의심하느냐. 내가 여기 있다.” 말씀하십니다.

인생은 우리의 빛을 어둡게 해서

주님만 빛나게 하시는 하나님의 역사의 과정입니다.

아직 젊고 시간이 있을 때 스스로 어둠 속에서 주를 바라보세요

스스로의 빛. 명철로 살지 마세요.

거기에는 시간 낭비와 고통만 있을 뿐입니다.

우리 인생은 물질, 내 자아, 내 기분 으로 사는 것이 무너지는 과정임을 기억하세요.

최근에 청년들이 같이 공동생활을 하려고 한다고 들었는데..

공동생활, 혹은 결혼생활의 의미가 무엇인지 아세요?

깨어지기 위해 같이 사는 것입니다.

사람의 괴로움은 깨어지지 않아서 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모든 사람에게는 내 고유의 자아의 속성이 있습니다.

내가 원하는 것이 있고, 내가 싫어하는 것이 있습니다.

그런데 공동생활을 하다 보면

내가 싫어하는 것에 자꾸 부딪히게 되거든요.

모든 사람이 자기의 타고난 성향이 있는데..

내 성향에 맞는 사람을 찾으려면, 우주에 한두명 있을까 말까 하기 때문에...

대부분은 평생 나에게 맞는 사람을 찾아 헤매며 인생을 낭비합니다.

그러나 주로 살게 되면 모든 사람과 천국을 누릴 수 있습니다

그런데 나를 소멸하려고 하지 않아요.

그래서 그것을 깨뜨리는 것이

직장생활에서 까다로운 상사를 만나는 것이고

‘이런 사람을 내가 대체 왜 만났을까..’ 하는 배우자를 만나는 것이고

내 기질과 성향과 전혀 다른 사람과 공동생활을 하는 것입니다.

나의 기질과 다른 사람과 살다 보면 부딪히게 되어요. 반드시 부딪히게 됩니다.

타고난 자아와 기질로는 아무도 사랑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사랑할 수 없는 자신을 발견하고

“주님..이것이 제 모습입니다.” 하고

엎어지고 깎이고 깎이면 주님이 나오시는 것입니다.

이러한 훈련이 피곤하고 싫어서 광야에 혼자 있으려 한다면 그것은 시간 낭비입니다.

승패는 간단합니다.

나로 살면 열매를 맺을 수 없고

주로 살면 주님이 내가 할 수 없는 것을 하십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자신에 대해서 절망하는 것입니다.

절망하고 엎드리면 주님이 하시기 때문입니다.

절망해야 하는데..

내 자아를 완전히 못박히고 무너져야 주님께서 역사하시는데

자꾸 대충 넘어 가려고 해요.

완벽주의적인 사람들은 본질적이지 않은 것으로 목숨을 겁니다.

이런 이들은 마음이 너무 예민해서 무엇을 해도 만족이 없어요.

공들여서 뭔가를 하면 나중에 버리게 되고

고민고민해서 뭔가를 구입하면 나중에 마음에 안들어서 바꾸게 되고..

그것은 어둠의 영들의 채찍을 얻어맞으며 사는 것이고,

거기에는 마음의 평안이 없습니다.

완벽주의. 그런 것도 자아의 생명입니다.

나의 체질, 내가 좋아하는 것, 취향..

거기에 딱 맞추려고 하는 것.

나를 만족시키려고 하는 것.

이것이 무너져야 하는 것입니다.

요즘 사람들은 너무 심령이 약하고 예민해서

아주 사소한 것도 내 뜻대로 되지 않으면 견디지 못하고 하나님께 맡기지 못합니다.

그것은 바로 자아의 생명 너무 강하기 때문에 생기는 증상입니다.

사소한 층간 소음에도 큰 싸움이 나고..

작은 일이라도 내 뜻대로 안되면 속상하고..

이런 것들이 다 무너지고

‘나를 무시합니다.’ 하면서 나를 내려놓으면..

어둠 속에서 주님이 보입니다.

“이제 내가 들어가도 되느냐.” 하십니다.

나를 버리세요.

내 취향, 내 기분, 내 감정을 버리세요.

그러면 주님의 감정이 옵니다

주님의 지혜, 사랑, 능력이 옵니다

그것이 승리의 삶입니다.

나를 유지하려고 하지 말고

나를 부수고 파괴하세요.

내가 무너지면 해방이 오고

성결의 영이 옵니다.

인생은 정화를 위해 존재합니다.

주님. 나를 정화시켜 주세요.

내가 죽고 예수가 살게 하소서

예수. 예수가 내 새 생명이 되게 하소서]

[그리스도인에게는 권세가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에게는 예수 이름, 예수 보혈의 능력이 주어졌어요.

마귀를 부수고 흑암의 역사를 박살내고

나라의 운명을 바꾸고 민족의 운명을 바꾸는 힘이 그리스도인에게 있습니다

그런데 그 권세는

굴복되는 만큼..

주님께 사로잡히는 만큼..

주어지는 것입니다.

내 자아의 기질과 취향으로 살고

내 뜻으로 사는 사람에게는

그 권세가 없어요

그래서 사역자의 권위란 곧

그리스도께 굴복되는 것입니다.

개인의 취향, 개인의 뜻에는 권위가 없습니다

“주님께서 이것을 원하신다. 주님이 이것을 기뻐하신다. 주님이 이것을 싫어하신다.”

이것을 바르게 얘기할 수 있으면 거기서 권위가 옵니다

부모의 권위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너희들을 먹이고 입혔으니까 내 말을 들어라..

하는 마음에서는 권위가 오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이것을 기뻐하신단다... 이것은 싫어하신단다.

그것을 얘기할 수 있으면

거기에 권위가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 권위를 갖고 있지 않습니다.

그래서 권세가 없습니다.

그 이유는 내 뜻, 내 취향이 굴복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많은 이들이 내 뜻대로 안되면 속이 상해요.

굴복되지 않은 사람일수록 일이 뜻대로 안되고 막히면

짜증내고 속상해 합니다.

그것은 내가 주인이 되어있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뜻이 이뤄지지 않은 것에 대해서 아파하고

주님께 죄송해 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왜 내 뜻대로 안되는 거야. 내가 이렇게 하라고 했잖아’

하면서 마음이 상해하는 것,

나는 이런 스타일이 싫어, 이런 상황이 싫어..하고 불쾌해 하는 것은

내가 주인이 되어있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자신이 주인이 되는 삶에는 권세가 없습니다.

많은 이들이 “주 뜻대로 마시고 제 뜻대로 하소서”

하니까 삶이 비참하고 권세가 없습니다.

내 뜻과 기질과 취향이 무너지고 “제 뜻대로 말고 주 뜻대로 하소서.”

고백하게 되는 것. 이것이 인생에서 배워야 할 것입니다.

내 고집, 나의 취향, 성향.. 다 무너지고

“주님 당신이 원하시는 것이 무엇입니까.”

하고 물어야 합니다.

“주님. 이 일이 왜 안될까요.” 하고 물으면

이렇게 대답하실지 모릅니다.

“너는 왜 나에게 묻지 않니

왜 너를 위해서 원하고 나를 위해 원하지 않니

너의 삶의 주인이 누구냐

왜, 무엇 때문에, 누구 때문에 걱정하니..”

많은 이들이 주께 묻지 않고 내가 주인이 되어 살고 있습니다.

내 고집. 내 성향. 내 취향대로 살다가

내 뜻대로 안되면 화를 내지요.

자식을 자기 뜻대로 키우려는 부모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께 속한 부모는 자신의 뜻이 없어야 합니다.

오직 주님의 뜻을 묻고

“이 아이를 향한 당신의 원하심은 무엇입니까”

기도하고 감동 받은 것을 나눌 뿐입니다.

우리는 주인이 아니고 피조물이고, 청지기입니다.

권세는 그렇게 자신의 의지가 꺾인 만큼 오는 것입니다.

요셉은 아버지의 사랑을 받고 채색옷을 입고 귀하게 여김 받고 자랐습니다.

공주처럼, 왕자처럼 자란 아이들은 굴욕과 섬김이 뭔지 모르기 때문에 엉망이지요.

요즘 아이들은 왕처럼 자랍니다. 그것이 아이를 마귀의 밥으로 만드는 것인 줄 모르고

그것이 사랑인줄 알고 아이를 제 멋대로 살도록 키웁니다.

다윗이 한번도 ‘어찌하여 그렇게 하였느냐’ 하거나 마음을 서운하게 한 적 없이

그저 오냐 오냐 키웠던 아도니야.

그는 어리석게 행동하고, 비참하게 죽었습니다.

부모들은 자녀들의 소원대로 다 해주면

그것이 자녀를 마귀에게 넘기는 것인 줄도 모르고

그저 모든 소원을 다 들어줍니다.

그래서 아이들은 내 멋대로 되는 것에 익숙해서

기다림, 인내, 좌절을 경험한 적 없어서

자기 마음대로 안되면 화가 납니다.

뭔가 원하는 것이 있으면

애교를 부리든 떼를 쓰든

어찌하든 내 뜻을 관철하려고 합니다

그렇게 자란 아이들은

좌절과 굴복을 몰라요.

요셉도 그렇게 자랐습니다.

그리고 구덩이에 던져 넣어졌을 때

‘형님. 다시는 안그럴께요. 제발 살려주세요’

하면서 처음으로 충격을 받고

그리고 13년 동안 혹독하게 훈련을 받습니다.

갑자기 어디론가 팔려가서 노예생활이 시작되었고

그리고 아무 죄없이 감옥생활을 하게 됩니다.

귀공자처럼 자라던 그가 채찍에 맞고 비참한 대우을 받고 쓰레기 취급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 당시 종이나 노예는 죽여도 그만이었습니다.

주인의 소유물에 불과했으니까요..

요셉은 그런 비참한 대우에 굴복해서

천한 일, 작은 일에 최선을 다하고

조금씩 인생을 배우기 시작합니다.

그렇게 잘나갈 때, 아버지의 사랑을 듬뿍 받을 때

마음에 평안이 없었던 그가

하나님의 임재를 배우기 시작합니다.

무릎을 꿇고 비참한 밑바닥의 삶을 시작합니다.

그 과정이 순탄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성경은 요셉이 착고에 매였다고 하였습니다.

“한 사람을 앞서 보내셨음이여 요셉이 종으로 팔렸도다

그 발이 착고에 상하며 그 몸이 쇠사슬에 매였으니

곧 여호와의 말씀이 응할 때까지라 그 말씀이 저를 단련하였도다“ (시편 105:17~19)

자신의 뜻대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완전히 꼼짝할 수 없는 시간들..

많은 고통의 과정..

하나님 왜 내가 억울하게 감옥에 갇혀있는 것인가요..

제가 13년동안 잘못한 것이 무엇입니까..

왜 주님께서 약속을 보이시고는 또 2년 동안 소식이 없나요..

묶이고 씨름하는 13년, 그는 굴복을 배우고 권세를 얻었습니다.

고집이 꺾인 만큼 지혜가 주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자신의 뜻과 의지가 꺾인 만큼 요셉에게 자유와 권세가 주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이것도 너에게 맡긴다..저것도 너에게 맡기겠다..

그리고 결국 식료 외에는 다 마음대로 하라고 할 정도로 전적인 권세를 부여받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우리 인생의 훈련입니다.

내 뜻대로 안되면 화가 나고 속상한가요?

아직 묶이지 않은 것입니다.

나를 변호하려 하고, 내 뜻을 관철하려 하고..

그것은 아직 굴복되지 않은 것입니다.

하나님. 내가 굴복되기 원합니다

내 취향, 나의 성향. 만족 시키지 않고

내 기분을 만족시키지 않고

주님을 만족시키는 것이 내 인생이 되기 원합니다

착고에 매여서 권세에 의탁하는 주의 종이 되기를..

내 삶이 굴복되기를..

내 혈기. 나의 악성. 주여 깨뜨려주시고

내 속성이 무너지게 해 주소서

주님만이 나의 왕, 나의 주인이 되게 해 주소서.

많은 사람들이 꿈을 꿉니다

자기가 성공하는 꿈. 유명해지는 꿈

남보다 뛰어나게 되어서, 내가 원하는 소원을 이루는 꿈..

그러나 그것은 대단한 꿈이 아닙니다

가장 위대한 꿈은 내가 굴복되어서 내 소원. 나의 의지, 내가 좋아하는 것이 모두 굴복되어서

내가 하나님의 사람 되는 것입니다.

요셉은 13년동안 고통속에 훈련을 받았습니다.

야곱도 목숨보다 귀한 사랑을 잃고 자기 뜻이 아닌 것에 굴복하는 훈련을 받았습니다.

모세. 다윗..을 비롯해서 모든 하나님의 사람들이 이러한 훈련을 통과했습니다.

환란과 문제를 통해 자기의 뜻이 무너지고, 하나님께 굴복되는 것.

그것이 그리스도인의 인생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가장 아름답고 위대한 인생은

내 뜻, 나의 취향이 무너지는 것입니다.

나를 통해 주님의 뜻이 이뤄지는 것입니다.

기도합시다.

내 의지가 무너지고

하나님의 사람이 되기 원합니다

이새의 아들 다윗.

내 마음에 합한 사람.

나도 그와 같이 아버지께 합한 사람이 되기를

내가 주께 굴복되고

우리 가정. 내 사랑하는 사람들이

하나님께 굴복되어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을 행하는

하나님의 사람이 되기를

내 삶이 바뀌고

내 가정이 바뀌기를

거룩하신 아버지

아버지께서 세상을 창조하셨고

아버지께서 모든 것의 주인이신데

우리는 마치 우리 자신이 세상을 창조하고

우리 인생을 창조한 것처럼

스스로를 창조한 것처럼

많은 순간에 우리 멋대로 살았습니다

우리 계획과 목적을 위해 주를 이용했고

우리 필요에 따라서 주께 나왔습니다

우리가 원하고 좋아하던 많은 취향. 성향

주께 허락받지 않은 많은 것들이 있었습니다

얻기 전까지는 이것만 얻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많은 것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막상 얻고 나니 거기에는 기쁨이 없었습니다.

내 멋대로 사는 삶. 내 취향, 내 고집대로 사는 삶에는

결코 만족이 없고 결코 평안이 없고 결코 행복하지 않다는 것을 이제 깨닫습니다

하나님. 우리의 왕이 되어주시옵소서

우리의 고집이 꺾이고

요셉처럼 야곱처럼 하나님의 사람이 되기를

아버지. 우리를 사로잡고 지배하소서

십자가가 우리의 심장에 꽂히게 하소서

이제 허탄한 꿈. 목표. 허탄한 방향을 내려놓기 원합니다

내 안에서 역사하소서

우리 안에서 역사하시고 우리를 통해서 역사하소서

이제껏 알지 못했던 참 만족, 희락, 자유함,

참 승리와 행복을 알게 해 주시옵소서

감사합니다.

주님. 당신이 왕이십니다.

저는 틀렸습니다.

주님이 옳습니다.

우리의 생각은 틀렸습니다.

당신이 맞습니다.

주님께 고집부린 많은 순간을 용서해 주소서

아버지의 사람이 되게 해 주소서.

굴복을 사모합니다.

십자가를 사모합니다.

성결함을 사모합니다.

나로 사는 삶에서

이제 주로 사는 삶

주를 의식하고 붙드는 삶을 살게 해 주소서.

주를 찬양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했습니다]

[예수를 알아갈수록

그 사랑에 빠지지 않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여러분. 더 많이 도취되시기를

도취되고 사로잡히고 미치시기를

예수 외에는 아무 것도 보이지 않도록

그것이 이상한 신앙이 아니라 정상적인 신앙입니다.

눈뜬 사람, 깨달은 사람은

예수 외에는 내 목숨을 바칠 대상이, 존재가 없음을 알게 됩니다.

예수께 우리 심장이 바쳐질수록

그것이 천국이고 행복입니다

천국은 여기 있다 저기 있다 못하리니

너희 마음. 너희 속에 있다.. 고 하셨지요..

마음을 토해서 부르짖고 쏟으세요

성령은 우리 안에 계십니다

비밀은 이것이니

너희안에 계신 그리스도.

영광의 소망이니라..

우리 안에.

밭에 감추인 보화.

생수의 강은 안에서 흘러나오는 것입니다.

많은 분들이 예수를 관념으로 알고

영의 실체를 모르기 때문에

주님이 멀리 계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주님의 영은 사람보다 더 선명한 실체이시기 때문에..

주의 영이 가까이 임하시면 외롭지 않고 행복하고 기쁘고

연인관계보다 더 친밀하고 데이트 시간보다 더 달콤하고 아름답고 자유롭고

그래서 주님과의 그 교제에 빠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실제적인 주의 영을 경험한 이가 없어서

사람 사이에 서로 사랑을 요구하고 섬겨달라고 떼쓰고

더 사랑하고 섬겨 달라는 끊임없는 투쟁과 싸움이 있는 것입니다.

부부싸움. 연인간의, 친구간의 싸움..

모두 나를 높이고 기쁘게 해 달라는 싸움인 것이지요.

그러나 예수의 영이 넘치면

아무 것도 모자라고 배고프지 않습니다.

그저 섬기고 발을 씻기고 남을 기쁘게 해 주는

그 자체가 만족이 됩니다.

어떤 보상을 바라고 섬기는 것이 아니라

그저 내 것을 나눠주고 낮은 자리에 거하는 그 자체를 기뻐하게 됩니다.

그리고 점점 천국 속성으로 바뀌어가게 됩니다.

이 땅에 고통이 있는 것은

천국에 속한 사람들과 지옥에 속한 사람들이 섞여있기 때문입니다.

지옥에 속한 사람들은 그저 남이 나를 잘해주고 사랑해주기를 원하고

남의 에너지를 뺏아먹는 흡혈귀 같은 존재로 살아갑니다.

그러나 천국을 경험하면 사랑, 배려, 자유가 있고.. 공급이 있기 때문에..

천국에 속한 사람들이 점점 증가될 때 서로를 바라보는 시선 가운데

어떻게 하면 상대방을 기쁘게 해 줄까.. 어떻게 더 위해줄까.. 그런 사랑이 흐르게 됩니다.

그리고 흐름이 바로 천국의 대기인 것입니다.

더 많은 천국을 경험하고, 더 많이 섬김으로써..

나를 포기하고 나를 주는 만족을 더 많이 누리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바랍니다]

[오후에는 천국의 세 가지 기초 원리에 대해서 얘기하겠습니다

가정의 원리에 대해서 먼저 얘기하겠지만..

가정 뿐 아니라 신앙생활. 직장생활. 대인관계..

모든 것에서 천국의 세 가지 기초 원리가 적용된다는 것을 나누려고 합니다.

크리스찬들이 영성의 원리들을 모르기 때문에...신앙은 개념적으로 알고, 실제 삶의 상식은 컴이나 세상 지식에서 얻는 경우가 많아요..

결혼 생활도, 경제 활동도 모든 것도.. 세상의 학자들의 얘기를 듣고..

그러나 우리는 모든 것의 중심에 말씀과 그리스도가 있어야 합니다.

결혼. 연애. 직장. 물질관리. 모든 것에 주께서 지배하시는 원리는 무엇인가.

구체적인 삶에서 경험해 나가야 합니다.

삶의 모든 영역에서 성경적 가치관이 중심이 되는 구체적인 원칙과 원리가 있어야 합니다.

우리 삶의 모든 영역에서 주님께서 통치하셔서

모든 부분에서 천국을 경험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에베소서 5장을 잠깐 보겠습니다.

에베소서

5장 22절부터 33절까지

서로 교독하겠습니다.

(에베소서 5:22~33)

아내들이여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 하라

이는 남편이 아내의 머리 됨이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 됨과 같음이니 그가 바로 몸의 구주시니라

그러므로 교회가 그리스도에게 하듯 아내들도 범사에 자기 남편에게 복종할지니라

남편들아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그 교회를 위하여 자신을 주심 같이 하라

이는 곧 물로 씻어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사 거룩하게 하시고

자기 앞에 영광스러운 교회로 세우사 티나 주름 잡힌 것이나 이런 것들이 없이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려 하심이라

이와 같이 남편들도 자기 아내 사랑하기를 자기 자신과 같이 할지니 자기 아내를 사랑하는 자는 자기를 사랑하는 것이라

누구든지 언제나 자기 육체를 미워하지 않고 오직 양육하여 보호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에게 함과 같이 하나니

우리는 그 몸의 지체임이라

그러므로 사람이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그 둘이 한 육체가 될지니

이 비밀이 크도다 나는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하여 말하노라

그러나 너희도 각각 자기의 아내 사랑하기를 자신 같이 하고 아내도 자기 남편을 존경하라

에베소서에는 가정에 대한 그리스도인의 원칙에 대해서,

그리고 가정과 교회의 중요한 연관성에 대해서 기록되어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직접 세우신 조직은 가정과 교회입니다.

가정과 교회. 이 두 가지는

하나님이 세우신 유일한 기관이고,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기관입니다.

또한 가정과 교회는 많은 공통점을 갖고 있습니다.

남편과 아내가 만나서 가정을 이루고 자녀를 생산하고

그리고 생산한 자녀를 양육합니다.

자녀가 건강하게 성장하도록 돕습니다.

교회도 그리스도와 성도의 연합이 있고

연합이 있은 다음에는 생산, 성장이 있습니다

교회와 가정이 서로 상징적인 보완 관계를 이루고 있죠

그래서 에베소서에서는 남편과 아내의 연합을

그리스도와 교회의 연합에 빗대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교회는 성도를 의미합니다.

그러니까 아내는 교회이자 성도인 것이고..

남편은 그리스도를 상징적으로 의미하고 있지요.

성도가 그리스도를 사모하듯, 아내가 그를 사모하고

그리스도가 성도의 필요 채우듯, 남편이 아내의 필요를 채웁니다.

아내는 에게는 성도가 주께 하듯 남편을 사랑하라고 하였고

남편은 주님이 교회를 위해서 자기 목숨을 버려 십자가에 죽으신 것처럼

목숨을 바쳐 아내를 사랑하라고 얘기합니다.

이 가정에 대해서..

천국 가정, 주님이 지배하시는 천국 가정이 되기 위해서

세 가지 원칙이 등장합니다.

첫째 원칙은 아내의 복종입니다

“아내들이여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 하라 ” (에베소서 5:22)

둘째는 남편의 아내 사랑입니다.

“남편들아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그 교회를 위하여 자신을 주심 같이 하라” (에베소서 5:25)

세 번째는 떠남. 분리. 독립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그 둘이 한 육체가 될지니” (에베소서 5:31)

첫째. 질서

둘째. 사랑

셋째 독립

이 순서를 꼭 기억해야 합니다.

첫째 원리는 질서에 대한 것이며, 이것은 천국의 외부 원리입니다.

질서란 기둥을 세우는 것과 같습니다.

이 원리가 성취되기 위해서는 나에게 맡겨진 사역. 위치를 지킬 수 있는 힘이 필요합니다.

그러므로 첫째 원리는 파워, 권세, 능력, 힘에 해당되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사랑에 대한 것이며, 이것은 천국의 내부 원리입니다.

질서가 기둥을 세우고 집을 짓는 것이라면

사랑은 건물 내부의 인테리어를 아름답게 하는 것입니다.

내면의 풍성함, 아름다움. 그것이 사랑의 속성입니다.

그런데 아무리 인테리어가 예뻐도, 지붕이 없다거나, 기둥이 없으면 아무 의미가 없죠

그처럼 사랑 이전에 질서의 기초가 세워져야 하는 것입니다.

세 번째 원리는 분리 독립에 대한 것이고

이것은 집의 문, 창문과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첫 번째부터 설명해 보도록 하죠.

“이는 남편이 아내의 머리 됨이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 됨과 같음이니 그가 바로 몸의 구주시니라” (에베소서 5:23)

남편이 아내의 머리된 것이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된 것과 같다고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남자에게 질서를 맡기셨습니다.

리더의 역할을 맡기셨어요.

그리고 여성들에게는 돕는 배필의 사명을 주셨어요

창세에 그렇게 시작하시고 나중에 그것을 바꾼 적이 없으시니,

지금도 여전히 창조 때와 같은 원칙이 적용되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여성은 자신이 보필하는 남성을 세워주고 도와야 하고,

남자들은 여성을 이끌고 리더십을 발휘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첫 번째 이 사역에서 아담이 실패했습니다

아담이 자기에게 맡겨진 사역, 청지기로서 동산을 관리하는 것에 실패했습니다.

그러나 동산 관리 이전에 아내와의 관계에서 실패하였습니다.

하나님께 받은 말씀을 아내에게 충분히 전하고

아내가 말씀에 순종하도록 권위를 세우는 역할을 감당하지 못했습니다.

아담이 이 첫째 사역에서 실패하고 타락이 오고,

그 결과 온 것이 거스름입니다.

오늘날 이 시대의 기본적, 근본적인 죄는 거스름입니다.

권위 자체가 무너져 버린 것입니다.

하나님은 선하신 분이십니다. 우리 삶을 하나님께 바칠 때

주님은 우리가 창조된 목적대로, 우리에게 가장 행복하고 즐거운 것을 허용하십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신뢰하지 않고, 그 질서를 무시하고 거스르게 되었습니다.

아담이 하나님의 말씀을 거스르고 선악과를 먹은 후부터..

아내가 남편을 거스르고, 자녀가 부모 거스르고

서로 미워하고 형제를 살인하는 등.. 많은 악이 따라서 일어났습니다.

첫 번째의 사역.. 질서를 유지하지 못할 때 이런 일들이 일어난 것입니다.

질서와 권위를 세울 수 없다면 그것은 남자의 자격이 없는 것입니다.

아내가 남편을 우습게 안다면, 그것은 근원적으로 남편에게 책임이 있습니다.

남편이 사명을 감당하지 못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남자의 첫 번째 잘못은 아내를 순종하도록 돕지 못하는 것에 있습니다.

여자에게 주어진 가장 큰 능력은 존경하는 능력입니다.

그런데 이 시대에는 거스르는 영이 너무 많아서

아내는 남편에게 거스르고 함부로 하고, 자녀들은 부모님을 공경하지 않고 멋대로 합니다.

그리고 부모가 자녀를 순종시키지 못하고, 아이의 고집대로, 성질대로 키우는 것이

아이를 마귀에게 넘기는 것이라는 사실 자체를 모르고 있습니다.

태양계의 행성들이 태양을 중심으로 질서있게 운행하는데

질서를 이탈한다면 그 별은 우주의 미아가 되겠지요

그처럼 거스름이 있는 곳에는 혼란이 있습니다.

집의 기둥이 무너지는 것과 같습니다.

타락 이후에 이 질서가 무너졌습니다.

사람들은 보통 ‘질서’ 하면

로봇처럼 기계적인 복종을 의미하는 것이라 생각하는데

그것은 사단에게 속고 있는 것입니다.

아내가 남편에게 순종한다고 해서,

남자가 여자를 학대하거나 비인격적으로 대해서는 안됩니다.

군대식 상하 명령 구조를 순종이라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전혀 잘못 이해하는 것입니다.

지옥에는 억압이 있습니다. 마귀들은 항상 싫어하는 것을 시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하나님은 굉장히 인격적이십니다.

그 분은 왕이시지만 강요하지 않으십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의 질서에는 완악함, 강팍함. 인격적 억압이 없음을 이해해야 합니다.

천국적인 관계를 유지하려면 서로 억압이 있으면 안됩니다.

아무리 좋은 것, 영적인 것이라 해도 억지로 시키면 반작용이 있습니다.

일년 걸려 변화될 것이 이삼년 걸리게 됩니다.

진정한 변화를 위해서는 항상 인격을 존중해야합니다.

하나님이 우리 존중하시기 때문에 우리도 서로 존중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진정한 순종에는 상호 배려와 인격성이 있습니다.

질서는 굴종하고 비인격적인 대우를 받고 그런 체제가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영, 천국의 통치가 임하는 원리입니다.

질서 가운데 순복하고, 자기 위치를 알고 낮아질 때..

거기에 하나님의 영광과 임재가 흐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기 영역에서 자신의 밑에 맡겨진 사람들은 순복 시켜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단, 하나님 기뻐하지 않으시는 것에 대해서 순종하도록 윗 권위가 요구할 때..

예를 들어 부모가 자녀에게 배고프다고 도둑질을 해 오라고 요구할 때,

혹은 예수를 부인하라고 신앙을 버리라고 요구할 때는..

부모보다, 윗사람보다 더 큰 권위이신 하나님께 순종 해야 하므로..

그럴때는 불순종하는 게 진정한 순종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어쩔 수 없이 순종할 수 없을 때에 라도

순종의 자세를 버려서는 안됩니다.

더 큰 권위이신 하나님께 순종하기 위해서 요구에 대해서는 거절해야 하지만

그래도 사랑과 존경의 태도를 잃지 않고 순종의 자세를 유지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그 자세인 것입니다.

원칙이 분명해야 합니다

먼저, 권위와 질서가 확립되어야 하고

그 다음에 사랑이 필요합니다.

항상 구약은 질서, 힘을 보여주고

신약은 사랑을 보여줍니다.

신약이 있기 전에 구약이 있듯이

사랑이 있기 전에 먼저 질서 앞에 굴복되어야 합니다.

힘이 없이 사랑만 하려고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나 힘이 없는 사랑은 짓밟히고 무시당합니다.

불순종과 거스름이 있는 사람에게 사랑을 베풀면 코웃음을 칠 뿐, 고마워하지 않습니다.

그러한 사랑은 영향을 줄 수 없어요.

바로에게는 사랑을 베푸는 것이 아니라

열가지 재앙을 통해서 애굽을 초토화 해야 하는 것입니다.

첫 번째 영역은 질서입니다.

그런데 많은 남성들에게 질서를 지킬 힘이 없습니다.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 에덴을 지켜라, 가정을 지켜라...

이 명령을 수행하지 못하는 남성들이 많이 있습니다.

영적 권세. 질서. 이것은 애굽 단계이며 첫째 단계입니다.

내 위치에서 내 위에 있는 사람에게 순복하고 존경하고

그리고 내 아래 맡겨진 영역의 사람들을 다스리는 것.

이것을 회복해야 합니다.

사랑 이전에 먼저 영적 권세를 받아야 합니다.

다스릴 수 있으려면 힘이 있어야 하고 권능을 받아야 합니다.

이것은 원래 타고나는 것이 아니라 기도하면 주어지는 것입니다.

사랑. 분별. 권능. 모든 것은

주님 앞에 무릎을 꿇고 기도하고 주 앞에 나아갈 때 받는 것입니다.

원래부터 잘하는 것에는 생명이 없습니다.

원래 기질적으로 리더십이 많고, 타고날 때부터 사랑, 지혜가 많은 것은

하나도 인정 받지 못합니다. 그것은 타고난 것이며 아담에 속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원래부터 리더십이 있는 사람들은 그것으로 자기를 드러냅니다.

원래부터 의지력이 강한 사람이 그것이 인간의 의가 되어 자신을 높이게 됩니다.

원래부터 정이 많은 사람도 그 정을 통해서 자기가 나타납니다.

인간으로부터 나온 인본주의적인 애정은

내 혈연.. 내 기질에 맞는 사람.. 나에게 맞는 사람끼리, 우리끼리만 사랑하려고 합니다.

거기에는 사망의 냄새가 있고, 자아의 악취가 있는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은 생명에 속한 것이 아니라 선악과에 속한 것입니다.

선악과는 모두 사망입니다. 선한 것에도 악한 것에도 생명이 없습니다.

오직 모든 좋은 것은 기도를 통해서, 십자가를 통해서만 옵니다.

리더십도, 사랑도 타고난 것이 아닙니다.

주님.. 제게 왜 권능이 없습니까.. 저는 왜 사랑할 수 없습니까.

주님...도와주십시오. 이렇게 엎어지면 주님께서 역사하시고

우리 안에 사랑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두려운 사람이 “주님. 두렵습니다. 제 힘으로는 어쩔 수 없습니다. 도와주세요.”

하고 엎드리면 속에서 강한 담대함이 일어납니다.

이것은 내가 아니라 주님이 역사하시는 것입니다.

지혜도, 아무 분별도 없고, 도통 모르겠는 사람이 주님께 나아가면

주께서 지혜와 통찰을 허락하십니다.

그 차이가 너무나 선명해서 오직 주님을 드러낼 수 밖에 없게 됩니다.

주님으로부터 오는 능력과 사랑, 지혜를 경험한 사람은

그 근원이 주님께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다른 사람이 자기를 높이는 것에 대해 불편하고 불쾌하게 여기게 됩니다.

누가 자신에게 감사의 표현을 하면 “나에게 감사하지 말고 주님께 감사하세요.”

하고 얘기하게 됩니다.

결국 모든 권능과 사랑과 지혜는

주님과의 관계를 통해서, 주님으로부터 임하는 것입니다.

첫째, 권능을 위해서는 굴복이 필요하고

둘째, 사랑을 위해서는 헌신이 필요합니다.

첫째, 질서를 세울 수 있는 권능은

하나님께 굴복할수록 얻게 됩니다.

그래서 불안하고 쫓기고 눌리고 그런 사람들은

사실 굴복이 안된 사람들입니다.

아직 하나님께 드려지지 않았어요

그러면 능력이 오지 않습니다.

내 뜻대로 하려고 하고, 내 힘으로 다 하려고 해서 늘 불안해요

그러므로 걱정되고 쫓기고 하면 이 고백을 꼭 하십시오.

“저는 주님의 질서 아래 엎드립니다

주님은 나의 왕. 나의 주인이십니다. 나는 종입니다.

내 힘으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습니다.

주님의 뜻을 따르기 원합니다.“

이렇게 계속 고백하면 불안과 두려움이 사라집니다

내 멋대로 내가 주인이 되면 마귀가 와서 누르기 때문에

주님께 주권을 넘기면 평강과 기쁨이 임합니다.

둘째, 내부를 풍성하게 하는 사랑은

주님께 헌신하는 것을 통해서 옵니다.

주님께 헌신되지 않은 사람, 주님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항상 속이 공허하고 허탈하고 텅빈 것 같아서..

자꾸 세상 쾌락에 빠지게 됩니다.

내 자신을 주께 드리지 않고, 헌신하지 않아서

인테리어를 내가 채우고 있어서 공허하고 사랑이 메마르는 것입니다.

“하나님. 내 삶을 주께 드립니다. 내 안에 임하소서.”

그럴 때, 하나님께서 사랑을 일으키십니다.

섬김의 행복을 알게 되고

어떻게 주를 기쁘시게 할까..

어떻게 아이를 아내를 기쁘게 할까

그런 마음이 자꾸 올라옵니다.

그럴수록 속이 꽉차고 충만한 느낌이 듭니다.

배부르고 넘치는 느낌이 들어요

다만 중요한 것은

반드시 첫째 질서가 이뤄진 후에

사랑이 들어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세 번째 원리는 독립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그 둘이 한 육체가 될지니” (에베소서 5:31)

성경에서는 부모를 떠나서 아내와 연합하고 한 가정을 이루라고 합니다.

부모를 떠나라는 것은 경제적, 물리적, 정신적으로 독립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한국 가정에서 가장 안되는 것이 이것입니다.

성경에서는 분명히 떠나라고 했는데 떠나지 못하고 있는 가정들이 많습니다.

이것이 안되어서 분란과 고통이 가득한 가정들이 많습니다.

부모를 한집에 모시는 것은 기본적으로 성경적인 것이 아닙니다.

한집에 두 가정이 함께 모여 사는 것은, 형편이 그럴 수 밖에 없으면 어쩔 수 없지만

기본적으로 성경적이지 않습니다. 한 가정에 머리가 두 개일 수 없기 때문입니다.

독립된 가정은 남편에게 머리의 역할을 주게 됩니다.

아내와 함께 서로 같이 기도하고 의견을 나눌 수 있지만

확실하지 않을 때 결정할 사람은 남편입니다.

그런데 결혼한 사람들이 여전히 부모에게 묻고 결정해요

부모도 자녀들의 사소한 결정에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간섭을 합니다.

그것은 아직 가정으로서 독립된 것이 아닙니다.

많은 중요한 결정을 결혼한 자녀의 부모가 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성경적이지 않습니다.

부모는 조언할 수 있으나 결정을 해서는 안됩니다.

조언을 받고 그것을 참조해서 최종적으로 결정할 사람은 가장입니다.

이것이 분명해야 합니다.

질서가 가정을 세우는 것이고,

사랑이 가정 안의 인테리어라면

분리 독립은 창문, 문과 같습니다.

집이 안전하게 보호되려면 문을 닫아야 합니다.

문이 활짝 열려있어서는 가정의 순결성이 유지되지 않습니다.

가정은 경제적, 정신적으로 독립해야합니다.

그래야 온전한 가정으로 성장할 수 있습니다.

자녀들이 떠나면 부모는 더 이상 간섭해서는 안됩니다.

또한, 부모가 자녀를 키울 때에도..

자신의 마음과 생각으로 키우는 것이 아니라

이 아이에게 순종과 헌신을 가르쳐서 주님의 사람 되게 해서

직접 주님과 교통하고 주님이 왕이 되시는 바른 결정을 하고 바른 결실을 맺도록

엄마 아빠의 조언 없이 스스로 결단할 수 있도록 계속 도와야 합니다.

사역자도 성도들에게 지시하고 명령해서는 안됩니다.

지금은 구약 시대가 아니어서, 모든 사람이 성령을 받고 직접 주님과 교통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역자는 주님과 교통할 수 있는 원리와 공식을 가르쳐 주고

각 사람이 직접 교통하도록 도와야 하는 것입니다.

원리를 가르치고, 그것을 적용하면서 한사람 한사람 주님께 나아가도록 해야지

사역자가 직접 문제를 다 풀어주고 성도들은 정답만 외우는 것은 건강한 신앙이 아닙니다.

목사님의 하나님이 아닌 나의 하나님을 만나고 경험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처럼 부모도 자녀를 가르칠 때..

아이들이 점차 엄마의 하나님 아빠의 하나님이 아닌

스스로의 하나님을 경험하도록

스스로 판단하도록 돕고 세워서

결국에는 더 이상 조언이 필요하지 않은,

독립된 인격이 되도록 하는 꿈을 가져야 합니다.

많은 부모들이 자꾸 자식들을 강요합니다.

그것은 아직 자기 자신도 하나님께 드려지지 않은 것입니다.

자신을 하나님으로 여기기 때문에 자녀들을 억압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완악한 것이며, 청지기의 자세가 아닙니다.

그것에 대해서는 주님께서 책임을 물으실 것입니다.

우리에게 맡겨진 모든 것.

돈. 시간. 자녀. 직장. 모든 것에 대해서

언젠가 주님께서 물으실 것입니다.

“너는 맡긴 것을 잘 관리하였느냐..

네가 맡은 영역에 질서를 세워서 너의 영역을 확보하였느냐..

맡긴 것을 사랑으로 섬겼느냐

외부의 다른 세력이 들어오지 못하게 분리시켰느냐“

질서를 세우고

그 다음에 사랑을 하고

그리고 이 집이 외부의 침투를 받지 않게 분리, 독립시키고..

이것이 천국이 세워지는 기본적인 원리입니다.

위에서는 가정의 원리만 얘기했는데

이 세 원리는 비단 가정에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과의 관계에 있어서, 나를 지키고 나의 영혼을 성장시키는 데 있어서

교육, 정치, 나라를 유지하는 데 있어서..

이 모든 영역에서 질서. 사랑. 문닫기.

이 세가지 기본 원리가 적용된다는 것을 이해하셨으면 좋겠습니다.

하나님과의 관계에 있어서..

먼저, 하나님의 권위에 굴복되고 엎드려야 합니다.

그 다음에 중심으로 마음과 뜻을 다해 주를 사랑해야 내 가슴이 만족되고 열매가 가득해집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아닌 다른 것들.. 다른 사상과 철학과 가치관과 문화에 대해서 문을 닫고 분리되고, 주님 아닌 다른 것이 들어오지 못하게 순결을 유지해야 합니다.

내 영혼을 지키고 발전시키는 데 있어서도...

먼저 권능을 받고, 질서를 지킬 힘을 얻어야 하고,

그 다음에 사랑의 헌신을 배워야 하고, 사랑이 모든 삶의 목적이 되어야 합니다.

세 번째는 외부의 악한 것 들어오지 못하게 분리시키고 영혼을 맑게 지켜야 합니다.

사역에 있어서도...

먼저 건강한 권위와 질서를 세우고,

주님을 사랑하는 것을 가르치고, 성도들을 사랑하고

그리고 분리 독립되어서 다른 사역과 섞이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교육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먼저 아이들을 순복시키고 질서를 잡는 것이 우선입니다.

그 다음에는 아이들에게 인격적인 사랑과 따스함, 기쁨을 경험하게 해 주어야 하고

마지막으로는 교육에 세상의 사상과 철학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분리시켜야 합니다.

나라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지지하지 않은 사람이라고 해도, 일단 대통령으로 선출된 사람에 있어서는

함부로 비판하고 말하면 안됩니다. 순복하고 존경하고, 그를 통해 하나님께서 역사하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그리고 이 나라를 사랑하고, 세금을 내는 것부터 시작해서 나라를 위해 봉사하고 섬기는 것을 기뻐해야 합니다.

그리고 이 나라에 어두운 세력이 침투하지 못하도록, 분리 독립을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순복, 질서와 권위에 굴복하는 것.

사랑, 중심으로 사랑하는 것.

순결, 외부의 세력으로부터 분리 독립되는 것.

이런 원리를 통해서

천국이 우리 삶의 모든 영역에 구체적으로 이뤄지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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