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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10년' 행복 비결 셋] ①연골 ②인간관계 ③할 일

②관계


전문가들은 마지막 10년을 행복하게 보내는 비결로 ①연골 ②인간관계 ③할 일을 꼽았다. 이 세 가지에 따라 개개인의 행복도가 어떻게 달라지는지 알아보기로 했다. 연골에 이어 오늘은 인간관계와 할 일 차례다.


[가족관계 좋은 최순례 할머니]

18년前 뇌졸중 와 右반신 마비… 매일 아침 산책 보채는 남편
수시로 찾아오는 3남매·친구… 이젠 밥도 짓고 동네서 수다도

조맹제 서울대 의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가 수십년간 노인 환자들을 보면서 내린 결론이 있다. "신체 조건이 똑같은 환자라도 '관계'와 '할 일'에 따라 경과가 전혀 다릅니다. 가령 같은 치매라도 2년 만에 인지 기능이 10만큼 뚝 떨어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3밖에 안 떨어지는 사람이 있어요. 그 이유를 보면 결국 가족·친구와 친하게 지내고, 봉사활동·취미활동 하느라 바쁜 사람들입니다. 인간관계가 좋고 할 일이 있는 사람은 심지어 같은 병에 걸려도 통증을 덜 느낍디다."

◇산책 전투

최순례(73) 할머니는 아침 6시에 눈 떠서 밤 10시에 잠들 때까지 남편 문기홍(75) 할아버지와 쉴 새 없이 투닥투닥 다툰다. 아침에 할아버지가 "밥 짓고 반찬도 하라"고 하면, 할머니가 "아유, 나 죽으면 어떻게 하려고…. 당신도 스스로 해먹을 줄 알아야 해요" 하는 식이다.


	지난달 6일 경기도 구리시 한 아파트 단지에서 문기홍 할아버지가 뇌졸중을 앓는 아내 최순례 할머니와 산책을 즐기고 있다. 최 할머니는“만날 싸워도 부부밖에 없다”고 했다. /김지호 기자
지난달 6일 경기도 구리시 한 아파트 단지에서 문기홍 할아버지가 뇌졸중을 앓는 아내 최순례 할머니와 산책을 즐기고 있다. 최 할머니는“만날 싸워도 부부밖에 없다”고 했다. /김지호 기자

그때마다 할아버지는 완강하다. "솔직히 제가 밥 짓는 게 빨라요. 아내는 우반신이 불편하니까 밥 지을 때 자꾸 잡곡 알을 바닥에 떨어뜨려서 제가 마루에 엎드려 주워 담아야 하거든요. 하지만 의사가 '생활 속에서 자꾸 움직여야 운동이 된다'고 했어요. 반찬도 사먹으면 편하지요. 이 사람 움직이게 하려고 제가 옆에서 파도 썰고 마늘도 빻습니다. 단, 설거지는 제가 다 합니다."

아침 먹고 3시간 정도 평화가 온다. 할머니는 강아지와 놀고, 할아버지는 노인정에 다녀온다. 그 뒤엔 '2차 전투'다. 할아버지가 할머니에게 "산책하자"고 성화를 부린다. 집 근처 공원까지 할머니는 20분 걸려 노인용 전동차를 타고 가고, 할아버지는 걸어서 뒤따라 간다. 할머니가 "솔직히 귀찮아서 가기 싫은데 막상 가보면 햇볕도 쬐고 동네 할머니들이랑 얘기하니까 좋다"고 했다.

◇"최고의 선물"

18년 전 뇌졸중이 오기 전까지, 할머니는 서울 가락동 농수산물 시장에서 야채 가게를 했다. 할아버지는 젊어서 사무직으로 일하다 중년 들어 남대문시장에서 일당 받고 등짐을 졌다. 물려받은 것 없이 둘이서 몸으로 고생해서 네 살 터울 3남매를 대학까지 가르쳤다.

할머니가 쓰러진 뒤 할아버지는 하던 일을 그만두고, 할머니 간병에 '풀타임'으로 매달렸다. 사회생활 초년병이던 3남매가 "두 분 생활비는 저희가 책임지겠다"고 약속했다. 할아버지는 "젊어서 많이 싸웠고 지금도 자주 다투지만 나이 먹을수록 세상에 부부밖에 없더라"고 했다.

"이 사람 쓰러진 첫해, 석 달 넘게 입원해 있으면서 정말 별별 사람 다 봤어요. '아, 저 집 사람들은 환자가 차라리 죽길 바라는구나' 이런 게 다 보이더라고요. 제가 이 사람한테 잘해야지, 자식들도 부모 귀한 줄 알아요. 내가 이 사람 천대하면서 자식들이 효도하길 바라는 건 말이 안 되죠."

할머니에게 '남편이 평생 해준 일 중 가장 좋은 일이 뭐였느냐'고 물었다. 할머니는 "7년 전에 노인용 전동차 사준 거"라고 했다. "자식들이 준 돈에서 한 달에 10만원씩 꼬박꼬박 떼어서 한 3년 모으더니, 어느 날 '짠' 하고 사왔어요. 내가 그거 타고 다니는 동안에도 매달 똑같이 계속 모아서 올 초에 신형으로 바꿔줬고요."


[나 홀로 사는 김복길 할머니]

"남편? 어딨는지 몰라, 애들? 바빠"… 뇌졸중 악화로 치매까지 우려

◇"왜 안 죽나 몰라"

똑같은 수도권 서민동네 아파트지만, 김복길(가명·81) 할머니 집은 분위기가 전혀 달랐다. 한쪽 방에 매트리스 하나, 나머지 한쪽 방에 옷장과 TV 한 대가 세간살이 전부였다.

뇌졸중을 앓은 지 6년째지만, 실제 상황은 18년 된 최 할머니보다 훨씬 나빴다. 할머니는 혼자 자고 혼자 깼다. 부스스한 얼굴로 보행기에 의지해 아파트 2층 계단을 내려가면서 "어서 죽어야지, 왜 안 죽나 몰라" 하고 신음했다.


	수도권 또 다른 아파트에 사는 김복길(가명) 할머니는 혼자 깨어나 혼자 밥 먹고 혼자 잠든다. 낮 동안 집 근처 노인복지시설에 가서 점심·저녁 얻어먹는 게 할머니의‘낙’이었다. /이준헌 기자
수도권 또 다른 아파트에 사는 김복길(가명) 할머니는 혼자 깨어나 혼자 밥 먹고 혼자 잠든다. 낮 동안 집 근처 노인복지시설에 가서 점심·저녁 얻어먹는 게 할머니의‘낙’이었다. /이준헌 기자

할머니가 향하는 곳은 집 근처에 있는 한 노인복지시설이었다. 작년 10월 쓰레기 버리러 나갔다가 넘어져서 발가락이 부러졌을 때, 동네 사람이 할머니를 이 시설에 업어다 줬다. 이후 이 시설 이현숙(가명·58) 원장의 호의로 낮 동안 이곳에서 점심·저녁을 얻어먹고 밤에만 자기 집으로 돌아간다.

◇"말 상대만 있어도 내게는 천국"

사실 작년에 업혀오기 전에도 할머니는 이 원장에게 신세를 졌다. 4년 전, 동네 사람들이 이 원장에게 "독거 노인이 한 분 계신데 냄새가 너무 난다. 와서 좀 씻겨만 주시면 안 되겠느냐"고 했다. 이 원장이 가보니 집 안이 거의 쓰레기장이었다. 이후 매주 한 번씩 이 원장이 시설에 할머니를 모셔다 목욕시켜 드렸다.

할머니는 집도 있고 자식들도 있다. 그래서 규정상 시설에 모시기도 어려웠다. 이 원장이 할머니 휴대전화로 자식들에게 전화를 걸었다. "돌보러 오겠다"는 말 대신 "우리 엄마, 우리 대신 잘 돌봐달라"는 말만 들었다. 이 원장이 "계속 혼자 지내다 보니 꼭 필요한 일 말고는 문밖 출입을 안 하고, 남들과 접촉이 없으니 정신까지 혼미해지는 악순환이 벌어진다"고 했다. 취재팀이 찾아간 날, 김 할머니는 반가워했다. 하지만 대화를 길게 이어가기는 쉽지 않았다. 뭘 물어도 한마디 하고 툭 끊겼다. "난… 움직이기 싫어. 만사가 다 귀찮아. …남편? 어딨는지 몰라. 애들 때문에 살았어. …애들? 바빠. 손녀 곧 결혼해. …어디서 하냐고? 몰라."

할머니는 집에 있으면 밥 먹기 싫다고 했다. 꼭 몸이 불편해서만은 아니었다. 시설에선 잘 잡쉈다. "거기선 혼자 안 먹잖아."



[출처] 본 기사는 조선닷컴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