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쇄원의 구성과 영역은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입구 아래에서부터 뒷산인 옹정봉에 이르기까지 무한히 넓고 가득하나 이를 아는 사람은 드물다. 이처럼 일련의 흐름은 뒷산 마을로 이어지거나 혹은 다시 소쇄원 출입구로 되돌아온다. 일부는 담장으로 일부는 대밭으로 그리고 일부는 이름 없는 나무로 경계를 이룬다.
눈앞에 보이는 것들만 느끼다 눈을 들어 멀리 바라보면 뒷산과 주변을 감싸고 있는 대나무숲과 각종 나무들이 병풍처럼 둘러져 있다. 그렇다면 어디까지가 소쇄원인가? 담장 안에 국한된 소쇄원은 한정되고 눈에 보이는 것만 느껴져 다소 무미건조하다. 멀리 상념의 나래를 펴서 관조하면 무등산, 그리고 보이지 않는 나주의 금성산까지도 느낄 수 있는 감각의 확장이 일어난다. 선비들의 도가적 이상향이며 염원의 대상인 ‘무이구곡’(武夷九曲)으로 이해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소쇄원은 우리나라 궁궐 정원의 대표격인 창덕궁의 후원과는 어떤 차이가 있는가? 자연 한가운데 있으며 소박하고 개인적인 정서가 농축된 소쇄원에 비하여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창덕궁의 후원은 궁궐의 정원답게 다양한 시설들이 있어 호화롭고 다소 인위적이며 세련미가 가득하다. 창덕궁 후원은 금원(禁園)이라 하였는데, 이는 왕실만의 것으로 일반인들의 출입을 금한다는 뜻이었으며, 일제가 일반인들의 출입을 통하여 왕조의 권위를 떨어뜨리고자 창경궁에 동물원을 만들면서 비원으로 불리기도 하였다.
창덕궁의 후원에는 부용지, 애련지, 옥류천 등의 물을 중심으로 주변에 수많은 정자와 사계절의 변화를 느낄 수 있는 활엽수가 많이 자라고 있다. 우리 전통원림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는 물과 나무를 중심으로 자연과 조화를 이룬 것이다. 특히 우리의 연못에는 전통적으로 중앙에 둥근 섬이 놓이는데, 이는 천원지방(天圓地方)의 음양오행설을 바탕으로 한 것이다. 이에 비하면 중국과 일본의 연못은 타원형이거나 굴곡이 많은 모습이다. 규모에 있어서도 우리 연못은 중국의 연못처럼 턱없이 넓어서 위압감을 주거나 일본의 것처럼 작고 인공적이어서 답답함을 주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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