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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병원 갈 때마다 느낀다. 언제나 의사는 환자보다 강자다. 환자는 의사의 말에 절대적으로 복종해야 하고 반문이나 의문을 제기할 수 없다. 과도한 병원비가 나와도 진료를 받은 당연한 결과로 인정한다. 의료 차트를 보거나 진료 진행 과정을 들을라치면 그들만의 신묘한 의학 언어들을 보고 듣게 된다. 환자는 고개를 끄덕이고 잘 부탁드린다고 말하는 게 전부일 것이다.


 
왜 그럴까? 환자나 일반인에게 절대적으로 부족하고 생소한 의학 지식 때문이다. 간단한 용어들도 그들만의 기호화된 표현을 쓴다. 알아들을 수 없으니 자연히 약자가 된다. 어려운 의학 표현을 사용하는 게 어쩔 수 없다면 의료적 약자가 비참함을 느끼지 않도록 좀 더 친절한 서비스로 개선되길 바랄 뿐이다.

교회에서도 이와 같은 상황을 가끔, 아니 자주 느끼곤 한다. 기호화된 언어로 말미암아 설교자와 청중이 강자와 약자로 나뉘는 현상을 쉽게 본다. 강단 위의 설교자는 설교 본문 중 특정 단어가 헬라어 원문에는 이렇게 쓰여 있다고 말한다. 눈치 빠른 독자들은 이미 알아챘겠지만 '헬라어 원문'이란 건 존재하지 않는다. 아니 현재 우리가 보는 성서는 그 원문이라 할 수 있는 문서 자체가 없다고 보는 편이 옳을 것이다. 어찌 되었든 특정 단어의 헬라어 혹은 히브리어를 불쑥 꺼낸다.

재밌는 건 지금까지 문장 전체를 말한 사람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다는 것이다. 꼭 단어다. 문장 전체를 사역(思繹)하기엔 역부족인가 보다. 헬라어 단어는 성·수·격이 모두 존재하는 복잡한 언어다. (히브리어는 말할 것도 없고 헬라어만큼이나 혹은 그보다 더 복잡하다.) 한 단어의 시제와 격에 따라 의미가 판이하게 달라지는 헬라어를 단어 하나 쏙 빼내어 이 단어가 본래 이렇게 쓰였다고 말하는 것 자체가 당찮은 말이다.

물론 대부분 목회자들이 스스로의 힘으로 헬라어를 분석하기보다는 주석을 참고하거나, 헬라어를 분해해주는 프로그램을 돌려 그대로 인용할 터이니 고전어 사용의 정확성에 대해 심각하게 문제 삼고 싶지는 않다. 문제는 그 말을 아무도 알아들을 수 없다는 데 있다.

설교자가 강단에서 헬라어나 히브리어를 말하는 순간 회중은 바보가 된다. 그 단어를 단 하나도 알아들을 수 없기 때문에 회중은 전적으로 그것이 옳다고 믿을 수밖에 없다. 만에 하나 엉뚱한 단어에 전혀 다른 뜻을 말한다 해도 지적하거나 문제를 삼을 수 없다. 모르기 때문이다. 그리고 설교자는 이렇게 말한다.

"이 단어는 이 의미를 지니고 있고, 이 단어의 어원은 저런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때문에 이 해석은 요런 의미가 숨어 있었습니다. 정말 대단하지 않습니까."

회중은 "아멘" 한다. (할 수밖에 없다. 모르기 때문이다. 설마 우리 목사님이 틀린 말 했겠나.)

나는 이 상황을 예배당 내에서 절대 강자(설교자)와 절대 약자(회중)가 나뉘는 순간으로 본다. 아무도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하며 성경의 본뜻이 이 단어(헬라어, 히브리어)에 담겨 있다고 말한다면, 그 말을 사용하고 알고 있는(혹은 알고 있다고 착각하는) 설교자에게 상당한 권력이 생기는 것이다.

설교자는 자신의 설교에 권위를 싣고 싶어 한다. 누구도 반박할 수 없고, 들으면 마음을 휘어잡을 수 있는 그런 권위가 자신의 설교에서 나오길 바란다. 하나님 말씀을 대언하는 자로서 그런 마음이 드는 것을 누가 뭐라 하겠느냐마는, 강력한 '평신도 제압용' 언어를 사용하는 건 좀 아니다 싶다.

우리가 듣고 싶은 것은 성서에 나오는 말씀과 우리의 일상이 공명하는 가슴 깊은 울림이지 원어 뜻에 담겨 있는 비밀스런 지식이 아니다. 그리고 그런 언어를 남발하는 목회자를 "역시 우리 목사님은 똑똑하셔"라고 칭찬하고 싶지도 않다. 그저 멍하니 그런가 보다 하는 것이지.

설교자들이 성육신의 마음을 알았으면 좋겠다. 예수님은 인간의 몸을 입으셨다. 그리 특별하지도 잘나지도 않은 나사렛의 한 인간으로 오셨다. 하나님은 인간을 이해하셨다. 예수님은 어렵게 말하지 않으셨다. 언제나 일상의 언어로 말씀하셨고, 조금 어렵다 싶으면 제자들에게 다시 설명해주셨다. 누구나 알아들었지만 누구의 말보다 권위가 있었다. 그런데 현대의 목회자들은 반대다. 더 어렵게 해야 권위가 서는 줄 안다. 제발 성육신의 섭리를 알았으면 좋겠다.

동종업계에서 종사하는 사람으로서 억울한 사람도 있을 것 같다. 성도들에게 더욱 유익하고 정확한 설교를 위해 열심히 헬라어 뒤적이며 설교하는 데 너무하지 않느냐고 볼멘소리를 할 사람도 있을 것 같다. 물론이다. 모든 설교자가 권위를 획득하기 위해 설교 시간에 헬라어를 구사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또한 헬라어나 히브리어 단어를 분석함으로 보다 깊은 말씀의 통찰력을 얻을 수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렇다면 해석의 과정을 굳이 설교 시간에 자랑하듯 꺼내기보단 설교를 준비하는 동안 철저하게 분석하고 연구하여 보다 쉬우면서도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언어로 풀어내는 것이 설교자의 자세가 아닐까?

어쨌든 한국교회에서 설교를 듣는 입장에 있는 분들이여. 모르겠으면 설교 끝나고 꼭 질문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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