헐버트(Hulbert, Homer Bezaleel)[1863-1949]는 참으로 한국을 사랑하였던 선교사였다. 한평생 살아가면서 한국을 한시도 잊어버린 적이 없었다. 하나님은 그런 그의 기도를 들어 주셨다, 그가 다시 한국 땅을 밟았을 때, 하나님은 그를 천국으로 부르셨다. 헐버트의 묘비명은 그의 한국 사랑을 증명하고 있다. ' 나는 웨스터 민스터 사원에 묻히기 보다 한국 땅에 묻히기를 원하노라 '
미국의 선교사 언어학자, 사학자로서 버몬트주(州) 뉴헤이번에서 1863년 출생했다. 1884년 다트먼트대학을 졸업, 그 해 유니언신학교에 들어갔다가 1886년(조선 고종 23) 소학교 교사로 초청을 받아 육영공원에서 외국어를 가르쳤다.
이 일을 계기로 한국에 대한 정보가 세계를 품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알려지게 되고,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한국을 위한 중보기도와 선교헌금을 하였다. 그리고 그 다음 해인 1885년부터 수많은 선교사들이 한국으로 파송 되기도 하였다. 그는 선교사역을 하던 중 , 사랑하는 아들이 병이 들어 죽는 아픔을 격지만 , 결코 한국을 포기하지 않았다. 헐버트는 누구보다도 한국에 대한 이해와 사랑이 깊었다.
1905년 을사조약 후 한국의 자주독립을 주장하여, 고종의 밀서를 휴대하고 미국에 돌아가 국무장관과 대통령을 면담하려 했으나 실패하였다. 1906년 다시 내한, The Korea Review을 통해 일본의 야심과 야만적 탄압행위를 폭로하는 한편, 이듬해 고종에게 네덜란드에서 열리는 제2차 만국평화회의에 밀사를 보내도록 건의하였다. 그는 한국 대표단 보다 먼저 헤이그에 도착, 《회의시보 Courier de la Conference》에 한국 대표단의 호소문을 싣게 하는 등 한국의 국권 회복운동에 적극 노력하였다.
1908년이후 미국 매사추세츠주 스프링필드에 정착하면서 한국에 관한 글을 썼고, 1919년 3 ·1운동을 지지하는 글을 서재필(徐載弼)이 주관하는 잡지에 발표하였다.
대한민국 수립 후 1949년 국빈으로 초대를 받고 내한하였으나, 병사하여 양화진(楊花津) 외국인 묘지에 묻혔다. 저서에 The History of Korea(2권) The Passing of Korea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