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산돌, 손양원 >
손양원 목사님은 1902년에 경남 함안에서 출생했다. 일본에게 나라를 빼앗긴 상태에서 주기철 목사님을 통해 큰 영향을 받으며 신학을 공부했다.
1939년에 애양원에 전도사로 부임한 이후로 평생동안 애양원의 목회자로 섬기며 애양원 사람들을 사랑했다. 문둥병자의 환부에 입을 접촉하여 병든 환자들을 치유하고 위로했다.
그는 하나님을 참으로 경외했던 사람이다. 어떤 핍박도 이겨내며 끝까지 신사참배를 거부하며 신앙을 굳게 지키다가 일본 형사들에게 붙들려 가서 감옥 생활도 했다.
손양원 목사님의 곁에는 훌륭한 사모님이 있었는데 목사님이 감옥에 계셨을 때, 사모님은 면회 갈 때마다 꼭 성경 한 구절씩을 외워 가서 목사님께 읽어 드리곤 했다. "만일 당신이 신사참배하면 내 남편이 아닙니다." 이렇게 감옥에 있는 목사님께 힘을 불어넣어 주었다.
광복을 맞이 한 후 그의 두 아들이 공산당의 총에 맞아 죽었지만, 그는 하나님 앞에 열 가지나 감사 기도를 했다. 그리고, 자기의 두 아들을 죽인 원수가 죽을 위기에 처했을 때, 오히려 그를 살려서 자기의 양자로 삼음으로, 그가 회개하고 돌아오는 놀라운 일도 있었다.
그러한 일이 있은지 얼마 안되어 6·25 전쟁이 터져 다시 위기가 닥쳐왔으나 그는 끝까지 교회를 떠나지 않다가 공산당에게 붙잡혀 총에 맞아 순교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