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day:
100
yesterday:
191
Total:
998,447

칼럼

자기 의에 관하여- 김 광락선교사

Admin 2013.02.17 07:53 Views : 1259

자기의 self-righteousness

오늘은 자기의에 대해서 글을 써보려고 합니다. 오래 믿고 오랫동안 충성하고 봉사도 잘 하고 남들을 가르치기도 하고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그리스도인들이 빠지기 쉬운 함정이 있다면 바로 자기의입니다.

자기의란? what is self-righteousness

자기의란 자신이 알고 있는 것(지식), 자신이 하고 있는 것(), 자신이 했던 것(업적) 등으로써 하나님께 인정받으려고 하는 마음을 가리킵니다. 제가 아는 어떤 그리스도인은 다른 어느 누구보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추구하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어느 누구보다 경건서적과 신학서적을 많이 읽고 있습니다. 자신은 다른 사람보다 더 많은, 그리고 더 고상한 지식을 가지고 있다고 확신하는데 그런 자신에 대해 하나님은 인색하고 무관심하고 자신의 인생에 형통함을 주시지 않으며, 자신이 하려는 선한 일을 하나님께서 막고 계신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분은 하나님께서 왜 자신을 이렇게 대접하시는지 모르겠다고 말했지만 정작 자신의 참된 문제가 어디에 있는지는 알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남들이 갖지 못한 고상한 지식을 가지고 있다는 것에 의를 부여하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가 살 길은 알고 있고 가지고 있는 모든 지식을 버리는 것입니다. 어떤 분은 성경을 원어로 읽고 원어를 가르칠 수 있는 지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지식에 의를 부여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비록 고상한 신학지식이라 할지라도 그리스도 앞에서는 빛을 잃고 말 것입니다.

두 가지 의가 있다 two kinds of righteousness

두 가지 의가 있습니다. 자기 의와 하나님의 의입니다. 사람들은 하나님의 의를 모르면 자기 의를 만들고 자기 의를 붙잡게 되어 있습니다. 자기 의가 하나님의 의인 것처럼 믿고 살아가게 되어 있습니다. 종교적인 그리스도인, 나름 경건한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자기 의를 붙잡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가장 큰 차이점은 무엇일까요? 하나님의 의는 믿음으로 포착되고 믿음으로 획득되는 의이며, 자기 의는 행위로 포착되고 행위로 만들어지는 의입니다. 사도 바울은 유대인들의 의를 바로 자기 의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자기 의를 사용한 본문은 다음과 같습니다. “내가 증언하노니 그들이 하나님께 열심이 있으나 올바른 지식을 따른 것이 아니니라.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 의를 세우려고 힘써 하나님의 의에 복종하지 아니하였느니라.”(10:2,3)

자기 의를 갖게 되는 이유 why people hold

유대인들이 자기 의를 갖게 된 이유는 올바른 지식을 따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올바른 지식이란 하나님의 의에 대한 지식입니다. 하나님의 의를 모르는 것이 자기 의를 만들어내고 자기 의에 붙잡히게 만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의를 모르게 되면 많은 사람들은 자신의 지식, 노력, 행위, 수고에 의미를 부여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자신이 의미를 부여한 그것이 하나님 앞에서도 의미가 있다고 여기기 시작합니다. 내 속에 자기 의가 자리 잡고 있는지 알려면 이런 질문으로 자신을 조사해보아야 합니다. “내가 하나님 앞에서 내세우는 것이 무엇인가?” “내가 하나님 앞에서 의미 있다고 여기는 것이 무엇인가?” 어떤 사람들은 이 질문에 대해서 신학적으로 완벽한 대답을 할지 모릅니다. 그러나 평소 대화를 나눌 때, 평소 하는 말 속에 자신이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 무엇인지 나타납니다.

자기 의를 가진 사람의 특징 how do they behave

사도 바울은 유대인들을 가리켜 하나님께 열심이 있다고 했습니다. 자기 의를 가진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나름대로 열정이 있고 부지런합니다. 그리고 그런 삶에 대해 자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또한 자기 의를 가진 사람은 쉽게 다른 사람을 비난하기를 잘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또한 쉽게 분노를 잘 나타내는 경향도 있습니다. 분노란 감정은 의에 대한 신념, 혹은 의에 대한 지식에서 비롯된 것이기 때문입니다. 쉽게 비난하고, 쉽게 분노하는 경향이 있다면 내 안에 자기 의가 자리잡고 있다고 보아야 합니다. 또한 자기 의를 가진 사람은 은연 중에 자신이 의미를 부여하는 그것을 자랑합니다. 자신이 얼마나 수고를 했는지, 자신이 어떤 업적을 이루어냈는지 그것을 드러내는 것을 좋아합니다. 뿐만 아니라 자기 의는 영혼의 깊은 곳에 기쁨과 만족을 갖지 못하게 만듭니다. 자기 의를 가진 사람은 언제나 불만족과 불공평에 대한 분노와 슬픔에 잠겨 있습니다. 자기 의를 갖는 것과 진정한 영혼의 기쁨과 만족을 얻는 것은 양립할 수 없는 물과 기름과도 같은 것입니다.

자기 의에 사로잡히지 않으려면 (1)

예수님은 자신을 따라오려면 먼저 자신을 부인하라고 하셨습니다. ‘자기부인이란 자신이 의미를 부여하는 모든 것을 그리스도 앞에서 내려놓는 것을 말합니다. 다시 말하면 자신에게는 어떤 것도 자랑할 것도 내세울 의도 없음을 인정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사도 바울은 다음과 같이 고백했습니다.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라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안 것이니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부터 난 의라.”(3:7-9) 그리스도 외에 모든 것을 부정하는 것이 곧 자기부정인 것입니다. 자기부정은 자기 학대도 아니요 자아를 잊어버리는 것도 아니라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만을 붙잡는 것입니다.

자기 의에 사로잡히지 않으려면 (2)

십자가는 우리가 붙들어야 할 하나님의 의입니다. 많은 목회자들이 설교하면서 온갖 신학적이고 현학적인 단어들을 구사함으로써 십자가를 약화시키고 있다는 것을 눈치 채지 못하고 있습니다. 지식과 지혜를 추구함으로써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는 경우가 있습니다. 성경은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지혜 있는 자가 어디 있느냐 선비가 어디 있느냐 이 세대에 변론가가 어디 있느냐 하나님께서 이 세상의 지혜를 미련하게 하신 것이 아니냐 하나님의 지혜에 있어서는 이 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므로 하나님께서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도다.”(고전1:20,21) 만일 세상 사람들이 추구하는 것을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이 추구한다면 그것이 자기 의를 만들어낼 줄 알아야 합니다. 왜냐면 하나님께서는 세상의 미련한 자와 어리석은 자들과 약한 자들을 택하기를 기뻐하시기 때문입니다.(고전1:27) 하나님께서 그리 하시는 까닭은 이것입니다. “이는 아무 육체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고전1:29) 자기 의에 사로잡히지 않으려면 하나님 앞에서 자랑할 것이 우리에게는 아무 것도 없음을 날마다 고백해야 합니다.

자기 의에 사로잡히지 않으려면 (3)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항상 묵상해야 합니다. 복음의 핵심은 하나님의 의righteousness of God입니다. 성경은 복음과 하나님의 의의 관계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1:17)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계시되고 있습니다. 복음을 묵상한다는 말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계시하는 하나님의 의를 집중적으로 생각하고 마음에 새기는 것을 말합니다. 복음을 가르치는 것은 곧 하나님의 의를 가르치는 것입니다. 복음의 핵심을 놓치게 되면 사람은 항상 율법과 행위에서 만들어내는 자기 의를 붙잡게 된다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부터 난 의라." 우리의 의가 되시기 위하여 율법의 마침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 위에 견고하게 서는 것입니다.

누가 진정한 탕자인가? Who is the lost son?

누가복음 15장에는 유명한 탕자의 비유가 나옵니다. 이 비유에서 진정한 탕자는 누구일까요? 자기 몫을 가지고 집을 나가 먼 나라에 가서 탕진하고 비참한 모습으로 집에 돌아온 동생이 탕자가 아니라 그 동생을 미워하고 또한 그 동생을 맞이하고 잔치를 베푼 아버지를 미워하고 있는 형이 진정한 탕자입니다. 동생은 지금 아버지의 품안에서 잔치를 벌이고 있고, 형은 여전히 잔치를 누리지 못하고 슬픔과 분노에 잠겨 있기 때문입니다. 동생은 아버지의 품에 돌아왔지만 형은 비록 몸은 아버지의 집에 있지만 그 마음은 아버지의 품에서 멀리 떠나 있기 때문입니다. 동생은 잔치를 누리고 있지만 형은 자신에게 염소새끼 한 마리를 내주지 않은 아버지를 향해 원망스런 마음으로 가득 차 있기 때문입니다. 기준은 잔치입니다. 기준은 아버지의 품입니다. 잔치자리에 함께 있지 않는 그가 곧 탕자입니다. 아버지의 품에서 떠나 있는 한 그가 곧 탕자입니다. 몸은 교회 안에 있지만 마음은 하나님의 잔치 밖에 있다면 그가 곧 탕자입니다. 몸은 교회에서 여러 가지 봉사로 분주하고 바쁘고 열심히 하지만 그 마음이 하나님의 마음에서 떠나 있다면 그가 곧 탕자입니다.

자기 의는 율법에서 난 의다 righteousness from the Law

누가복음 15장에 예수님께서 하신 비유에 등장하는 형은 자기 의에 사로잡힌 모든 사람들의 모습을 대변하고 있습니다. 형이 자기 의로써 여기고 있는 것이 무엇입니까? 그는 아버지에게 이렇게 대들고 있습니다. “아버지께 대답하여 이르되 내가 여러 해 아버지를 섬겨 명을 어김이 없거늘 내게는 염소 새끼라도 주어 나와 내 벗으로 즐기게 하신 일이 없더니 아버지의 살림을 창녀들과 함께 삼켜 버린 이 아들이 돌아오매 이를 위하여 살진 송아지를 삼으셨나이다.”(15:29,30) 형이 자기 의로 여기고 있는 것은 이것입니다. “내가 여러 해 아버지를 섬겨 명을 어김이 없거늘..” 아버지를 잘 섬겼다는 것에 의미를 부여하고 있었고 자기 의로 여기고 있었습니다. 아버지 앞에 인정받을 수 있다고 여긴 것은 아버지의 명을 어기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율법에서 난 의는 곧 자기 의입니다. 이것은 자기 행위를 가지고 아버지께 나아가려고 하고, 아버지께 인정을 받으려고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잔치에 참여하라!! Let’s have a feast

자기 의을 붙들고 있는 사람의 특징을 누가복음 15장에서 잘 보십시오. 하나님의 잔치는 이미 벌어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자기 삶에 잔치가 없다고 믿고 있습니다. 자신의 삶에 하나님께서 잔치를 베풀어주지 않으신다고 굳게 믿고 있습니다. 그것 때문에 깊은 슬픔과 분노에 잠겨 있습니다. 하나님의 의를 붙들고 있는 인생에게는 항상 잔치가 벌어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자기 의를 붙들고 있는 인생은 자신에게 잔치가 없다고 의기소침해하고 있습니다. 자기 의를 붙들고 사는 사람이 요구하는 것은 큰 잔치가 아닙니다. ‘염소 새끼 한 마리입니다. 비록 잔치는 없을지라도 염소 새끼는 자신이 받을 자격이 있다고 항변하고 있습니다. 자기 의를 붙들고 사는 사람은 늘 이렇게 말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하나님!! 제 삶에 잔치는 아니어도 염소 새끼 한 마리뿐입니다. 제게 이 정도는 해주셔야 되지 않습니까?” 내가 하나님께 요구하는 염소 새기 한 마리는 무엇입니까? 내가 하나님께 염소 새끼 한 마리를 운운하고 있다면 곧 내가 하나님의 의를 붙잡지 않고 자기 의를 붙잡고 있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을 기억하십시오. 하나님이 내게 염소 새끼를 안 주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이미 큰 잔치를 베푸시고 계십니다! 하나님의 잔치는 이미 벌어지고 있습니다. 문제는 내가 내 의를 붙잡고 있음으로 하나님의 잔치에 들어가지 않고 있다는 것입니다. 내 삶에 잔치가 없다고 생각한담녀 내가 하나님의 의가 아니라 자기 의를 붙잡고 살아가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하나님의 의를 붙잡고 살아가는 사람의 삶속에는 항상 잔치가 벌어지고 있습니다.

잃어버린 영혼에 대한 하나님의 마음을 가지라 Have the heart of God

하나님의 마음은 언제나 잔치입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돌아오는 영혼들로 인하여 기뻐하며 춤을 추고 계십니다. 우리가 잃어버린 영혼들을 하나님의 품으로 인도하는 것을 내 삶의 최우선순위로 삼고 살아간다면 하나님의 마음이 우리 안에 흘러들어오는 것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잔치에 참여하는 방법은 이것입니다. 내가 기대했던 염소 새끼 한 마리를 과감히 포기하십시오. 내가 의미를 부여했던 나의 수고, 나의 행위를 부정하십시오. 행위가 아니라 믿음으로 얻게 하시는 하나님의 의를 붙잡으십시오. 복음에서 계시되는 하나님의 의를 붙잡으십시오. 무엇보다 잃어버린 영혼들을 구원하는 일에 최우선순위를 두십시오. 그들이 하나님의 품에 안기는 것을 보는 것이 최고의 기쁨이 되게 하십시오. 잃어버린 영혼들이 돌아올 때 기뻐하시는 하나님의 기쁨을 맛볼 수 있을 것입니다. 영혼들만 아닙니다. 잃어버린 민족들, 족속들이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것을 내 생애에 최고의 우선순위가 되게 하십시오. 전도와 선교가 내 삶의 최우선 순위가 되게 하십시오. 그러면 내 삶에는 항상 잔치가 벌어질 것입니다. 아니 하나님이 베푸신 잔치는 이미 오래 전부터 열리고 있음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기쁨이 내 안에 흘러들어오는 것은 내가 기대했던 염소 새끼 한 마리를 포기하는 데서 시작합니다.

하나님의 의를 붙잡으라 Hold on to the righteousness of God

자기 의는 하나님의 의와 다릅니다. 자기 의를 버리는 순간 하나님의 의를 붙잡을 수 있습니다. 자기 의를 붙잡고 있기 때문에 내 영혼은 하나님의 잔치에 들어가지 못합니다. 이미 하나님의 잔치는 벌어지고 있습니다. 내가 할 일은 자기 의를 버리고 믿음으로 그 잔치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기쁨이 내 기쁨이 되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내 삶에 염소 새끼 한 마리도 주시지 않는다고, 내 벗으로 더불어 즐기게 하신 일이 없다고 항변하지 마십시오. 내 삶에 잔치가 없게 만든 것은 하나님이 아니라 내가 붙들고 있는 자기 의인 것입니다. 자기 의를 버리고 하나님의 의를 붙잡으십시오. 그러면 하나님의 잔치에 앉아서 누리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보게 될 것입니다. 자기 의를 내려놓고 하나님의 의를 붙드십시오. 그러면 하나님의 기쁨으로 기뻐하는 내 모습을 볼 것입니다.

South Africa,

김광락 선교사 올림..

No. Subject Views Date
222 < 아프리카를 사랑한 개척 선교의 시조, 데이빗 리빙스턴 > 2029 2010.12.24
221 우리가 소망하는 기독교학교는? 2027 2010.12.09
220 강의 : 실패 앞에 서기--두려움을 내던지라 2023 2011.10.14
219 12제자의순교 2010 2011.10.24
218 < 탁월한 옥외설교가 조지 휫필드 > 2007 2010.12.24
217 < 부패한 사회를 개혁한 영국의 양심, 윌리암 윌버포스 > 2006 2010.12.24
216 911사태와 미국에 임하는 하나님의 심판 (ppsimmons) 1990 2011.09.10
215 존 웨슬리 (John Wesley) 1990 2010.12.24
214 카멜레온 기독교- 딕 카이즈 지음 / 국제제자훈련원 1987 2011.09.03
213 크리스천 전문가들이 전하는 창업-온누리교회 1980 2011.10.26
212 한동대 김영길 총장 간증1 1976 2011.05.15
211 '어떤 어려움이 있더라도 잘 될 것이다’ 1975 2011.09.22
210 마포삼열 1970 2010.12.24
209 닉 부이치치 1957 2011.07.10
208 " 행복한 아침 "-시끄러운 마음을 다스리십시오-하용조 목사 1953 2011.09.23
207 [유튭] 통일 현장 북녘으로 보내는 희망의 목소리 1953 2011.08.30
206 한동대 김영길 총장 간증 2 1950 2011.05.15
205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폴워셔.flv 1947 2011.05.26
204 아가페 2011년4월 정기모임을 공고드립니다. 1947 2011.02.18
203 < 설교의 황태자, 찰스 스펄전 > 1946 2010.12.24
202 빌게이츠의 인생충고 10가지 | 1944 2011.06.20
201 오늘 믿는 대로 내일 이루어진다 1942 2011.06.29
200 스포츠, 선교의 도구로 1941 2010.08.26
199 최초의 기독교인, 사도 바울 1934 2011.05.18
198 처음부터 끝까지-죠지뮬러... 1917 2011.10.05
197 하용조 목사 추모 1주기 특집편성 1916 2012.08.01
196 지저스필름스 세번째 기독교영화/ 길Road Lord 1916 2011.05.17
195 기독교교육을 위한 부모의 역할---김바울 1915 2010.12.11
194 < '마태수난곡' 의 요한 세바스챤 바하 > 1913 2010.12.24
193 [유튭] How Much Do You Love Christ? - 그리스도를 얼마나 사랑하십니까? 1912 2011.07.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