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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이웃] 국민일보 선정 아름다운 교회길(1)

Admin 2010.09.30 07:54 Views : 2171

[2010.09.10] 

신작로 땡볕을 걷다가 길 옆 동산 회화나무 숲으로 들어서니 순간적으로 역암전(逆暗轉)되어 사물이 보이지 않았다. 눈멍울이 걷히고 숲 안의 풍경이 드러났을 때 지상의 천국과도 같은 평화가 ‘실존’했다. 

수백년 묵은 나무 아래 조산정이라는 정자가 있었고, 정자 마루에는 마을 노인 네 분이 한담을 나누고 있었다. 흰 모시 적삼을 입은 구순 가까운 노인은 힘에 겨운지 무릎을 구부려 자신의 상체를 의지한 체였다. 그럼에도 나이가 들면 영의 눈이 밝아진다고 했던가. 평화가 그래서 있었다. 

멀리 마을 교회 종탑이 랜드마크가 되어 생육하고 있음을 알리는 그런 시간이었다. 

지난 8월 하순 경북 안동시 일직면 조탑리.

‘쫒아오던 햇빛인데 지금 교회당 꼭대기 십자가에 걸리었습니다’로 시작되는 윤동주의 시 ‘십자가’가 어울리는 마을. 기행은 동구(洞口) 조산정부터 시작됐다. 동행한 일직교회 이창식 목사(56)는 노인들에게 경북 북부 특유의 ‘~니껴’형 사투리로 인사를 했다. 이 목사가 “경수 집사도 있었으면 좋았을낀데요”라고 하자 한 노인이 “여부 있나”하고 답했다.

이들이 말하는 경수 집사는 ‘일직교회 종지기’ 삶으로 마쳤던 아동문학가 권정생(1937~2007)을 말한다. 권정생은 ‘강아지똥’ ‘몽실언니’ 등을 낸 한국 문단의 대표적 아동문학가이다. 

그러나 그가 진정으로 불려지기 원했던 호칭은 ‘경수 집사’ ‘종지기 권정생’이었다는 것을 한국 교계는 잘 모른다. 경수는 권정생의 어린시절 이름이다.

경수 집사는 1967년부터 16년간 일직교회 종지기로 살며 조탑마을을 벗어나지 않으려고 애썼다. 종지기로서 매일 새벽 4시와 오후 6시 종을 치는 영광을 소홀하기 싫어서였다. 

그는 지독한 가난이 가져다 준 질병 폐결핵과 늑막염으로 키가 170㎝인데도 몸무게가 37㎏을 넘어본 적이 없을 만큼 지병을 안고 살았다. 여기에 신장을 드러내는 수술 등으로 소변 주머니를 차고 살아야 했으니 그에게 교회와 마을은 예수 시대 성읍과 같은 ‘세계’였다. 조산정에서 만난 유진우(85) 은퇴집사는 “깡마른 경수 집사가 먼 산을 바라보며 골똘히 생각에 잠겨 있는 모습을 자주 봤다”고 했다. 

조탑 마을은 30여호 남짓하다. 이 마을에 일직예배당이 들어선 것은 53년. 당시 안동읍에서 15㎞ 떨어진 산골마을이었다. 마을에서 3㎞ 떨어진 곳엔 면사무소가 있다. ‘몽실언니’의 몽실어머니 밀양댁이 굶어죽지 않기 위해 댓골로 새시집을 가던, 또 몽실이 아버지 병 치료를 위해 부산으로 떠나는 통로 중앙선 운산역은 면사무소에서 500여m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다. 

권정생이 조탑 마을에 흘러든 것은 47년. 도쿄에서 조선 노무자였던 부모의 5남2녀의 여섯째로 태어나 해방 직후 부모가 이곳에 정착하면서 가난과 병마로 점철된 모진 삶이 시작된 것이다. 그의 부모는 해방된 땅에서 소작과 행상으로 연명했다. 일직초등학교를 졸업한 권정생은 이후 나무장수 점원생활 고구마장수 심지어 거지생활을 해야 했다. 가난은 전쟁보다 더 비참했다. 

일직교회는 거지 나사로와 같은 그에게 손을 내밀었다. 폐병쟁이를 교회 문간방에 살게 하고 종지기 직분을 맡겼다. 경수 집사는 훗날 ‘내가 예배당 문간방에 살면서 새벽종을 울리던 때가 진짜 하느님을 만나는 귀한 시간이었다’고 회상하곤 했다. 

‘추운 겨울날 캄캄한 새벽에 종 줄을 잡아당기며 유난히 빛나는 별빛을 바라보는 상쾌한 기분은 지금도 그리워진다. 60년대만 해도 농촌교회의 새벽기도는 소박하고 아름다웠다. 전깃불도 없고 석유 램프불을 켜놓고 차가운 마루바닥에 꿇어 앉아 조용히 기도했던 기억은 성스럽기까지 했다.…새벽기도가 끝나 모두 돌아가고 아침 햇살이 창문으로 들어와 비출 때, 교회 안을 살펴보면 군데군데 마루바닥에 눈물자국이 얼룩져 있고 그 눈물은 모두가 얼어 있었다.’(‘우리들의 하느님’ 중에서)

그 시절을 함께한 김택수(66) 장로는 “보통 정신 가지고 종치기 힘들다”고 말했다. 여름엔 새벽 4시와 밤 8시, 겨울에는 새벽 5시와 밤 7시에 종을 친다. 초종은 30분 전, 제종은 10분 전에 치고 주일 낮예배와 저녁예배 때는 별도로 “떼~앵 떼~앵”하는 영혼의 소리를 울리게 된다. 오줌주머니를 차고 다니는 스물아홉 병자 청년에게 사력을 다한 종소리였을 것이다. 한 겨울에도 진실된 마음이 통하지 않는다며 장갑 낀 손으로는 종을 치지 않았다. 

아쉽게도 당시 일직교회 예배당과 종탑, 그리고 권정생문학의 산실이었던 문간방(토담집)의 원형은 남아 있지 않다. ‘서향으로 지어진 예배당 부속건물의 토담집은 겨울에는 춥고 여름에는 더웠다. …그래도 그 조그만 방은 글을 쓸 수 있고 아이들과 자주 만날 수 있는 장소였다.’(‘유랑걸식 끝에 교회 문간방으로’ 중에서) 

경수 집사가 종지기를 그만 둔 것은 83년 교회에 차임벨이 보급되면서다. 실직 아닌 실직을 한 그는 교회 문간방에서 집필한 작품의 인세 60만원으로 교회 청년들과 함께 빌배산 빌뱅이 흙집을 지었다. 처음으로 가져본 방 한 칸짜리 소유였다. 이 목사는 “그가 흙집 장소를 고르면서 제일 먼저 내세운 것이 교회가 보이는 곳이었다”고 말했다. 얼마나 주일학교 아이들을 사랑했는지, 아이들이 저 멀리 교회에서 빌뱅이 흙집을 향해 “선생님!”하고 부를까봐 화장실조차 교회가 보이는 방향으로 두었던 그다. 

여름 한낮, 빌뱅이 흙집은 주인 없는 모양새가 그대로 드러났다. 마당엔 잡초가 가득하다. 이 목사는 “생전에도 이렇게 사셨습니다”라고 전했다. 그것들을 베어내려고 하면 “풀 한 포기, 꽃 한 송이도 절대 베어선 안 됩니다. 그것들도 다 생명이 있고 의미가 있어 이 땅에 온 겁니다”하며 말렸던 것. 현재 경수 집사가 제일 좋아했던 교회 가는 냇가 길은 이용자가 없다보니 밭으로 편입됐다.

일직교회는 어느 시골 교회나 마찬가지로 연로한 성도만 남아 있다. 신작로가 포장되면서 교회 땅으로 길이 나는 바람에 87년 새 예배당이 헌당됐다. 녹슨 종탑도, 문간방도 이 무렵 철거됐다. 사람이고 안식처이고 간에 오래된 것은 모두 떠나거나 헐리고 없다. 

사람들은 그를 ‘성자가 된 종지기’라고 말한다. 강아지똥과 같은 세상 쓸모없는 것에서 조차 민들레씨를 틔울 수 있는 가치를 발견하고 동화로 풀어낸 종지기가 어찌 성자가 아니겠냐는 존경에서다. 일직교회를 찾는 연 1만여명의 탐방객 80%는 비크리스천이다. 버스 대절 답사가 예사다. 그러나 국회, 지자체, 문단이 각기 기념관, 교회 안내 표지판, 기념재단을 만들고 있을 때 정작 한국 교회는 손을 놓고 있다. ‘아동문학가 권정생’은 당연히 빛나야 하지만 그가 그토록 원했던 ‘종지기 경수 집사’가 지워지고 있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이 목사와 몇몇만이 교회를 찾는 비크리스천을 위해 동분서주하여 종탑을 세우고 문간방을 복원하려고 애쓰고 있다. 이 목사는 교회를 찾는 이들을 대할 때마다 “경수 집사가 죽어서도 전도하고 계신다”며 기렸다. 그는 2004년 부임해 소천할 때까지 성도들과 함께 병수발을 했다. 

“경수 집사님은 죽기 전 ‘하나님과 예수님이 계시지 않았다면 이 세상에서 나는 가장 불쌍한 사람’이라고 고백하셨어요. 또 ‘몸이 아프니 예전의 즐겁던 교회 생활과 교인 밖에는 생각나는 사람이 없다’고도 하셨지요. 일직교회라는 신앙공동체의 지체요, 집사님이셨던 거지요.”

경수 집사는 예수처럼 가난했다. 그러나 가난해서 가난한 것이 아니라, 구원과 나눔을 위해 스스로 가난해졌다. 이 목사는 “비닐부대로 부채를 만들어 쓰고 월 5만원으로 사셨다”며 “재산을 정리하니 90여편의 작품에서 들어오는 연 인세 1억원과 10억원 자산이 있었고 유언에 따라 이를 굶는 어린이들을 위해 쓰고 있다”고 밝혔다. 이 유산은 현재 ‘권정생어린이문화재단’이 운용하고 있다.

시골 일직교회 예배당…. 영의 눈이 밝은 종지기가 마룻바닥에서 눈물의 기도를 하고 있다. 

안동=글 전정희 기자, 사진=곽경근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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