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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고(故) 한경직 목사는 생전에 “이 땅의 기독교인이라면 반드시 가봐야 할 곳이 있다”는 말을 곧잘 했다. 양화진이다. 한 목사뿐이랴. 수많은 목회자들이 양화진을 한국 기독교 성지의 으뜸으로 꼽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실제로 서울 합정동의 양화진외국인선교사묘원은 언제나 수많은 기독교인들로 붐빈다. 지난해 6만8014명이 방문했고, 지난달에만 6249명이 이곳을 찾았다.



양화진외국인선교사묘원은 한국 기독교 선교역사뿐 아니라 한민족의 지난했던 근대사를 반추해볼 수 있는 사색의 공간이다. 한때 지하철공사가 묘원을 서울시 외곽으로 이전하려고 하는 바람에 수난을 겪기도 했다. 하지만 교계의 반발로 다행히 부지 1320㎡만 깎이고 나머지는 그대로 보존되고 있다. 

지금은 잘 다듬어진 공원 같지만 묘원은 한동안 방치됐다. 한국기독교100주년기념사업협의회가 2005년부터 관리를 시작했다.

강변북로 합정IC로 진입하니 동쪽에 십자가 몇 개가 보였다. 서울지하철 합정역 7번 출구에서 걸어도 금방이었다. 묘원 사잇길을 천천히 걸으면서 초창기 한국 선교 역사를 빛낸 낯익은 이름들을 거의 다 만날 수 있었다. 고요한 아침의 나라로 불리던 이국땅에서 하나님의 소명을 받았던 선각자들이다. 

최초의 공식 선교사 아펜젤러와 언더우드, 그 뒤를 이은 의료 선교사 스크랜턴과 헤론, 한글 성서 번역에 혁혁한 공을 세운 레이놀즈, ‘평양 대부흥’의 주역 하디, 천민 선교의 대명사 무디, 한국인보다 한국을 사랑한 선교사 헐버트, 세브란스병원 설립자 에비슨….

묘원에는 성조기가 꽂힌 무덤이 많았다. 그런데 성조기가 꽂히지 않은 미국인 묘지도 있었다. 왜 그럴까? 안내원은 면적 1만3224㎡의 이 동산에는 415기의 무덤이 자리잡고 있는데 성조기가 꽂힌 무덤의 주인은 선교사가 아니라 당시 군인 등의 신분으로 왔다가 묻힌 사람이라고 했다. 선교사와 가족의 묘는 16개국 144기다. 

하나님께서 이 땅을 얼마나 사랑하셨는가를 깊이 느낄 수 있었다. 묘비마다 조선을 위해 예비하셨던 주님의 사람들 이야기로 가득했다. 묘원에 묻힌 선교사들은 이 땅의 독립을 도왔고 교육·의료 등으로 구제활동을 펼쳤다. 외국인선교사묘원이라는 이름이 붙어 있지만 한국인보다 더 한국인처럼 살다 간 사람들이 많았다. 

묘비문을 들여다보니 낯선 타지에서 그들이 겪었을 고독과 외로움, 결기 같은 것들이 시간을 뛰어넘어 고스란히 느껴졌다.

양화진에 최초로 묻힌 헤론은 “하나님의 아들이 나를 사랑하시고 나를 위하여 자신을 주셨다”는 묘비명을 남겼다. 의료 선교와 성경 번역에 헌신한 그는 34세의 젊은 나이에 생을 마쳤다. 헐버트 선교사 묘비에는 “나는 웨스트민스터 사원에 묻히기보다 한국에 묻히기를 원하노라”고 쓰여 있었다. 조선을 사랑했기에 그는 고종의 밀사가 되길 주저하지 않았다. 

언더우드는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를, 아펜젤러는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습니다”라는 감동적인 묘비명을 남겼다. 

절로 머리가 숙여졌다. 한국교회가 세계 선교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하는 이유를 분명히 깨닫게 됐다. 낯선 이국땅에서 열정과 청춘을 불살랐던 그들이 있었기에 오늘날 한국교회가 있는 것이다. 묘원 정문을 빠져나오려니 무엇에 붙들린 듯 발걸음이 멈춰졌다. 그리고 저절로 기도가 나왔다. “선교사님들의 삶은 한국교회의 소중한 자산이자 밑거름입니다. 이 땅에 소망과 복음을 전해주신 선교사님들의 봉사와 희생을 잊지 않겠습니다.” 

양화진외국인선교사묘원은 주일을 제외하고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 무료로 개방된다. 인터넷으로 단체관람을 신청하면 그룹을 만들어 주고 자원봉사자들이 그룹별로 안내해 주기도 한다(yanghwajin.net·02-332-9174).

유영대 기자 ydyoo@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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