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자료는 나다 홈페이지에서 퍼온 글입니다.
헨리 나웬의 우정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 함석헌
만리길 나서는 길
처자를 내맡기며 맘놓고 갈만한 사람 …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온세상 다 나를 버려
마음이 외로울 때에도 '너 뿐이야' 하고 믿어주는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탔던 배가 가라앉을 때
구명배를 서로 사양하며 ‘너만은 제발 살아다오’할
그런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불의의 사형장에서
'다 죽어도 너의 세상 빛을 위해 저만은 살려두거라' 일러줄
그런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잊지 못할 이 세상을 놓고 떠나려 할 때
'너 하나 있으니' 하며 빙그레 웃고 눈을 감을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온 세상의 찬성보다도
'아니오' 하고 가만히 머리 흔들 그 한 얼굴 생각에
알뜰한 유혹을 물리치게 되는 …
그 한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진실한 사랑으로 대할 수 있는 친구가 있습니까? 외롭고 괴로울
때 아무 말없이 서로 바라만 보고 있어도 위로가 되는 친구가 있
습니까? 내가 가진 것들을 다 주어서 생명을 구하고 싶은 친구
가 있습니까?
우정은 우리가 이웃을 사심 없이 순수하게 사랑할 수 있다는 가
능성을 알려주는 표징입니다. 우리를 참 존재 되게 하는 귀한 선
물입니다. 우리 자신의 이익보다 다른 사람의 이익을 위해 살게
하는 참 사랑의 능력입니다.
그래서 우정은 우리의 존재가 하나님 안에서 성숙해 가는 것과
관련이 있습니다. 훈련입니다. 고독과 소유욕을 극복하는 과정
을 통과하여 우정은 자랍니다. 외로움과 갈망에서 벗어나 하나
님 사랑을 나누는 관계로 자랍니다. 우정은 우리의 삶을 풍요하
게 만들고 세상에서 가치 없다고 여기는 신실함과 사랑에 의미
를 부여하게 합니다.
나웬의 글 중에서 우정과 관련된 글을 정리하여 실었습니다. 진
실한 우정의 길을 가기 위해 그와 함께 내면의 여행을 떠나 보세
요. 새김과 적용을 통해 여러분의 삶에 투영시켜 보십시오.
우정, 하나님의 선물
우리는 친구를 필요로 한다. 친구는 우리를 인도하고, 우리를 돌
보며, 우리를 사랑으로 대하며, 그리고 괴로울 때 우리를 위로한
다. 우리는 친구를 "만든다"(make)고 말하지만, 친구는 만들어
질 수 없는 것이다. 친구는 하나님이 주시는 공짜 선물(free
gift)이다. 그러나 우리가 진정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믿으면, 우
리에게 친구가 필요할 때 하나님이 그 필요한 친구를 우리에게
주시는 것이다.
때때로 친구는 우리를 치유하기도 하고 하나님의 용서를 우리에
게 전해 주기도 한다. 이들은 치료자나 혹은 고해 신부 그 이상
의 역할을 하는 존재가 된다. 친구는 우리의 고독과 침묵, 그리
고 기도를 함께 나눌 수 있는 바로 그 다른 사람인 것이다. 친구
는 우리가 함께 나무를 바라보면서 "그것 참 아름답지 않니 하
고 말하거나, 또는 바닷가 모래밭에 같이 앉아 수평선 너머로 사
라져 가는 태양을 말없이 바라볼 수 있는 바로 그런 사람이다.
친구와 함께 있으면 우리는 어떤 특별한 말을 하거나 또는 행동
을 하지 않아도 된다. 친구와 함께라면, 우리는 침묵을 지키면서
도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바로 그 자리에 계신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두 사람의 친구가 똑같을 수는 없다. 친구 한 사람 한 사람은 우
리를 위해 각각 다른 재능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우리에게 필요
한 모든 것을 한 친구가 소유하고 있기를 우리가 기대하면, 우리
는 언제나 그 친구를 심하게 비판할 것이고, 또 결코 그 친구가
소유하고 있는 것에 대하여 완전히 만족할 수 없을 것이다.
한 친구는 우리에게 애정을 줄 수 있을 것이며, 다른 친구는 우
리의 마음을 고무시킬 수 있을 것이고, 또 다른 친구는 우리의
영혼을 강하게 해줄 수 있을 것이다. 친구들이 줄 수 있는 여러
가지 다른 재능들을 우리가 더 잘 받아들일 수 있으면, 우리도
우리 자신의 독특한 그러나 제한적인 재능을 친구들에게 더 잘
제공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우정은 아름다운 사랑의 태피스
트리(형형색색 수놓은 장식용 천)를 만들어 내는 것이다.
물론 친구들이 하나님을 대체할 수는 없다. 그들은 우리와 마찬
가지로 한계와 약함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의 사랑에는
결코 흠이 없을 수 없으며, 결코 완전할 수도 없다. 그러나 친구
는 바로 그들의 한계 속에서 하나님의 무한하시고 무조건적인 사
랑을 향한 우리의 여행길에서 만나는 도로 표지판 역할을 한다.
하나님이 우리의 여행길에 보내신 친구들과 함께 인생을 즐기도
록 하라.
참된 우정이 어려운 이유
1. 친밀함의 복잡성
사랑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우리가 사는 사회에서 사랑은,
우리 모두가 갈망하는 이상으로 표현되어진다. 그러나 노래 가사
나 영화 속의 한 장면과는 달리, 일상의 현실은 대부분 우정이
오래가지 못한다.
인간관계에 엄청난 분열이 있다. 오늘날만큼 사랑에 대한 욕구
가 직접적으로 표현된 적이 없지만, 역설적으로 오늘날만큼 사랑
이 그토록 상실되어 보이는 적도 없다. 극도로 경쟁적인 사회에
서 우정과 친밀감과 연합과 교제에 대한 허기와 갈증이 엄청난
반면, 이 허기와 갈증을 채우고 해소하는 것이 오늘날만큼 어려
운 적도 없었다.
그 모든 것의 중심에 '관계'라는 말이 있다. 우리는 우리의 고립
과 고독을 깨뜨리고 안락과 소속감과 안정과 연결됨의 경험을 제
공하는 관계를 이루기 원한다. 그러나 곧 우리는 누군가와 가까
워지는 것의 어려움과 사람들 사이의 친밀감이 매우 복잡한 문제
임을 알게 된다.
2. 외로움과 욕구를 채울 목적으로 친구를 찾음
우리가 외로움을 느껴서 그 외로움을 없애줄 누군가를 찾을 때,
우리는 곧 꿈에서 깨어나게 된다. 잠시 우리에게 완전과 내적 평
화의 경험을 제공한 그 사람은 곧 우리에게 영원한 행복을 줄
수 없으며, 그 외로움의 깊이를 더욱 분명하게 보여준다는 사실
을 깨닫는다.
또 다른 인간이 우리의 가장 깊은 소원들을 만족시킬 것이라는
기대가 강하면 강할수록, 인간관계의 한계에 부딪쳤을 때 우리
의 고통은 더욱 크다. 그리고 친밀감에 대한 우리의 갈망은 쉽사
리 요구로 변한다. 그러나 우리가 다른 사람에게 사랑을 요구하
기 시작하면, 곧 사랑은 폭력으로 변해버린다. 의심과 험담과 앙
갚음과 불평으로 몰아가는 이 욕구는 결국 서로를 파괴시키는 악
순환으로 몰고 가는 것이다.
우정은 서로의 외로움을 없애기 위해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가
외로움에 못 이겨 자신으로부터 떠나서 다른 사람에게 기댄다면
결국 지치고 피곤하게 되며 서로를 옥죄는 관계가 되어버린다.
하나님이 채우실 수 있는 갈망을 인간에게 바랄 때 우리는 언제
나 부족하고 연약하다는 느낌을 받는 것이다.
서로에게 지나치게 매달리면 우정은 발전하지 않는다. 친구는 메
시야가 아니다. 우정은 서로가 독립적으로 서 있기 때문에 생기
는 편안한 공간이 있어야만 하는 것이다.
새김과 적용
1. 우정에 대해 지나치게 단순하게 생각하거나 자기 중심으로 사
고하지는 않습니까? 우정은 귀한 것이며 그것을 만들어 가는 것
이 쉽지 않다는 것은 당신에게 어떤 느낌을 줍니까?
2. 외로움을 채우기 위해 친구에게 매달린 경험은 없습니까? 그
과정에서 서로 지치거나 피곤하다 느낀 적은 없었나요? 서로에
게 편안한 공간을 만들기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습니까?
사랑과 우정을 위하여
1. 서로의 독특한 공간을 지켜주라
사랑의 신비는 다른 이가 홀로 있는 공간을 지켜주고 존중한다
는 것이다. 이런 고독 속에서 우리는 서로를 존중하고 상대의 프
라이버시를 보호하는 차원에서 거리를 지켜준다. 그리고 인간의
마음의 신성에 대해 경외하는 자세로 서로를 이해하고 강건하게
세워주게 된다.
그러면 우리는 서로를 격려하여 깊숙한 내면적 존재의 침묵 가운
데로 들어가서 그곳에서 인간간의 친교가 지닌 한계를 넘어서 새
로운 연합으로 부르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된다. 그리고 우리
는 친구들과 사랑하는 이들을 품으시고 또 우리를 먼저 사랑하심
으로써 우리에게 사랑할 자유를 주시는 그분의 임재를 점차적으
로 의식하게 될 것이다.
우리가 서로의 공간을 지켜주려고 노력하지 않을 때 인간 관계
는 소유적인 것이 되기 쉽다.우리가 다른 사람들의 공간을 침해
하여 다른 사람들로 하여금 그 자신이 되는 것을 용납하지 않을
때, 인간 관계에 커다란 고통이 생기게 된다. 그러나 우리가 서
로에게 움직일 수 있는 공간을 허용하고 우리의 재능을 함께 나
눌 때, 참된 친숙함이 가능하게 됩니다.
2. 생산적인 고독을 우정을 위한 밑거름으로 삼으라
라이너 마리아 릴케는 "사랑은 여기 있으니 고독을 체득한 두 사
람이 서로를 보호해 주고 선을 그어주고 서로를 맞이하는 것"이
라고 말했다. 또한 앤모로우 린드버그는 "우리는 모두 같은 바다
에 떠 있는 섬들인 것 같습니다"라고 하였다. 우정은 공통의 고
독 속으로 들어갈 수 있는 순간이다. 우리의 고독이 성숙을 위
한 시간들이 되면 그것은 더욱 더 뻗어나가서 더 많은 사람들을
끌어안는 순간으로 바뀌게 된다.
친구와 함께 지내는 것은 더할 나위 없는 즐거움이지만 우리의
목표가 거기서 그친다면 우리의 삶은 서글퍼질 것이다. 마음이
하나가 되어서 조화를 맞추어 일하는 것은 하늘이 준 선물이지
만 그 상황에서만 우리의 가치를 느낀다면 가엾은 사람이 될 것
이다.
친구에게서 편지를 받을 수 있으면 기분이 좋겠지만 편지를 받
지 않을 때에도 유쾌하게 살 수 있어야 한다. 서로의 집을 방문
하는 것이 귀중한 선물이기는 하지만 그런 일이 없다고 침울한
기분에 빠지지도 말아야 한다. 그냥 안부가 궁금해서 전화를 할
수도 있지만 외로움을 진정시키기 위해 전화에 매달리지는 말아
야 한다.
가까움과 먼 것 모두가 필요하다. 그것은 두 사람이 춤을 추는
것과 같다. 때로는 우리들은 매우 가까이 있다. 서로 어루만지기
도 하고 끌어안기도 한다. 때로는 우리들은 서로 멀어지기도 한
다. 그래야 그 벌어진 공간에서 우리가 자유스럽게 움직일 수 있
게 되는 것이다.
가까움과 먼 것 사이의 균형을 적당히 유지하기 위해서는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특히 파트너끼리 생각이 서로 매우 다를 때에
는 더욱 그러한 것이다. 한 사람은 가까워지기를 원하는데 상대
방은 멀어지기를 원할 수도 있다. 한 사람은 붙잡아 주기를 원하
는데 그 사람의 파트너는 홀로 서있기를 원할지 모른다. 완벽한
균형이란 좀처럼 쉽게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가 정직하
게 그리고 마음을 열고 그 균형을 찾을 때, 보기에도 아름다운
춤을 출 수 있게 될 것이다.
우정은 두 사람의 공동체의식이다. 이것은 무엇보다 고독을 통
해 얻어지는 내적인 자질이다. 이 내적인 자질을 통해 사람들이
함께 한다는 것이 훨씬 더 큰 실재를 유쾌하게 표현시켜 주는 것
이 된다.
3. 하나님 사랑의 산증인이 되라
모든 인간관계는 인류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을 나타내는 데에
그 목적이 있다. 이것은 매우 특이한 관점이다. 그러나 그것은
예수님의 관점이다.
예수님은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너
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
리라"(요 13:34-35)고 하셨다. 예수님은 우리를 어떻게 사랑하실
까?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사랑하였으
니"(요 15:9)라고 하셨다. 우리를 향한 예수님의 사랑은, 우리
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완전하게 나타내신 것이다. 이는 예수
님과 아버지가 하나이기 때문이다.
"…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셔 그의 일을 하시는 것이라. 내가 아
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심을 믿으라."(요 14:10-
11).
이 말씀은 매우 비현실적이며 불가해한 것일 수 있으나, 우리가
일상 생활에서 우리 관계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직접적이고 근본
적으로 말해 주는 것이다. 예수님은 우리가 하나님 사랑의 산 증
인이 되도록 하나님께 부름받은 것을 알려 주신다. 우리는 예수
님을 따르고, 예수님이 우리를 사랑한 것 같이 서로 사랑함으로
써 증인이 되는 것이다. 이는 우정과 공동체에 관해 무엇을 뜻하
는가? 그것은 이런 관계들을 지탱하는 사랑의 근원이 파트너에
게 있는 것이 아니라, 그 파트너들을 함께 부르신 하나님께 있다
는 것을 의미한다. 서로를 사랑하는 것은 적대적인 세상에서 살
기 위해 서로에게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이 우리를 하
나님의 사랑을 세상에 보여주는 사람들로 인정하기 위해 함께 사
는 것이다.
모든 우정과 관계와 참된 친밀함과 공동체 역시 하나님께로부터
온다. 마치 인간관계가 인간에 의해 만들어지고 따라서 인간의
규정과 관습의 변화에 따라 함께 바뀌고 요동하는 것으로 생각한
다면, 우리는 우리 사회를 특징짓는 엄청난 분열과 소외 외에는
아무것도 기대할 수 없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을 모든 사랑의
근원으로 믿고 주장할 때, 우리는 사랑이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백성에게 주신 선물인 것을 알게 될 것이다.
4. 하나님의 신실함을 나타내라
모든 인간 관계가 진실한 것이 되려면, 그 근원을 하나님께 두어
야 하며 하나님의 사랑을 증언하는 것이어야 한다. 하나님 사랑
의 중요한 특징은 '신실하심'이다. 하나님은 신실하시다. 거룩
한 약속을 지키시며, 결코 우리를 실망시키지 않는다.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사라와 이삭과 리브가와 야곱과 라헬에게 신실하심
을 보여주셨다. 또한 모세와 아론, 애굽에서 나와 약속의 땅에
들어가는 백성에게 그의 신실하심을 보여주셨다. 그러나 하나님
의 신실하심은 그 이상이다. 하나님은 우리를 돕기 원하실 뿐 아
니라 우리와 함께 하시기를 원하신다. 우리와 함께 걷고, 우리
와 함께 말하고 우리와 함께 죽으시는 임마누엘 안에서 이루어진
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예수님을 보내심으로 그 거룩한 사랑의
신실함을 깨우치기 원하신다. 또한 예수님은 떠나시면서 "내가
너희를 홀로 버려 두지 않고 너희에게 성령을 보낼 것이다"라고
하셨다. 예수님의 영은 우리 안에 계신 하나님이시다.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은 우리에게 그의 영을 주신다. 그것은 우리로 하여
금 하나님과 같은 삶을 살 수 있게 하기 위함이다. 그 영은 하나
님의 숨이다. 그것은 예수님과 아버지 사이의 친밀함이다. 그것
은 거룩한 연합이다. 우리 안에서 활동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이
다. 이 신적인 신실하심이 우리가 해야 할 핵심 증언이다.
우리는 '말'로, 그리고 우리의 '삶'을 통해 하나님의 신실하심
을 세상에 보여주어야 한다. 세상은 '신실함'에 관심이 없다. 이
는 신실함이 성공과 인기와 권력을 얻는 데 도움이 되지 않기 때
문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당신이 우리를 사랑한 것 같이 서로 사
랑하라고 하셨다. 그것은 우리가 신실한 관계 즉, 세상의 계획적
인 술수에 근거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원한 사랑을 아는 지
식에 근거한 관계를 이루어 가는 것이다.
신실함이란 쓰라린 결과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버티는 것이 아니
다. 그것은 조금도 하나님의 사랑을 반영하지 않는다. 신실함은
우리가 내리는 모든 결정이, 우리 내면에 거하시는 하나님의 신
실함의 산 표현이 되어야 한다는 깊은 자각에 근거하는 것을 의
미한다. 이것은 모든 형식적 의무를 초월하는 서로에 대한 지극
한 관심을 필요로 한다.
5. 함께 소명을 가지라
다른 사람을 사랑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상호애정, 지
적 양립성, 성적 매력, 공통의 이상, 공통된 경제적 문화적 종교
적 배경 등은 좋은 관계를 위한 중요한 요소들일 수 있다. 그러
나 그것들이 사랑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갈등, 슬픔, 질병, 성격의 차이, 이별 등을 맞이할 때 끝까지 신
실할 수 있는 힘은 어디에서 오는가? 그것은 소명이다. 하나님께
서는 각각을 무한으로 사랑하시며 서로에게 사랑의 산 증인이 되
기를 원하신다.
우정은 그들이 예수님의 제자인 것을 나타내는 것이 되어야 한
다. 친구로서 제자가 되어야 한다. 그리고 그 관계 속에는 언제
나 하나님이 함께 하셔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