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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의 연애 한 쌍, 죽어서도 쌍릉 이루었네

Simbang 2012.08.09 18:08 Views : 1030

[노래의 고향 9] 서동요

▲ 무왕의 무덤
ⓒ 정만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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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 진사댁 셋째 딸'이라는 유행가가 있다. 노래 조영남, 작사 전우중, 편곡 김재우의 이 노래가 유행한 때는 1970년대 초였다. 본래 외국곡이지만, 토속적인 가사에 힘입어 대중의 호응을 얻었다.

 

이 노래는 '건넛마을에 최 진사 댁에 딸이 셋 있는데, 그중에서도 셋째 따님이 제일 예쁘다던데'로 시작한다. 과연 '건넛마을', '최 진사' 등 우리나라가 아니고서는 들을 수 없는 말들이 등장하고 있다. 특히 눈길을 끄는 노랫말은 셋째딸이 제일 예쁘다는 대목이다.

 

작사가는 무슨 근거로 셋째딸이 제일 예쁘다고 하였을까? 물론 최 진사댁에서는 우연히 그럴 수도 있는 일이다. 하지만 이 노래가 대중의 호응을 얻은 것을 보면 작사가가 우연을 성급하게 일반화했다고 치부할 수는 없다.

 

작사가는 무턱대고 그렇게 노랫말을 만들지 않았다. 작사가는 '셋째딸은 얼굴도 안 보고 데려간다'는 속담에 착안했다. 속담은 오랜 세월을 거쳐 민중의 인정을 받은 경구이다. 셋째딸이 가장 예쁘다는 인식이 우리나라 사람들의 의식을 오랫동안 지배해 왔고, 작사가는 그것을 치밀하게 노랫말로 변용한 것이다.

 

▲ 선화공주의 무덤
ⓒ 정만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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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역사상 가장 유명한 셋째딸은 선화공주다. 신라 진평왕의 셋째딸인 선화공주는 서동과 결혼하는데, 서동은 뒷날 백제 무왕이 된다. 서동이 선화와 결혼할 무렵에는 태자가 아니었다는 말이다. 그는 홀로 사는 시골 과부의 아들일 뿐이었다. 하지만 장차 임금이 되는 신분인 만큼 그의 출생에는 남다른 설화가 깔려있다.

 

<삼국유사>는 서동의 어머니가 '서울(부여) 남쪽 못 가에 살았다'고 전한다. 지금의 전라북도 익산시 금마면 서고도리 연등마을로, 무왕과 선화공주가 200m 거리를 두고 나란히 묻혀 있는 '익산 쌍릉' 인근이다.

 

서동의 아버지는 그 못의 용이었다. 과부인 어머니는 용과 사랑하여 아들을 낳았다. 모녀는 마를 캐어 팔아서 생업으로 삼았다. 그래서 사람들은 아이를 마동(薯童)이라 불렀다. 서동은 진평왕의 셋째 공주 선화가 눈부시게 아름답다는 말을 듣고 신라의 서울 서라벌(경주)로 갔다. 그는 마를 깎아 동네 아이들에게 먹이면서 친해졌다. 아이들이 자기를 따르게 되자 노래를 가르쳤다. 아이들은 마를 얻어먹는 재미에 서동이 가르쳐 준 노래를 즐겨 부르게 되었다.

 

선화 공주님은

남 몰래 얼러두고

맛동방을

밤에 몰래 안고 가다

 

천하의 선화공주를 헐뜯는 노래(讖謠)였으니, 서동요가 서울 전역에 퍼지는 것이야 순식간의 일이었다. 결국, 선화공주는 귀양을 가게 되었다. 왕후는 딸이 불쌍하여 순금 한 말을 노자로 주었다. 서동은 우연인 양 접근하여 무거운 짐을 지고 따르면서 재미있고 진실한 언행으로 공주의 호감을 샀다.

 

▲ 선화공주의 아버지 진평왕릉(경주)
ⓒ 정만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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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화공주는 <서동요>가 정말 대단한 예언이라고 생각했다. 이 친절한 청년의 이름이 노래 속에 등장하는 '서동'이라는 것은 놀라운 사실이었다. 서동을 사랑하게 된 선화공주는 백제로 건너와 그의 집으로 갔다. 그녀가 황금으로 생계를 도모하려 하니 서동이 물었다.

 

"이것이 무엇이오?"

 

공주는 말했다.

 

"이것은 황금입니다. 한평생의 부를 이룰 만합니다."

"나는 어릴 때부터 마를 파던 곳에 황금을 흙처럼 쌓아 놓았소."

 

공주는 이 말을 듣고 크게 놀라면서 말했다.

 

"그것은 천하의 진귀한 보배입니다. 그 보물을 부모님(眞平王)의 궁전에 수송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서동은 말했다.

 

"좋소."

 

금을 모아 언덕처럼 쌓아놓고 용화산 사자사의 지명법사에게 금을 수송할 계책을 물었다. 법사가 말했다.

 

"내가 신통한 도의 힘으로써 보낼 수 있으니 금을 가져오시오."

 

공주가 편지를 써서 금과 함께 사자사 앞에 갖다 놓았다. 법사는 신통력을 발휘하여 하룻밤 사이에 그 많은 금을 신라의 궁중으로 보냈다.

 

실제로 서동이 황금을 산처럼 쌓아놓았다는 이야기는 아닐 테고, 마가 많았으니 돈도 많았다고 보면 될 것이다. 용의 아들이라고 했지만, <삼국사기>는 백제 30대 임금 무왕(600∼641)을 29대 법왕의 아들이라고 증언한다. 게다가 재위 3년 차인 602년에 무려 4만 명이나 되는 대규모 군사를 일으켜 신라를 공격했으며 처음에는 승전했지만, 끝내는 대패하여 총지휘관인 해수 혼자만 살아서 돌아왔다고 기록하고 있다. 신라의 공주와 결혼한 백제의 왕이 금세 대규모 군사를 일으켜 신라를 선제 공격했다는 것은 납득이 가지 않는 대목이다.

 

그러나 빈부 격차를 다룬 논문보다 같은 주제의 소설이 더 재미있고, 정사보다 야사나 설화가 더욱 흥미로운 법이다. 진평왕에게 선덕여왕, 진덕여왕의 동생인 셋째딸 선화공주가 정말 있었느냐, 그리고 가장 아름다운 그녀가 백제의 과부아들 서동과 결혼하였느냐 여부는 다음 문제다. 민중은 그저 노래 <서동요>에 얽힌 이야기에 마음이 설렐 뿐이다. 현대인도 인생이 팍팍할수록 텔레비전의 사랑극을 열심히 보는 법 아닌가.

 

▲ 동탑이 보이는 미륵사터. 국보 11호인 서탑은 2016년 복원을 목표로 현재 해체되어 있는 상태.
ⓒ 정만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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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유사>는 익산의 미륵사도 무왕과 선화공주가 세웠다고 전한다. 하루는 무왕 부부가 사자사로 가던 중 용화산 밑의 큰 못 가에 이르렀을 때 미륵삼존이 물에서 솟아올랐다. 왕과 왕비는 수레를 멈추고 절을 올렸다. 왕비가 왕에게 말했다.

 

"이곳에 큰절을 세워야 하겠습니다."

 

지명법사에게 못 메울 일을 물었다. 법사는 신통한 도의 힘으로 하룻밤 사이에 산을 무너뜨려 못을 메워서 평지로 만들었다. 그리고 절을 세워 미륵사라 했다. 신라 진평왕은 각종 공인(工人)을 보내어 역사를 도왔다.

 

<삼국유사>는 '그 절은 지금도 남아 있다'고 전한다. 그러나 미륵사는 조선 중기까지만 해도 전북 익산에 있었지만, 지금은 미륵사터만 남겼고, 터에는 탑만 우뚝 남아 있다. 본래 동서 쌍탑이었는데 동탑은 무너졌고 서탑만 남았다. 그 서탑은 우리나라에 현재 남아 있는 석탑 중 가장 규모가 크고 오래된 역사성에 힘입어 국보 11호로 지정되어 있다. 물론 1993년에 복원한 동탑은 서탑과 견줄 수 있는 수준이 못 된다.

 

둘 있지만 진정한 쌍탑이라고 말할 수 없는 미륵사터 석탑과는 달리, 무왕과 선화공주의 무덤은 '익산 쌍릉'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고 있다. 쌍릉은 미륵사터를 중심으로 볼 때 거의 직선으로 남쪽에 있다. 미륵사터에서 동남쪽으로 내려와 금마네거리에 닿은 다음 우회전하여 대략 2km 정도 남하하면 '사적 87호 익산 쌍릉' 이정표가 720번 지방도로 오른쪽에 세워져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 무왕이 축조했다고 전하는 궁남지(부여). 궁남지 일대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인공 공원으로 인정받고 있다. 부여시는 연못 일대를 '서동공원'으로 꾸며놓았다.
ⓒ 정만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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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왕의 무덤을 대왕릉, 선화공주의 무덤을 소왕릉이라 부른다. 선화공주는 왕이 아닌데도 그렇게 부르는 까닭이 궁금하지만, 그에 대해서는 안내판도 아무 말이 없다. 아마도 무덤을 만들었을 당시에는 왕릉과 왕비릉이었지만, 세월이 흘러 주인을 알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을 때 사람들이 크고 작은 것을 기준으로 그렇게들 부르게 되지 않았을까 여겨진다. 하지만 왕릉이 왕비릉보다 조금 더 큰 것은 충분히 납득이 가는 일이다.

 

둘은 200m가량 떨어져 있다. '세기의 연애' 정도도 아니고, 낙랑공주와 호동왕자, 평강공주와 온달 연애 사건과 더불어 우리나라 역사상  '한반도 3대 연애'의 주인공인 두 사람이 죽은 뒤 그렇게 떨어져 있는 것이 의아하다. 금관가야 개국시조 수로왕과 허황옥이 합장되지 않고 따로 묻혀 있듯이, 무왕과 선화공주도 그렇게 각각 누워 있다. 두 사람은 합장을 유언했을까.

 

무덤을 만드는 일은 자손들의 몫이다. 무왕의 장남인 의자왕 등 선화공주 부부의 후손들은 부모의 무덤을 합장하지 않았다. 전설 같은 결혼담을 남긴 두 사람의 생애로 미뤄볼 때 분명히 합장 유언이 있었을 법도 한데, 결과는 그 반대였다. 왜 그랬을까. 글을 쓰면서 나는, 대왕릉과 소왕릉 사이의 200m야말로 신라와 백제의 정치적 거리가 아닐까, 상상해본다.

 

두 사람의 사랑은 민중들에게는 최고의 연애였지만, 무왕이 죽은 해 8월에 의자왕이 김춘추의 사위와 딸을 죽이는 것을 보면, 양국 정치 지도자들에게는 합장의 분위기가 조성되지 않았다는 추측이다.      

 

만약, 나에게 무왕과 선화공주의 무덤을 만드는 권한이 주어진다면? 합장하지 않고 따로 모실 것이다. 사랑은 '저만치' 떨어져 있을 때 더욱 애타는 법이다. 그리 멀지 않은 곳에 떨어져 있으면서 영원히 서로 그리워할 수 있으니 얼마나 좋은가. 두 사람 모두 한결같이 행복하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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