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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 육로 여행을 떠나다

simbang.com(된장과고추장) 2012.08.12 21:44 Views : 1077

아프리카, 어떻게 여행할까?
 
▲ '느린 여행자'인 나와 장은 100일 간 아프리카 육로여행을 떠났다.  © Abby
일주일 후면 입시를 끝낸 ‘스무살’이 한국을 떠나 케냐 나이로비(Nairobi)에 도착한다. 17개월 전 여행을 떠난 사촌 누나와 매형에게 “수능 끝나면 남미에서 보자!”고 다짐 받은 지난해의 약속이 현실이 됐다. 다만 ‘스무살’의 누나와 매형이 그동안 계획한 대륙 하나의 일정을 시작도 못했을 만큼 느린 여행자인 탓에, 약속 장소가 남미에서 아프리카로 수정되었다.

 
그 ‘느린 여행자’인 나 애비(Abby)와 남편 장(Jang)은 사촌동생과의 만남 직전에 머무르고 있던 이집트 카이로(Cairo)에서 약속장소인 나이로비까지 직항으로 이동하는 대신, 에티오피아의 수도 아디스아바바(Addis Ababa)까지만 비행한 후 남은 1,700km를 육로 이동하기로 했다.
 
거의 두 배에 달하는 각 도시로의 항공료 차이 때문이기도 했으나, 그보다 배낭여행이 처음인 어린 동생을 본격적으로 끌고 다니기 전 며칠이라도 우리가 먼저 아프리카에 적응할 필요가 있겠다는 판단에서였다. 이미 이집트에서 삼 주를 머문 후였지만, 아랍 여행의 끄트머리에 찾은 이집트는 지리적 위치만 아프리카였을 뿐, 여전히 아랍 세계의 일부라는 느낌이 강했다.
 
최근 많은 여행자가 택하는 아프리카 여행의 방법은 ‘오버랜드 트럭 투어’다. 열 명 내외인 소수의 인원이 팀을 이루어 개조된 트럭을 타고 아프리카의 특정 구간을 함께 여행한다. 가이드 겸 운전사와 훈련된 요리사가 동행해 여행자들의 일상을 책임진다. ‘아프리카는 여행하기 어렵고 위험하다’는 선입견을 다독여주면서 중요한 관광지를 빠짐없이 돌아볼 수 있어, 오버랜드 트럭 투어 전문 여행사의 인기 구간은 출발일 반 년 전에 이미 동이 날 정도로 인기가 있다.
 
많은 면에서 오버랜드 트럭 투어는 패키지여행의 장점을 그대로 가졌다. ‘어디에 어떻게 가서’ ‘무엇을 먹고’ ‘어디서 잘 것인가’ 하는 여행의 3대 현안이 모두 해결되므로 별다른 준비 없이 원하는 지역에 합류하기만 하면 된다. 효율적으로 편안하게 많은 곳을 돌아볼 수도 있다. 반면, 단점 역시 그대로다. 여행의 현안에 부딪치며 답을 찾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우연과 인연은 배제되어 있다. 나의 의지와 관계없이 정해진 여행의 리듬을 따라야 한다. 이름난 관광지보다 더욱 매력적인 나만의 여행지를 발견하는 기쁨도 패키지여행의 몫은 아니다.
 
고민 끝에, 우리는 지난 오백여 일처럼 아프리카 역시 우리 스스로 여행하는 길을 택했다. 예상하는 여행 기간은 백 일, 그 중 앞의 절반은 ‘스무살’과 함께다.
 
여정의 시작: 에티오피아의 수도 아디스아바바(Addis Ababa)
 
▲ 이른 아침 에티오피아 아디스아바바의 외국인 거리     ©Abby
여정의 시작인 에티오피아의 수도 아디스아바바(Addis Ababa)에서 800km 남쪽에 위치한 케냐 국경 모얄레(Moyale)까지 가는 방법은 두 가지다. 1박 2일짜리 버스를 이용해 경유지 딜라(Dila)에서 하룻밤을 묵고 새벽에 다시 같은 버스로 이동하는 방법과 딜라보다 가까운 아와사(Hawassa)까지만 버스를 타고 가서 아와사에서 다시 모얄레 행 버스를 찾아 타는 방법이다.

 
두말할 것 없이 편리한 전자의 방법이 우리의 애초 계획이었으나, 낮에 우연히 만난 한국인 봉사자들과의 대화 후 즉흥적으로 경로를 수정했다. 그들의 말에 따르면 아와사는 에티오피아 남부의 대표적인 휴양지로, 놓치기 아까운 아름다운 호수가 있다. 이동을 위한 경유지에 불과하다고 하면서도, 여행자는 곁눈질로라도 그 곳을 맛보고 싶은 유혹을 떨치지 못한다. 무엇보다 아프리카 도착 만 하루 만에, 벌써 우리에겐 ‘호숫가에서의 한 때’와 같은 잠깐의 휴식이 절실했다.
 
나는 쉴 새 없이 지끈거리는 두통에 맥을 못 추는 중이었다. 바싹바싹 마른입을 축이려 한 모금 넘긴 물조차도 편치 않을 만큼 속이 메스꺼웠다. 설상가상 숨이 차고 심장이 요동쳐 제 속도로 걷기조차 어려웠다. 단순히 심한 피로나 긴장이라고 보기엔 이 ‘증상’이 어딘지 익숙했다. 걱정스레 약을 찾던 장이 구석의 과자 한 봉지를 꺼내고서야 답을 찾았다. 터질 듯이 빵빵했다. 아마 지금 우리들의 뇌도 폐도 그러하리라. 봉지도 나도, 고산증이었다. 그제야 가이드북을 뒤져 보니 아디스아바바는 드높은 백두대간 정상에 맞먹는 평균 해발 2,500미터, 세계에서 세 번째로 높은 수도다. 달음박질하는 동네 꼬마들이 모두 <드래곤볼>의 손오공처럼 보인다.
 
에티오피아로 오는 비행기에서부터 아프리카는 범상치 않은 기운을 뿜었다. 비행기 문 앞에서 우리를 맞은 스튜어디스는 보딩패스도 보지 않은 채 “저기 빈자리에 가서 앉으시라”고 친절히 우리를 안내했다. ‘입석 비행기’라니! 아마 중동에서 일하던 에티오피아 사람들이 고향으로 대거 돌아가는 날인 듯했다. 하나같이 새로 장만한 이불 보따리를 이고 진 사람들이 비행기를 가득 채웠다. 누군가는 노래를 했고, 누군가는 박장대소하며 박수를 쳤다. 좀처럼 통제되지 않는 사람들의 설렘으로 비행기가 들썩댔다.
 
성급하게 일반화할 수는 없으나, 여행을 하다 보면 지역을 지배하는 일종의 ‘성격’을 느끼게 된다. 이를 테면 A는 예의바르고 말끔하나 상당히 개인적이라 외로운 사람, C는 아이처럼 언제나 맑고 밝은 사람, N은 순하고 부드럽지만 좀처럼 속을 알 수 없는 사람, P는 오랜 외압으로 억눌린 자존심의 상처가 깊은 사람 등으로 의인화가 가능하달까. 여행자인 우리는 때때로 그 성격에 맞추어 태도를 취하는 기싸움을 해야 했다. 그런 견지에서, 아프리카는 “작열하는 태양처럼 거침없고 화끈한” 친구였다.
 
매혹적인 사람들, 그러나 강렬함은 곧 장미의 가시로…
 
▲ 에티오피아에서는 술빵을 얇게 빚은 듯 발효시켜 만든 전병 인제라를 주식으로 먹는다.     © Abby
공항에서 빠져 나온 아침에 우리를 압도한 것은 거리를 메운 사람의 모습이었다. 늘씬하고 단단하게 뻗은 인간 몸의 군락이 그 자체로 근사한 ‘풍경’을 만들어낼 수 있음을 실감했다. 고개를 꼿꼿이 들고 허리를 곧게 펴 걷는 그네들의 자세는 인상적이었다. 피하는 법이 없는 시선도 강렬했다. 매혹적이었다.

 
그러나 그 강렬함은 장미의 가시가 되어 넋 놓고 감탄하는 우리들을 날카롭게 찔렀다. 공항의 택시 기사들과 관리들은 태연한 눈으로 거짓말에 힘을 합쳤다. 버스 기사도, 가게의 아주머니도, 지나가는 동네 청년도 예의 당당하고 거리낌 없는 태도로 사기를 치려고 들었다. 이방인에게 거침없이 다가온 사람들은 돌아서며 거침없이 조롱을 던졌다. 자칫 방심해 허점을 보이면 바로 덮쳐들 맹수들에게 둘러싸여 있는 기분으로 첫 하루를 보냈다. 만만하게 보여서는 안 된다는 경보가 쉴 새 없이 울렸다.
 
“슬프지만, 인정해요. 길에서 다가오는 누구와도 이야기하지 마세요. 건네는 물건도 받지 말고, 음료나 캔디도 먹지 말고, 소개하는 펍에도 가지 말아요. 오, 물론 모든 사람이 그런 것은 아니에요. 하지만 길에서 만나는 사람들, 특히 이 거리의 사람들에게 당신들은 그저 먹잇감일 확률이 높아요.”
 
타데스(Tadesse)가 우리에게 말했다. 그는 카우치서핑(특정 지역을 여행하는 여행자와 현지인 간의 문화 교류를 주선하는 비영리 커뮤니티. 현지인은 호스트가 되어 여행자에게 무료로 숙박을 제공한다)을 통해 만난 아디스아바바 토박이다. 호텔 앞으로 찾아온 그와 함께 저녁을 먹었다. 에티오피아에서는 술빵을 얇게 빚은 듯 발효시켜 만든 전병 인제라를 주식으로 먹는다. 새콤한 인제라를 뜯어 야채나 고기 소스를 싸 먹는 것이 전형적인 한 끼 식사다.
 
그는 주고받은 메시지가 어긋나 간밤에 우리를 재워 주지 못한 것이 못내 마음에 걸리는 듯했다. 우리가 찾은 모얄레까지 교통편의 가능 여부를 확인해 준 뒤, 다음 목적지인 아와사의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우리를 부탁하겠다고 했다. 그러지 않아도 된다고 만류하는 우리에게 그가 덧붙였다.
 
“참, 길거리의 누군가가 아디스 이후의 행선지를 묻거든 대답하지 말아요. 아마 다음 도시의 친구에게 연락을 해 또 무슨 수를 부리려 들 거예요. 당신들을 어떻게 아냐고요? 이렇게 이동하는 외국인은 많지 않지요. 인상착의만으로도 얼마든지 찾아낼 수 있어요. 내가 당신들을 돕고 싶은 건 그 때문이에요. 나는 우리를 찾은 친구들에게 내 고향이 끔찍한 곳으로 남지 않길 바라요.”
 
그가 불러주는 친구의 이름과 연락처를 받아 적고, 알 수 없는 현지어로 통화하는 타데스를 바라보다 나는 문득 실소했다. 만일 그가 신신당부한 그 모든 이야기의 주인공이 그와 우리라면 어떻게 되는 걸까. 도와주는 척하면서 적극적으로 우리를 위험에 처하게 할 수도 있지 않은가. 종일 졸아붙어 얕은 친절에 어리석게 마음을 내 준 꼴이 되면 어쩌나.
 
여행을 하다 보면, 더러 감(感)으로 사람을 일별해야 하는 순간이 온다. 일상적이지 않은 상황에서 작동하는 그 감각은, 현재까지 대체로 맞았다. 어쩌면 그것은 근거 없는 추측이나 느낌이 아니라, 상대의 눈빛과 몸짓과 음성에서 배어나오는 정보를 온 피부로 수신한 후 내리는 ‘판단’이기 때문이리라. 어느 때보다 바짝 곤두선 온 몸의 촉수들은 그를 ‘믿어도 좋은 사람’이라고 말하고 있었다. 장의 표정을 보니 그도 같은 판단을 내리고 있다. 그렇다면 믿어 보자. 마음을 닫는 건 완전히 연 후, 때로는 한 번쯤 배신당한 후여도 늦지 않는다.
 
아와사행 버스에 몸을 싣다
 
▲ 애비(Abby)와 장(Jang)     ©Abby
부윰하게 날이 밝아오는 이튿날 아침, 아와사 행 버스를 타기 위해 길을 나섰다. 어쩐지 비실비실 웃음이 비어져 나왔다. 아프리카 여행은, 아주 격정적인 파도타기가 될 거라는 예감이 든다. 천사 같은 친구를 만난 다음 모퉁이에서 질 나쁜 사기꾼이 우리를 기다리고, 처참하고 황량한 풍경 후에 말도 안 되게 아름다운 풍경이 속절없이 펼쳐지고, 도움의 온기가 몸에서 가시기도 전에 사기와 악의의 냉기에 몸을 떨게 되리라는 그런 예감. 거침없는 날 것의 땅 아프리카, 여행자도 마땅히 그들의 최대치를 끌어올려 마주해야 하리라.

 
다시금 몸과 마음을 뿌듯이 편다. 가만히 서서 가쁜 숨을 모두었다. 아프리카의 ‘거침없는 기운’에 맞서기엔 이놈의 고산증때문에 초장부터 불리했다. 다시 장의 손을 잡고 씩씩하게 걸었다. 버스가 일단 우리를 고도가 낮은 곳으로 데려다 주리라. 아프리카 여행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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