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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이라는 신대륙 _ 열심히 일한 당신, 떠나라

simbang.com(된장과고추장) 2012.08.14 01:28 Views : 1089

‘열심히 일한 당신, 떠나라’는 카피가 가슴을 때리는 여름. 떠나지 않으면 불안한가? 그렇다면 어디로? 여기 일상이 여행인 사람이 있다. 5대양 6대주를 거쳐 마침내 한국이라는 ‘신대륙’을 발견한 여행자 윤광준. 그만의 ‘감촉’으로 여행의 진정한 축복을 만끽해보자.

살다 보면 저절로 쌓여가는 경험들이 많다. 여행이 여기에 해당된다. 업무 혹은 휴식과 충전을 위해 어디론가 떠나는 일은 이제 익숙하다. 여행을 싫어하는 이는 별로 없다. 반복되는 낡은 일상을 털어버릴 방법으로 이보다 더 좋은 일이 있을까. 떠나기 위해 일하고, 일하기 위해 떠나는 보통 사람들의 기대와 환상은 채워질수록 좋다. 갖가지 방법으로 여행을 한다. 손 하나 까닥하지 않고 돈만 있으면 다 해결되는 패키지 여행도 좋다. 원하는 것은 오직 새로움이니 귀찮은 일을 애써 도맡아 할 이유가 없어 적격이다. 아침 일찍 일어나 고된 일정을 소화하는 강행군도 마다하지 않는다. 말 많고 탈 많은 까칠한 사람들조차 찍 소리 하지 않는 걸 보면 편한 여행의 매력은 대단하다.

남들과 섞여 잘 지내지 못하는 성향의 사람들도 많다. 온갖 일을 몸으로 때워가며 여행지의 속살을 헤집어야 직성이 풀리게 마련이다. 걷고 뛰고 나르며 미지의 호기심으로 가득찬 눈을 굴리는 열정은 대단하다. 더 많은 지역과 사람들을 만나기 위해 공부하고 돈을모으는 억척은 아름답다. 방법의 차이야 무슨 문제가 될까. 제자리를 벗어난 여행의 신선한 자극과 사람 사는 모습의 재발견은 소득이다. 사는 게 뭔지 남들 다 다니는 해외 여행 한번 제대로 하지 못하고 푸념만 늘어놓는 사람들도 많다. 푸념의 원인은 대개 핑계다. 아이들이 어려서, 형편이 넉넉지 못해, 시간이 없어서, 함께 갈 사람이 없어서, 고소공포 때문에… 별의별 이유를 다 들자면 끝도 없다. 그래도 여행의 기대와 환상은 꺼지지 않는다. 남들을 부러워하며 신세 한탄하는 동안 속절 없이 세월만 흐른다. 아니다. 언젠가, 언젠가 이뤄질 꿈을 품고 사는 이들이 더 나을지 모른다.

여행의 횟수가 쌓이면서 많은 변화를 느끼게 된다. 여행은 낭만뿐만이 아니라는 것, 그토록 멋져 보이는 서구인의 삶도 고달프긴 마찬가지란 이상한 동류의식 같은 것, 우리보다 못사는 나라의 사람들이 더 행복할 수 있다는 것, 대한민국은 정말 대단한 나라라는 자부심을 갖는 것…. 그래서 우리는 떠나야 한다. 자신을 돌아보고 확인하기 위해, 이 나라가 얼마나 소중한지 깨닫기 위해. 미루는 동안 돌아올 것은 없다. 문득 흘려버린 세월 속에 남은 것이라곤 늘어난 주름살과 회한의 양뿐이다. 단 한 번뿐인 자신의 인생을 감탄과 풍요로 채워 넣어야 잘 사는 길이다. 모자라면 채워 넣고 넘치면 써야 균형이다. 의지로 모두 가능한 일이다. 아껴야 할 것은 돈과 욕망이 아니다. 스치듯 지나가는 시간을 선택의 다채로움과 풍요로 채워 넣어야 축복이다.

여권을 들춰보면 지나온 여행의 이력들이 낱낱이 찍혀 있다. 기억도 가물가물한 어느 나라의 추억은 낡은 스탬프 하나로 선명하게 복원된다. 차곡차곡 쌓인 비행기 마일리지는 또 한번의 멋진 여행을 가능케 해줄 것이다. 함께했던 사람들의 모습과 사연들도 떠오른다. 삶의 귀중한 시간들을 나눈 그들이 없었다면 참 쓸쓸한 세월을 살뻔했다. 시간과 노력을 들인 흔적들은 헛되지 않다. 적어도 여행을 통해 이만큼 컸다. 보고 만났던 세상의 모든 선생들에게 감사의 말씀을 올려야 도리다. 참 많이도 돌아다녔다. 멋진 지구본과 책상 앞에 붙여놓은 세계지도에 칠해진 초록색 마킹은 6대주를 커버한다. 불과 한 세기 전 어느 황제와 재력가도 하지 못했던 호사를 누리고 있는 셈이다. 이젠 여행의 갈증이 가셨다.

가보아야 할 나라와 관심은 여전히 많다. 하지만 꼭 가봐야 할 이유가 줄어든다. 그곳 역시 나와 똑같은 인간들이 비슷한 번민과 일상의 삶을 펼치고 있는 탓이다. 제 발과 눈으로 확인한 인간사의 비밀은 놀랍도록 비슷했다. 배 터지게 먹어봐야 허기가 가시는 게 맞다. 어설프게 먹으면 아쉬움만 커진다. 맛있는 것 부터 먹을 수 있을 때 많이 먹어두어야 포만감이 든다. 더 맛있는 것의 쓸데없는 기대는 포만의 양으로 잠재워지지 않던가. 바로 앞의 식탁이 더 맛있고 풍성하기 위해 더 많이 남의 음식을 배불리 먹어봐야 한다. 내가 먹는 음식이 소중해지기 시작했다. 바라보고 있는 우리 산하의 아름다움이 비로소 들어왔다. 나라 밖의 것은 다 좋고 멋지게 보였던 과오를 인정한다. 먹어보지 못하고 가보지 못해 생긴 턱없는 자신 없음을 수정해야 순서다. 우리가 모르는 우리의 모습이 있다. 모두가 부러워하는 대한민국을 우습게 아는 이들은 이 땅에 사는 우리들뿐이다.

이젠 자부심을 키워도 좋다. 우리가 만들면 세계 최고가 된다. 이 나라 사람이 가면 안 되는 일이 없다. 외형과 내실이 이토록 튼실한 나라가 있다면 나와 보라고 해라. 지구 반대편에서조차 누군가는 우리의 자동차를 타고 노래를 부른다. 대한민국은 이제 볼 것 없고 내세울 것 없는 허약한 나라가 절대 아니다. 주눅 들지 말고 눈치 보지 말 일이다. 이 땅 안에서 사는 우리 모두는 일등 국민이다. 한반도의 반쪽에 우리가 산다. 국토의 허리를 DMZ가 막고 있으니 정확하게 말하면 섬에 가깝다. 서울에서 부산, 아무리 먼 해남의 땅끝마을까지 가더라도 500km 내외다. 차로 달리면 6시간 만에 전국 어디든 닿을 수 있다. 이 좁은 땅덩어리 안에 우리가 산다. 과연 그럴까. 500km 반경 안에 사람이 살지 않는 곳은 없다. 삶의 터전을 펼친 크기로 이 땅을 다시 봐야 옳다. 30년 가까이 우리나라 곳곳을 돌아다녀 봤다. 국토를 스캔할 만큼 촘촘하게 훑었음은 물론이다. 유감스럽게도 여전히 가보지 못한 동네가 많다.

격렬비 열도를 아는가. 연화도는 가 보았는지. 섬이라 관심 없다면 강원도 고성군의 최북단 명파 마을은 들어본 적이 있는지. 알지 못하고 가보지 못했을 것이다. 우리 땅의 물리적 거리는 별 의미가 없다. 인간이 사는 실존의 공간으로 치면 이 땅의 크기는 엄청나게 늘어난다. 강원도 고성의 해안선 끝 점에서 DMZ를 지나 김포시 월곶을 거쳐 해안선을 따라 전국을 이은 거리가 얼마인지 아는지.

참고로 우리나라 고속도로의 총연장은 대략 5,000km 정도다. 놀라지 마시라! 우리나라 해안선의 총연장 길이는 무려 9,000km에 달한다. 못 가본 동네가 많은 이유란 자명하다. 이 넓은 지역에 사람들이 빼곡하게 박혀 산다. 1,000km 넘게 달려도 풍경이 바뀌지 않는 너른 땅을 가진 몽골이다. ‘너르다’와 ‘크다’는 엄연히 다르다. 아무리 넓어도 사람이 살지 않는 땅을 크다고 하지 못한다. 인간이 사는 땅은 실존의 크기로 가늠되는 게 맞다. 어느 곳을 가든 어떤 시간에 놓여지든 사람과 마주치는 대한민국은 결코 작은 나라가 아니다. 세상의 넓은 땅에 주눅들지 말아야 이유는 또 있다. 이토록 아름다운 산과 강, 평야를 지닌 나라가 어디 있던가.

사람을 누르지 않아 편안한 높이와 깊이의 산이 땅을 메운다. 겹겹이 구비치는 산맥의 흐름은 살아 숨 쉬는 용틀임으로 생기를 더한다. 산을 높이로 따지지 말 일이다. 산 뒤의 산, 또 그 뒤의 산으로 이어지는 중첩된 산을 보라. 이 세상에서 가장 깊은 산은 발 딛고 있는 그 자리에 있다. 깊은 산이 이토록 곳곳에 널려 있는 나라를 보지 못했다. 강은 또 어떤가. 구비치는 강의 물줄기는 사납지 않다. 포근하게 산을 감아 도는 물은 땅과 다투지 않는다. 낮은 곳을 메우는 물은 무심하게 땅의 이쪽과 저쪽을 구분할 따름이다. 경상남도 사천에서 비행기를 타고 서울로 향해보라. 폭넓은 지리산 자락의 위용에 놀라고 섬진강 물줄기의 회화적 곡선이 주는 조형성에 탄복하게 된다.

손 내밀면 닿을 수 있는 강 건너 마을엔 우리의 친구와 형제들이 산다. 평야는 산과 강 사이에 촘촘하게 널려 있다. 산에 막혀 답답할 만하면 평야가 나타난다. 벼와 채소가 자라는 들판은 일 년 사계를 통해 같은 모습을 보여주는 적이 없다. 녹색의 찬란함으로 시작해 갈색의 차분함을 거치면 이내 순백의 모노크롬 색채로 끝을 맺는다. 이토록 다양한 표정을 지닌 땅에서 우리의 먹을거리가 나온다. 산과 강, 들판 사이에 마을이 놓여 있다. 여기서 삶의 모습과 인간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한 번도 끊기지 않은 마을의 역사는 땅과 함께 숨 쉰다. 더 이상 지지리 궁상의 가난을 느낄 수 없다. 부지런한 마을 사람들은 온 힘을 다해 자식을 키웠다. 이들이 커서 세상을 움직이는 힘이 생긴 탓이다.

마을의 모습이 똑같아 보인다고 투정하지 마라. 이렇게라도 해서 지금까지 온 것이 위대함이다. 여유의 모습은 차츰 찾아가면 된다. 넘쳐야 주위를 장식하고 없던 기품도 생기는 법이다. 아름다운 이 강산에 우리가 산다는 점이 더 중요하다. 나는 우리 땅과 사람들을 사랑한다. 여전에 미처 들지 않던 감정이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자부심의 표현이다. 이 땅에서 벌어지는 일들과 사람들이 사는 모습이 좋다. 특별히 작정하지 않고 볼 일 없더라도 여기저기를 기웃거린다. 가만히 들여다보면 참 다양한 풍경과 색깔을 지니고 있는 대한민국이다. 서울과 부산은 같은 대도시이면서 다르다. 획일적으로 보이는 도시의 형태와 시스템이 문제가 아니다. 비슷하게 보이는 도시에서 펼쳐지는 인간들의 선택과 생각이 다르다.

말씨가 다른 만큼 다른 생각을 하며 산다. 서울 사람이 주말에 북한산을 오르는 게 자연스럽다면, 부산 사람은 낚싯대를 챙겨 바다로 간다. 같은 시간을 보내고 있지만 속생각은 다르다. 한쪽은 건강을 위해, 또 한쪽은 신선한 횟감을 위해 산과 바다를 찾는다. 대구와 광주는 또 다르다. 대구 사람들이 지닌 전통의 자부심은 여전하다. 세상이 아무리 바뀌어도 남의 것을 쉽게 받아들이지 않는다. 고루할 만큼 답답하게 원칙을 지키고 세상의 유행에 무관심한 태도를 보인다. 겉모습은 무뚝뚝하다. 하지만 들여다보면 볼수록 정 깊은 사람들이 사는 대구다. 광주는 활달하다. 처음 본 사람들과도 쉽게 친해진다. 걸쭉한 전라도 사투리가 풍기는 친화적 흡인력은 매력적이다.

뿌리 깊은 피해의식은 여전하다. 그렇다고 별로 문제될 것은 없다. 정치적 이슈만 꺼내지 않는다면 밤새 술 마시고 놀아줄 기꺼운 친구들인 까닭이다. 이 큰 실존의 땅에 퍼져 있는 사람들이 최고의 볼거리다. 잠시 스쳐가는 관광객의 시선으로 서로를 파악할 방법은 없다. 애정이 출발이다. 우연이든 필연이든 마음 내키는 대로 훌쩍 떠나볼 일이다. 적어도 하룻밤은 함께 지새워야 서로의 모습이 들어온다. 이 나라 여행의 가장 큰 문제가 자동차다. 너무 빠른 자동차 때문에 풍광은 보이지만 사람을 만날 방법이 없다. 머물러야 주변과 사람이 보인다. 천천히, 천천히 다가서는 인내를 보여야 할 사람은 바로 당신들이다. 싸가지 없어 보이는 서울 사람들의 콧대를 죽여야 여행이 재미있어진다. 제 잇속만 챙기는 듯한 얍삽함은 어디 가서도 환영받지 못한다.

서로의 반죽이 맞아 펼치는 대화의 재미는 무엇보다 즐겁다. 세상에서 가장 즐거운 놀이는 바로 사람과 노는 일이다. 멋진 호텔 방과 맛있는 음식이 널려 있어도 놀아줄 사람 없는 것만큼 처량한 일은 없다. 오늘은 대전의 ‘남간정사’를 들러 정원이 어우러진 우리 건축의 독특함을 즐겨보시라. 대전이 번잡한 도시일 뿐이라고? 먹을거리 볼거리를 쫓다 보면 2박 3일도 모자라는 게 대전이다. 멀리 떨어지지 않은 청주는 또 어떤가. 교과서에서 배운 ‘직지심경’이 어디서 만들어 졌을까. ‘상당산성’은 또 어떻고… 자세히 들여다봐야 보인다. 보이면 애정이다. 반복해서 애정을 키우면 그게 바로 사랑이다. 여행은 사랑하기 위해 떠나는 축복의 의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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