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킬리만자로에 울려퍼진 외침... "용변이 급해!"

(된장과고추장) 2012.08.19 21:49 Views : 1155

꿈이었던 킬리만자로 정상에 올라 눈물이 났다는 유현종씨가 태극기를 꺼내 엄홍길 대장과 함께 기념촬영
ⓒ 오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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킬리만자로 정상을 오르기 위해 마차메루트를 선택한 우리가 제1캠프에서 숙박을 한 지 6일 만에 드디어 정상 정복을 시도한다. 마차메캠프는 킬리만자로 산 남쪽의 1/3 지점에 있다. 고소 적응을 위해 6일 동안 이동해서 산 중앙부에서 오른쪽으로 약간 빗겨난 지점에 있는 4600m의 바라푸캠프에 도착한 일행은 긴장하기 시작했다.

이제까지 등산한 어떤 코스보다 더 험난한 여정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13시간 만에 1300m의 고도를 올려야 하는 코스. 그것도 만년설과 모래, 바위가 앞길을 가로막는 난코스를 밤 12시에 출발해 올라갈 계획이다. 낮에 출발하는 방법도 있지만 밤 12시에 출발해 6시간쯤 오르면 아프리카 최고봉에서 태양이 떠오르는 것을 감상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배낭을 최대한 가볍게 하고 닭죽으로 간단히 요기를 한 일행은 밤 11시와 12시에 출발하는 두 팀으로 나눠 등정하기로 했다. 먼저 출발하는 팀에는 그동안 고산병과 체력이 달려 후미에 쳐졌던 사람들만 가기로 했다. 텐트에 들어가 가볍게 눈을 붙이라는 엄홍길 대장의 지시에 각자의 텐트에 들어가 침낭 속에 들어갔지만 잠이 올 리 만무하다.

킬리만자로 정상의 만년설 모습. 뒤쪽은 구름이다
ⓒ 오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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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등반고도를 400~500미터밖에 올리지 않았고 등반시간도 많아야 8시간이었는데, 6시간 만에 등반고도를 1300m나 올리고 등반시간도 13시간이나 된다. 정상까지 고산병에 걸리지 않고 올라갈 수 있을까? 체력은 지탱해줄 수 있을까?

이 궁리 저 궁리를 하니 후발대에 끼어서는 동료들한테 짐이 될 것 같아 선발대가 집합하는 시간인 11시에 나갔다. 겁먹은 사람은 나만이 아니었다. 엄 대장이 앞에서 인원을 점검하니 거의 대부분이다. 엄 대장이 화가 났다.

"아니 원래 1/3만 선발대로 가기로 했는데 왜 이렇게 많이 나왔습니까? 왜 이렇게 겁을 먹고 그러세요. 한 명도 남겨두지 않고 끝까지 다 데리고 갈 테니 걱정 말고 원래 가기로 했던 사람만 남고 다 텐트로 들어가세요."

킬리만자로 정상에 태양이 떠오르기 시작한다
ⓒ 오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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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쓱해진 사람들은 다시 텐트로 들어갔다. 하늘에 별만 총총한 깜깜한 밤. 바람은 세차게 불고 불안해진 일행은 기침 소리도 죽였다. 밖에서는 "낙오되면 안 되니 앞 사람 발뒤꿈치만 보고 올라가라"는 엄 대장의 소리만 들린다.

정복하려는 인간에게 자연은 쉽게 허락하지 않는다

드디어 밤 12시. 남아 있는 사람 모두 모이라는 지시가 떨어졌다. 인원을 점검하니 한 사람이 없다. 선발대 인원을 잘못 체크했나 하고 같은 텐트에 들어갔던 동료에게 행방을 물으니 "방금까지 있었다"고 한다. 여러 사람이 불러도 대답이 없다. 찾으러 다녔지만 더 큰 소리로 부를 수는 없다. 바로 이웃텐트에는 곤히 잠자는 외국 등반대가 있기 때문이다.

수통에 물 뜨러 갔다 한참 후에 나타난 사람은 엄 대장으로부터 호통을 들어야 했다. 여기가 어딘가. 바람은 세차게 불고 영하로 떨어진 추운 날씨에 혼자 고립되거나 멋모르고 외국팀을 따라 나섰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영어 한 마디도 못하는 사람인데…. 모두들 안도했지만 혀를 끌끌 찼다.

등정대가 정상에서 한컷. 세계각국에서 온 등정대가 몰려 사진 촬영하기도 힘들었다
ⓒ 오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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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아내리는 킬리만자로 정상의 만년설. 사라져가는 북극 빙하와 함께 지구온난화에 대한 또 하나의 경고가 되고 있다
ⓒ 오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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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두에 엄 대장이 서고 가장 후미에는 일행 중 산을 잘 타는 분이 섰다. 우리 팀 선발대와 외국 등반대는 이미 저만큼 앞서가고 있다. 깜깜한 밤이라 길이 어딘지 모르지만 헤드램프가 켜진 곳을 바라보니 영락없는 반딧불이다. 구불구불한 모습의 반딧불들이 정상을 향해 올라가고 있다. 어제까지는 농담도 하고 주위도 바라볼 여유도 있었지만 아무도 말을 걸지 않는다. 다만 앞 사람 등산화만 따라갈 뿐이다.

얼었다 녹았다를 반복하며 바위에서 떨어진 모래가 일행을 자꾸 미끄러지게 한다. 4700m쯤 가니 눈과 얼음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속이 자꾸 거북해지고 힘들어 죽겠는데 자꾸 잠이 쏟아진다. 내 상태를 옆에서 지켜보던 현지 가이드 케네디가 내 배낭을 대신 짊어지고 나는 빈 몸으로 올라간다. 조금 괜찮기는 하지만 속이 미칠 것 같다.

기어이 정상에 흔적을 남기고 말았다

아! 큰일이다. 속이 메스꺼운걸 보니 아까 먹은 닭죽이 속을 뒤집었을까. 토하든지 용변을 보든지 둘 중 하나를 선택하지 않으면 도저히 안 될 것 같다. 70대 노인도 올라가고 여자도 올라가는데 여기서 중단할 수는 없지 않는가. 하는 수 없다. 염치불구하고 케네디에게 용변볼 곳을 찾아달라고 부탁했다.

해가 뜨는 분화구 모습. 45만년전 한번의 폭발로 길이 80킬로 미터 넓이 50킬로 미터의 거대한 산이 생겼다. 자연의 위대함에 고개가 숙여진다.
ⓒ 오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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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행이 걷는 길에서 5미터쯤 벗어난 커다란 바위 뒤. 바람은 세차고 손과 볼이 얼어붙는 것 같다. 용변을 보니 살 것 같다. 그런데 배낭에 가지고 갔던 물수건이 얼어버렸다. 몇 번을 비벼 처리를 하고 일어서 옷을 입었는데 손이 얼어 지퍼를 올릴 수가 없다. 일행은 계속 전진하고. 애가 타서 케네디에게 "미안하지만 손이 얼어 지퍼를 올릴 수가 없으니 지퍼를 올려달라"고 부탁했다. 휴! 살 것 같다.

5500미터쯤 올랐을까. 힘을 내 케네디와 함께 정상을 향해 오르기 시작하는데 포기하는 사람들이 속출하기 시작했다. 중간 중간에서 일행과 함께 산을 오르던 가이드들이 그들을 안내해 하산하고 있었다.

내려가는 길. 발목까지 빠지는 모래와 급경사에 일행은 지쳤다. 낮에 이러한 급경사를 보고 올랐다면 훨씬 힘들었을 거라는 동료들의 평가다. 저 아래 하얗게 보이는 건 구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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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인 우후루피크는 아직 보이지 않고 스텔라포인트(5740m)는 손에 잡힐 듯 가까운데 발이 떨어지지 않는다. 몇 년 전 TV 속에서 엄홍길 대장이 에베레스트를 오르며 다섯 발짝 걷고 쉬고 다시 다섯 발짝을 걷고 쉬고를 반복했다는 얘기를 실감한다. 스텔라포인트만 올라가면 거기서부터 정상까지는 분화구의 한 부분이라 쉬운데 50m를 남겨두고 하산할까 오를까를 고민하는 사람도 봤다.

드디어 제1목표인 스텔라포인트에 도착했다. 오전 6시가 넘은 시각. 동쪽하늘이 빨갛게 변하고 구름 속에서 해가 떠오르기 시작했다. 정상인 우후루피크(5895m)가 바로 저긴데 마침내 탈이 났다. 머리는 괜찮은데 속이 메스꺼워 미칠 것 같다.

길가로 달려가 토하기 시작했다. 가이드 케네디가 달려와 배낭에서 수통 하나를 꺼내 물을 주려는데 얼었다. 케네디는 다른 수통을 열어 물을 먹여주고 등을 두드려줬다. 텐트 동료인 황우상씨도 고산병이 도져 머리가 깨질 것 같다며 몇 차례 토했다.

킬리만자로 정상인 우후루피크를 정복한 사람에게는 탄자니아 정부에서 증명서를 발급해준다. 8월 2일 오전 6시 50분이라는 시간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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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생각하면 나는 고산병이 아니라 기진맥진해서 토한 것 같다. 돌아와 키보드를 치고 있는 손가락이 지금도 아린다. 스키 장갑을 꼈지만 손가락이 동상으로 시달렸기 때문이다. 내 생전 이렇게 입술이 심하게 부르튼 적이 없다. 내려와 파악해 보니 1/5이 도중에 기권하고 하산했다. 킬리만자로 정상 등정은 정복이 아니라 혈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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