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오하이오주에서 대학교에 다니는 전가연(22)씨는 졸업하면 현지 무역 회사에 취직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최근 캐나다·호주·뉴질랜드 등으로 눈을 돌렸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외국인 유학생의 취업비자 취득 심사를 까다롭게 바꾸려한다는 소식을 접했기 때문이다. 전씨는 “외국인 유학생이 미국 대학 졸업 후 1년간 합법적으로 인턴 근무를 할 수 있는 ‘졸업후현장실습(OPT)’ 제도 폐지도 검토되고 있다고 들었다. 그렇게 되면 취업이 안 된 대졸자는 곧바로 불법체류자로 전락한다”고 말했다.
트럼프 행정부의 반(反)이민정책으로 미국 거주 한인들의 불안감이 커져가고 있다. 지난달 27일 트럼프 대통령이 행정명령을 내려 이슬람권 7개국의 비자 발급과 입국을 금지하면서부터다. 한인들에게 직접적 타격은 없지만 불똥이 어디로 튈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팽배하다.
6만3700여명(지난해 기준)에 이르는 한인 유학생들이 특히 그렇다. 뉴욕에 사는 유학생 이모(30)씨는 “비자 문제로 홍콩이나 싱가포르 쪽 일자리를 알아보는 친구들이 많아졌다”고 말했다. 까다로운 취업비자 발급 대신 미군 입대 후 시민권을 취득하는 이들도 있었지만 이조차도 쉽지 않다. 미군에 입대해 지난해 10월 전역한 정수훈(24)씨는 아직 시민권을 받지 못했다. 트럼프 당선 후 시민권 취득이 어려워질지도 모른다는 소문에 신청자가 폭주했기 때문이다. 한미비자 지원센터 이병기 대표는 “앞으로는 미국에 입국하는 의도를 까다롭게 묻고 연장을 거부할 가능성이 크다. 비자 발급 문의를 해오는 사람들에게 갱신 가능 기간에 해당하면 빨리 갱신하라고 조언하고 있다”고 말했다.
유학생이 아닌 한인들도 불안하기는 마찬가지다. 로스앤젤레스 공항 근처에서 약국을 운영하는 홍화기(58·여)씨는 “여차하면 못 돌아올 수도 있다는 생각에 한인들이 외국으로 나가지도 않고 불안감 때문인지 돈도 안 쓴다”고 말했다. 현지 법인장으로 미국 워싱턴DC에서 파견 근무 중인 김모(50)씨도 지난달 30일 업무 차 한국으로 귀국하다가 딸로부터 “혹시 아빠가 한국에 있는 동안에 미국으로 돌아올 수 없게 되는 것 아니냐”는 말을 들었다. 김씨는 “설마 그렇게까지 되지는 않겠지만 한국인 불법체류자가 꽤 있다는 이유로 미국 정부가 한국인 입국을 통제하는 장면이 상상되기도 한다”고 말했다.
“트럼프 당선 뒤 인종차별 심해져” 하소연
재미교포들은 인종차별에 대한 불안감을 호소하고 있기도 하다. 트럼프 대통령 당선 뒤 ‘보이지 않는 차별’이 심해졌다는 반응도 있다. 위스콘신주의 윤이나(37·여)씨는 “얼마 전 지인이 옷을 사러 갔는데 주인 백인 노파가 멸시하듯 쳐다봐 싸웠다고 했다. 트럼프가 대통령이 된 후 노골적으로 인종차별 성향을 드러내는 것 같은 느낌이다”고 말했다. 인터넷 커뮤니티 ‘미준모(미국이민·영주권·시민권 준비자들의 모임)’에는 “트럼프를 좋아하는 백인 친구들이 많은데 뒤에서 내 욕을 하지 않을까 걱정된다”는 글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