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지순례-18> 마사다
(Masada)
천연 요새, 이스라엘의 최대격전지
*
사방이 가파른 절벽으로 이루어진 마사다 요새 전경 *
이스라엘 동부의 고대 유적 마사다는
히브리어로 "요새"라는 뜻이며 사해(死海) 서쪽 연안유대사막 동쪽에 우뚝 솟은 거대한 바위 절벽에 자리잡은 고대의 왕궁이자 요새를 말한다.
주위의 유대 광야의 산들과는 고립된 높이 400여m의 이 천혜의 절벽 요새는 길이 660m, 폭이 250m인 마름모꼴의 평평한 고원을 이루고
있다. 사방이 가파른 절벽으로 되어 있어 쉽게 정복할 수 없는 난공불락의 요새이다.
이 요새는 BC 37∼BC 31년 사이
7년여에 걸쳐 헤롯왕이 축조했다. 그는 자신의 악정(惡政)으로 인해 반란이 일어날 것에 대비하여 거대한 피난 요새궁전을 지었던 것이다. 수천
명이 몇 년간 충분히 먹을 수 있을 정도 분량의 식량을 쌓을 수 있는 식량창고도 만들었다. 이 요새는 헤롯왕이 죽은 뒤 로마군이 주둔하고
있었으나, 제1차 유대전쟁(Jewish War) 때 유대인이 점령하여 최후의 보루로 지키다가, 73년 로마군의 총공격을 앞두고 960명 전원이
집단 자살함으로써 "유대전쟁" 최후의 비극적인 격전지가 되었다. 이러한 사실은 서기 1세기의 유대인 역사가 요세프스(Josephus)가 쓴
<유대 전쟁사>를 통하여 살아남은 한 사람의 여인이 전한 말로 마사다의 생생한 순간이 전해졌다.
서기 66년부터
시작된 유대인의 로마에 대한 반란이 로마의 월등한 군사력으로 서기 70년 예루살렘의 함락과 더불어 성전의 파괴로 끝을 맺게 되자 이에 굴복하지
않은 960명의 "열심당원" 이라 불리는 극우파 민족주의자들은 이미 66년에 당시 소수의 로마 군인들이 지키고 있던 마사다를 점령하며 저장된
물과 식량, 무기를 이용하여 로마에 대항하였다.
예루살렘을 이미 점령하여 유대인 반란의 진압을 이미 달성한 로마의 총사령관
티투스(Titus)는 장차 아라비아 광야 지역으로의 진출을 예상한 광야 전투의 훈련을 목적으로 플리비우스 실바(Silva) 장군으로 하여금
10군단을 이끌고 이곳에 대한 대규모의 포위 작전을 실시하게 하였다. 로마 군은 2년에 걸쳐 여러 차례 요새를 공격했으나 성벽은 무너지지
않았고, 이에 로마군은 요새 꼭대기의 견고한 성벽을 파괴시키기 위하여 서쪽의 고원과 같은 높이의 거대한 성채를 쌓아올려 공성퇴(Battening
Ram)를 끌고 올라 갈 수 있도록 6개월에 걸쳐서 거대한 경사로를 축조하였다.
요세푸스는 그가 기록한 다른 전투와는 달리 이
전투에서 유대 저항군의 반격을 기록하지 않았는데 이는 당시 마사다의 저항군이 로마군에 대항할 전력이 없었기 때문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다른
역사학자들은 로마군이 성채를 쌓을 때 같은 열심당인 유대인 노예를 이용했기 때문에 민족주의 성향이 다분한 열심당원이 차마 동족을 죽일 수
없었다고 보고 있다.
유대인들의 격렬한 방해에도 불구하고 공성퇴가 성벽을 무너뜨리게 되었고 다음날 아침이면 로마군이 성벽이
파괴된 곳으로 진격해 올 바로 그 전날 밤, 유대인들의 지도자 엘리에제르 벤 야이르(Eliezer ben Yair)는 모두를 모아 놓고 다음과
같은 요지의 연설을 하였다.
"내일 아침 로마 군에 잡혀서 온갖 수모를 겪느니 차라리 오늘 밤에 우리가 스스로 자유스럽게
영광의 죽음을 선택합시다."
이 말에 감동한 각 가족의 가장들이 사랑하는 아내와 아이들을 칼로 찔러 죽인 다음 남자들이 한자리에
모여 열명을 추첨하여 그 열명이 나머지 남자들을 죽였고, 남은 열명이 한명을 추첨하여 아홉 명을 죽인 후 그도 최후로 자결하였다. 3년 동안의
한 맺힌 포위 작전에 대한 영광의 댓가를 바랬던 로마군 들은 960구의 시체 앞에 망연자실했다.
이 비극의 전설은 오늘날까지
승화되어 마사다는 현재 이스라엘 군 젊은 장병들이 선서식장으로 활용되고, 이곳에서 그들은 "마사다는 2번 다시 함락되지 않는다."라며
“Never Again!”을 외치면서 1948년에 독립한 이스라엘이 다시는 외적에 의해 정복당할 수 없다는 비장의 각오를 새롭게 하고 있다.
이 요새는 1963∼1965년에 실시된 발굴 조사로 요새의 2/3가 발굴되었다. 서쪽의 궁전과 북쪽의 험한 벼랑을 깎아서 세운
낭떠러지의 3단 테라스식 현애궁전(懸崖宮殿) 및 1천여명 이상의 저항군이 이용할 수 있는 부피 4000㎥의 큰 저수조(貯水槽)와 거대한
곡물창고, 로마식 큰 욕장지(浴場址) 등이 확실하게 드러났다. 산기슭 주위에 로마군이 쌓은 네모진 진지의 흔적이 있으며, 파피루스 문서도
발굴되었다.
현재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문화유산 중에 하나이며 유명한 관광지가 되었다. 이 역사의 현장을 방문하기 위해서는
3~4㎞의 구불구불한 급한 경사로를 따라 올라가는 길과 케이블카를 타고 올라가는 방법이 있다, 올라가기 전 기념관에서 마사다와 관련된 영화를
10분 정도 관람하고 올라가는데, 마사다를 이해하는데 크게 도움이 된다. 시간의 제약을 받는 우리는 케이블카를 타고 올라가는데, 까마득하게 급한
경사로를 따라 걸어가는 사람들이 보인다. 저들이 진정한 순례객들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이 요새를 둘러보면서
순례객들은 당시 유대인들의 결연한 의지에 크게 감동을 받기도 하지만 신앙적으로 볼 때 다윗을 쉽게 떠올리게 된다. 모든 고백이 체험의 소산이라
한다면 다윗은 적어도 이런 산성과 요새를 직접 오르며 산성과 요새의 견고함을 직접 느꼈을 것으로 추측해본다. 그는 즐겨 “주는 나의
산성이시니이다.”(시 18:2, 31:4), “주는 나의 요새시요 산성이시요.”((시 144:2) 라고 여러 차례 고백했기에 말이다. 난공불락의
요새, 이런 요새야말로 우리 하나님을 견줄 만하지
않겠는가?
아무것도 두려워 말라
주나의 하나님이 지켜주시네
놀라지마라 겁내지마라 주님 나를
지켜주시네
내 맘이 힘에 겨워 지칠지라도 주님 나를
지켜주시네
세상에 험한풍파 몰아칠 때도 주님 나를
지켜주시네
주님은 나의 산성 주님은 나의
요새
주님은 나의 소망 나의 힘이 되신
여호와
* 멀리서 본 마사다(상), 마사다 기념관(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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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블카 승강장에서 바라본 마사다 요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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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사다 요새로 오르는 길 *
* 요새 정상의 유적(저장 창고, 궁전, 저수조, 비둘기집 등) *
* 정상에 휘날리는 이스라엘 국기(상),
정상에서 내려다 본 광경, 멀리 사해가 보인다.(중,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