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준곤 목사님 - 1925~2009
◑걸어오신 길
1925년 3월생인 김준곤 목사는 대한예수교장로회 신학교와 조선대 문학과를 졸업하고
1955년 광주 숭일중교등학교 교장, 1956년 1년 동안 애양원 나환자 순성신학교 교수를 지냈다.
1958년 미국 풀러신학교에서 연구수학을 한 후에는 귀국하여 한국대학생선교회를 설립했다.
1966년에는 국가조찬기도회를 창설하여 지금까지 이어져오고 있으며
1972년 춘천 성시화운동을 한국 최초로 시작했다.
1974년에는 연인원 백만명이 모여 전도훈련을 받고
한국 교회 부흥의 중요 계기가 됐던 엑스폴로’74를 성공적으로 개최하기도 했다.
1980년에는 세계복음화대성회,
1984년에는 세계기도성회,
1985년에는 엑스폴로85 등을 성공적으로 치르는 데 크게 기여했다.
1990년에는 대학생선교회 국제원로 디렉터가 되었고
1992년에 기독교21세기운동 준비위원장,
1995년에 GCOWE’95 세계선교대회,
1997년에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 상임대표,
1999년에 엑스폴로'99 인천성시화대회 등
1990년대 대규모 집회를 개최해 민족 복음화 운동을 지속해 갔다.
2000년에는 한기총과 NCCK가 공동주최한 한국교회특별연합예배 준비위원장으로
교회 연합에 앞장섰기고
2002년에는 우리민족서로돕기 상임공동대표로 방북했다.
2002년에는 정부로부터 국문훈장 모란장을 받기도 했다.
김목사는 대학 동아리형식으로 모여 선교와 봉사활동을 하는 한국대학생선교회를
1958년 11월 서울 정동제일교회에서 창설해
오늘 날 330개 대학에 1만6천500명의 회원을 거느린 단체로 키웠고,
지금까지 약 30만명의 기독교인 제자들을 길러냈다.
김목사는 또 '민족'과 '봉사'의 개념을 선교에 도입해 민족복음화 운동에 앞장섰으며,
미국 유학시절 접한 조찬기도회를 모델삼아
1965년 국회조찬기도회, 1966년 국가조찬기도회를 창설했다.
김목사는 1968년에는 민족복음화를 위한 '나사렛형제들'을 창단했고,
지역단위 전도를 위한 사랑방운동을 펼치기도 했다.
아울러 1998년부터 2006년까지는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 상임공동대표를 맡아
북한주민 돕기에도 나섰고, 2002년에는 이웃종교 지도자들과 함께 북한을 방문했다.
김목사는 1925년 전남 신안군에서 태어나 무안농업실수학교(현 무안중학교)를 졸업한 후
만주에 있는 동양척식회사에서 교회생활을 시작했으며,
1948년 서울 남산의 장로회신학교를 제1회로 졸업했다.
1951년 대한예수교장로회 전남노회에서 목사안수를 받은 후 조선대 문학과를 졸업하고
광주숭일중고등학교 교목, 교장을 지낸 후 1957년 미국 풀러신학교로 유학을 떠났다.
김목사는 풀러신학교 유학시절 CCC 설립자 빌 브라이트 박사를 만나
한국에서도 대학생선교회를 시작하라고 권유받고 귀국,
한국 CCC를 창설하고 서울대, 고려대, 이화여대 등을 직접 다니며 전도에 나섰다.
김목사는 1974년 8월 32만여명이 5박6일간 여의도 광장에서 집회를 하고
철야기도를 한 '엑스플로 74' 대회를 통해 CCC에 대한 인지도를 높이고
한국교회 성장에 크게 기여했다.
1990년에는 사상 처음으로 대학생 단기선교팀을 3천명 규모로 꾸려 필리핀 마닐라에 파송했으며,
1995년에는 횃불센터, 충현교회 등에서 열린 세계선교대회 준비위원장을 지냈다.
김목사가 2003년 2월 CCC 국가대표직에서 물러날 때까지
CCC를 통해 훈련받은 대학생은 약 30만명에 이른다.
국회조찬기도회와 국가조찬기도회는 김목사가 1965년 미국 교회관계자들과 교류하면서 도입했다.
2003년 CCC 대표직에서 물러난 김목사는
2005년 6월부터는 성시화운동 세계총재를 맡아왔고,
교인수 100명 미만의 작은 교회를 돕는 일에 힘써왔다.
저서로는 '예수칼럼', '김준곤 문설집', '영원한 첫사랑과 생명언어', '리바이벌'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