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가정해보자. 당신 나이 36세. 스탠퍼드대 의대 신경외과 레지던트 6년 차다. 두개골을 드릴로 열며 주 100시간 넘게 일하던 수련의 생활도 올해가 마지막. 품성·재능·노력까지 뒷받침된 덕에 모교 교수 자리까지 제안받은 상황이다. 위스콘신 대학에서는 신경과학 연구소를 이끌어달라며 수백만달러 예산과 함께 역시 의사인 당신 아내를 위한 일자리까지 추가로 보장하고 나섰다. 하지만 반년 전부터 극심한 요통과 함께 체중이 줄기 시작했다. 미루고 미루다 CT를 찍었다. 결과는 폐암 4기. 종양은 폐를 덮었고, 척추는 변형되었으며, 간엽(間葉) 전체가 사라져 있었다.
'숨결이 바람 될 때'는 폴 칼라니티의 과장과 엄살 없는 회고록이다. CT 촬영 결과가 나오고 2년 뒤인 2015년 3월 9일 숨졌다. 그는 발병 사실을 알고 이 책을 쓰기 시작했고, 신경외과 수련의실로 돌아갔으며, 아기를 가지기로 했다. 아내와 숙고(熟考) 끝에 내린 결정이었다.
개인의 목숨은 모두 제각각 소중하다. 8개월 된 딸을 남긴 천재 의사의 요절이라고 해서 특별히 주목해야 할 이유는 없다. 하지만 마지막 장을 덮으며, 이 책은 좀 더 널리 읽히고, 자주 인용됐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폴은 예일대에서 의학을 전공하기 전에 스탠퍼드에서 영문학을,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철학을 공부한 철학도이자 문학도였다. 직업이 아니라 소명(召命)으로서의 의사를 선택한 폴의 고백에는 이런 대목이 있다.
"요점은 단순히 사느냐 죽느냐가 아니라 어느 쪽이 살 만한 가치가 있는가이다. 몇 달 더 연명하는 대가로 말을 못한다면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발작을 멈추려고 하다가 오른손을 못 쓰게 된다면? 당신의 아이가 얼마나 극심한 고통을 받으면 차라리 죽는 게 낫다고 말하게 될까."비극을 그릇째 줄 필요는 없다. 한 번에 한 숟가락씩. 폴 칼라니티가 의사였을 때 환자를 대하는 자세, 그리고 처지가 뒤바뀌어 환자가 되었을 때 그의 주치의가 보였던 태도다. 죽음을 앞두고 폴은 포기하는 대신 “계속 나아갈 거야”라고 결심한다. /흐름출판
불투명한 죽음이 예고된 상태에서 인간의 삶을 의미 있게 만들어주는 것은 무엇인가. 폴은 신경외과 수술실로 돌아갔고, 마지막 순간에는 삽관의 강제 연명을 거부하고 가족 모두가 지켜보는 가운데 자발적 죽음을 선택한다. 공격적 연명 치료를 시도한다 해도, 정신착란과 장기 손상이 거의 분명했던 상황이었다.
너무 급하게 병세가 악화됐기 때문에, 폴은 책을 마무리 짓지 못했다. 인공호흡 장치에 의존한 채 병원으로 실려간 다음부터의 이야기는 아내 루시가 썼다. 폴이 직접 쓴 원고의 마지막은 자신의 분신인 딸 케이디에 대한 예찬이다.
"네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무슨 일을 했는지, 세상에 어떤 의미 있는 일을 했는지 설명해야 하는 순간이 온다면, 바라건대 네가 죽어가는 아빠의 나날을 충만한 기쁨으로 채워줬음을 빼놓지 말았으면 좋겠구나. 아빠가 평생 느껴보지 못한 기쁨이었고, 그로 인해 아빠는 이제 더 많은 것을 바라지 않고 만족하며 편히 쉴 수 있게 되었단다."
폴이 인용한 문학의 경전 중에 사뮈엘 베케트의 소설이 있다. "나는 계속 나아갈 수 없어(I can't go on)"와 "나는 계속 나아갈 거야(I'll go on)"라는 두 대사 사이에서, 그는 자신의 존엄과 케이디의 탄생을 선택했다. 죽어가는 대신, 계속 살아가기. 원제 When Breath Becomes Ai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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