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란 눈 아기 구경가요"
19세기 말 외국인 개신교 선교사들 사이엔 이런 용어가 있었다. 우리말 '구경'을 영문으로 옮긴 이 표현은 문자 그대로 자신들을 조선 사람들에게
'보여주는' 것이었다. 외국인이 드물던 시절, 파란 눈의 선교사는 훌륭한 '구경거리'였다. 특히 1894년 평양에 나타난 의사 선교사 홀 부부와
6개월 된 아기는 대단히 화제가 됐던 모양이다. 홀 부인은 하루에 4번씩 자신과 아기를 1500여 여인과 아이들에게 보여주는 것으로 평양에서의
선교를 시작했다.
이덕주 감신대 교수가 낸 '남산재 사람들'〈사진〉은 평양 선교 첫 풍경을 이야기처럼
풀어놓는다. 평양은 1866년 제너럴셔먼호 사건 이후 외국·외국인에게 매우 적대적이었다. 그런 적대감을 '구경 선교'로 뚫고 들어간 선교사들은
평양 내성 서남부 성벽 바로 안쪽 언덕에 남산현교회를 세웠다. 북한 지역에 세운 첫 감리교 교회였던 남산현교회는 장로교의 장대현교회와 함께 북한
개신교의 요람이 됐다. 호기심에 구경 왔다가 예수 믿게 된 양반집 부인 전삼덕, 80리 길을 걸어 사경회에 참석하다 훗날 여전도사가 된 이효덕
등은 초기 신자들. 무엇보다 이 교회는 금주금연운동, 국채보상운동, 물산장려운동의 중심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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