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르륵 소리를 내는 배의 문제를 신속히 해결하는 것처럼, 영혼이 곤고할 때 하나님을 바라보는 대신 음식으로 해결하려고 한 적이 얼마나 많은가? 생각나는 대로 아무 예나 들어보자. 고된 하루의 일과를 마쳤을 때 달달한 아이스크림 한 통을 떠먹는 것보다 더 좋은 것이 없다는 것을 발견한 적이 있는가? 우리는 무언가 힘들어질 때, 씹는 것으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한다. 씹는 것은 신속하고 확실한 위안을 ‘한 방에’ 공급해준다. 건물을 장식하는 대형 광고판의 윤기 좔좔 흐르는 큰 햄버거, 자동차 라디오에서 연신 흘러나오는 피자 광고 음악, 자동차를 탄 채로 주문할 수 있는 패스트푸드 상점들, 퇴근길 거리의 이 모든 것들이 당신의 기분을 좋게 만들어주겠다고 약속한다. 심지어 우리는 그것들을 ‘위안을 주는 음식’(comfort food)이라 부르기도 한다. 그러나 생각해보라. ‘위로자’(comforter)라는 이름은 하나님께서 자신을 일컬어 사용하신 이름이다. 하나님은 모든 위로의 하나님이시며, 당신의 하루에 대해 기꺼이 당신과 대화할 준비를 하고 계신다. 평화의 왕이신 하나님께서는 당신에게 선물을 주기 위해, 그래서 당신을 강하게 만들어주기 위해 당신을 기다리고 계신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만족이 되기를 바라신다. - 119-120쪽 내용 중 일부입니다.
그들은 분명 떡에 정신이 팔려 있었다. 예수님이 떡 몇 덩이와 생선 몇 마리로 무려 1만5천 명을 먹이신 것이 바로 전날인데, 지금 또다시 이적을 베풀어 예수님을 믿어야 할 이유를 입증해달라고 청하다니! 그들은 생명의 떡으로 자신들의 영혼을 배불리는 데에는 아무 관심이 없었다. 그들의 관심은 오로지 ‘배(腹)의 신’을 만족시키는 것, 음식의 신을 섬기는 것에만 집중되어 있었다. 마침내 예수님이 대답하신다. “나는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요 6:35). 예수님은 군중들에게 대답하신다. 비록 그들이 알지 못하지만 예수님이 바로 그들이 찾는 떡이라고 말씀하신다. 그들은 무언가 먹을 것을 바라고 예수님께 온다. 예수님은 그들에게 예수님 자신을 내미신다. 그러나 바로 여기에 문제가 있다. 우리는 예수님으로 만족하는가? 요한복음 6장 66절이 그 질문에 답해준다. “그때부터 그의 제자 중에서 많은 사람이 떠나가고 다시 그와 함께 다니지 아니하더라.”이 구절은 예수님이 그렇게 말씀하신 순간,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따르기를 중단했다고 말한다. 그들은 어떤 신을 섬길 것인지 선택한다. 그러나 예수님을 선택하지는 않는다. 당신은? 예수님이 식권(食券)을 주지 않아도 계속 예수님을 따르겠는가? 당신에게는 무엇이 더 중요한가? 당신의 배를 위한 음식인가, 아니면 당신의 영혼을 위한 음식인가? - 125-126쪽 내용 중 일부입니다.
자세한 내용은 《거짓신들의 전쟁》을 참고하세요.
‘나’라는 신이 우리 마음의 보좌를 향해 조금씩 가까이 접근해올 때 나타나는 징후가 몇 가지 있다. 그 첫째 징후는 오만이다. “나는 언제나 옳아! 내 방식이 최선의 방식이야!” ‘나’라는 신은 다른 사람의 지혜를 경청하려 하지 않는다. “내가 틀렸어!”, “당신이 옳았어!”, “당신 말을 들어야 했어!”, “당신 생각이 더 좋은 것 같은데!” 같은 말들을 마지막으로 해본 것이 언제인가? 우리가 전혀 깨닫지 못했더라도, 오만함이 우리 삶에 떡하니 자리를 잡고 있을 수 있다. 내가 ‘나’라는 신을 섬기기 시작할 때 표면으로 부상하는 또 다른 증상은 불안감이다. ‘나’라는 신은 다른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엄청나게 신경을 쓰며, 무언가를 시도하는 것과 실패하는 것을 겁나게 무서워한다. 나는 자의식이 강해질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내가 나의 신일 때, 인생은 전적으로 나에 관한 것이 되기 때문이다. 방어적 성향도 그렇다. 상대방의 매우 사소한 지적이나 온건한 비판도 치명적인 인신공격으로 받아들이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한 적이 있는가? 무엇이 사람들을 이렇게 만드는 것일까? 당신이 ‘나’라는 신을 섬길 때, 당신 자신이 더없이 완벽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며, 다른 어느 누구도 당신을 비난할 수 있는 자리에 앉히려 하지 않기 때문이다. - 350-351쪽 내용 중 일부입니다.
당신은 지금 무엇에 목이 마른가? 엄청난 스트레스에 압도되어 마음의 평화를 갈망하는가? 외롭기 때문에 사랑을 갈망하는가? 권태에 짓눌려 삶의 의미와 목적을 갈구하는가? 누군가에게 받아들여졌다는 느낌을 구하는가? 당신이 정말 중요한 사람이라는 것을 확증해줄 누군가를 필요로 하는가? 아니면 그냥 지금보다 ‘더 많은 무언가’를 원하는가? ‘나’라는 신은 이 모든 것들을 부지런히 추구하라고 냉혹하게 요구한다. 그러나 그 신의 요구를 따르다보면, 결국 전보다 훨씬 더 목마른 상태에 내팽개쳐진다. 그러면 이제 예수님이 당신에게 보내신 초대장을 읽어보아야 하지 않을까? 그리고 즉각 그 초대에 응해야 하지 않을까?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내가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요 4:14). - 364쪽 내용 중 일부입니다.
자세한 내용은 《거짓신들의 전쟁》을 참고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