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irley 할머니는 팔십이 가까운 할머니이신데 최근에 혼자 되셨다. 결혼하여 아들, 딸 낳고 남편과 25년정도 살다가 남편이 먼저 돌아가신 후, 혼자 있다가 Shirley의 어머니가 이혼남이던 John을 소개해 주어 같이 30년을 동거생활을 하다가 몇달전에 John이 팔순의 나이로 죽자 Shirley는 다시 혼자가 된 것이다.
거동이 불편한 Shirley를 위해 John이 그동안 집안일을 다 해 주다가 John이 죽자 Shirley 는 혼자서 집에서 생활하기가 힘들게 되었다. 내가 한달전에 심방을 갔더니, 거동이 불편하여 나다니지도 못하고 하루 종일 혼자 집에 있는 것이 외롭고 우울하다고 하였다. 마더 테레사가 “외로움은 서양사회의 문둥병”이라고 했다던가.
최근의 건강문제로 집에서 혼자 지낼 수 없어 딸을 비롯한 가족들이 Shirley를 가까운 양로원에 입원을 시켰다. 그래서 오늘은 그 양로원에 찾아가 Shirley를 심방하게 되었던 것이다.
Shirley의 방에는 Shirley외에 거동이 불편하신 할머니가 함께 방을 쓰고 있었다. 내가 Shirley의 방에 들어가자, 마침 딸인 Lisa와 손녀인 Sara, 그리고 Sara의 두 아이들이 함께 있었다. 그런데, Shirley옆에 앉아 있던 딸 Lisa가 울고 있었다. 나는 영문을 몰라 Lisa에게 “ 왜 울고 계신 건가요?”하고 묻자, Lisa는 눈물을 닦으며, “나중에 얘기할게요.”했다. 그러자 Shirley는, “내 거처문제를 놓고 Lisa와 Sara가 싸워서 Lisa 가 우는거라.”고 했다. 친척간의 위계질서가 있는 한국문화에는 이해하기 힘들지만, 50된 고모와 30인 여조카가 말싸움을 하여 고모는 울고 있고, 여조카는 멀뚱멀뚱 멋적은 듯 앉아 있었다.
Shirley할머니가 화장실에 간다고 지팡이를 짚고 일어서자 손녀인 Sara가 할머니를 부축하여 화장실로 간 사이에 Lisa가 내게 말했다: “어머니는 거동이 불편하고 집안에 보살펴 주는 사람이 없어 양로원에 가야한다고 하는 말에 조카 Sara는 할머니가 아직 집에서 생활할 수 있는데 할머니를 양로원에 넣으려고 한다며 나를 나쁜 사람같이 몰아 붙여 속이 상해서 울었다.”고 했다.
“그렇게 할머니를 위하는 척하는 Sara 는 일주일에 한번만 어머니를 찾아 뵙고, 나는 학교 선생일과 집안일을 하느라, 어머니를 전적으로 보살필 형편이 안 되어, 간호사와 영양사가 잘 보살펴 주는 양로원에 입원시키자는 내 의견을 나쁘게만 보는 것 같아 속 상하다.”는 것이었다.
나는 Lisa 말에 동의한다며 맞장구를 쳐 주었고, 그때 Shirley와 Sara가 화장실에서 나왔다. 나는 Shirley할머니를 위해 기도하자고 제안을 하고, 모두 손을 잡고 기도하자고 했다. 그러니까 한가족의 4대가 한 자리에 모여 기도하기 위해 손을 잡은 것이었다.
옛날 가난했던 시절 대부분의 한국 가정들이 대가족이었던 때가 있었다. 연로하여 거동이 불편한 노인들은 집에서 손주들을 돌보고, 손주들의 재롱을 보며 노년의 외로움을 달랠 수 있었을 것이다.
물론, 함께 살다 보면 고부간의 갈등이 생기기도 하고, 나중에 노인이 된 부모를 누가 모시느냐를 놓고 형제간에 불화가 생기기도 한다. 그래서 웬만한 경제력과 건강이 있으면 노부부가 속 편하게 분가해서 살기도 한다.
내가 어렸을 때 “할미꽃”에 대한 이야기를 읽은 기억이 있다. 딸을 여섯둔 할머니가 혼자서 살 곳이 없어 큰 딸집에서 구박을 받고 둘째 딸집에 가서도 얼마 안 있어 눈총을 받고 셋째딸, 네째딸에게도 푸대접을 받고, 다섯번째 여섯번째 딸에게서도 설움을 당해 오갈 때가 없던 신세가 된 할머니는 정처없이 길을 걷다가 쓰러져 죽었고 그 자리에 허리가 구부러진 할머니를 닮은 할미꽃이 생겼다는 이야기였다.
젊은 사람들은 다 자기 나름대로의 바쁘고 힘든 사정들이 있겠으나, 자기들 중심대로 생각하기 보다, 어떻게 하면 연로하신 노부모님의 몸과 마음을 편하게 해 드릴 수 있을까 생각하는 아름다운 마음을 갖는 젊은이들이 많이 생겼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