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북클럽 10월 교재인 '격려를 통한 영적 성장'이라는 책을 읽었다.
쉽게 생각하고 펼쳐 든 래리 크랩과 댄 알렌더의 책이었지만, 페이지를 넘길수록 이해하면서도 어려움이 교차했다.
격려라는 것이 결코 만만한 기술이나 가벼운 위로가 아니라는 사실을 직면했기 때문이다.
인간에게는 상처받지 않으려는 본능적인 방어막이 존재한다.
그렇기에 우리는 타인의 삶에 깊이 개입하는 것을 주저하고, 그저 방어막 주변을 가볍게 터치하는 수준의 피상적인 대화에 머물곤 한다.
방어막이 너무 쉽게 무너지면 날 것 그대로 노출되어 더 큰 상처를 입을 수 있고, 반대로 너무 단단하면 진정한 소통이 불가능해진다.
우리는 종종 '코이노니아'라는 이름으로 모든 것을 다 오픈하고 털어놓는 것이 정답이라 착각한다.
하지만 사람에게는 가려야 할 것을 지혜롭게 가려주는 절제와 경계선이 있을 때 오히려 더 아름답고 안전하다는 것을 깨닫는다.
인간은 타인의 날 선 상처를 온전히 다 받아낼 그릇이 되지 못하기에, 내 마음의 가장 깊은 밑바닥은 오직 하나님 앞에 쏟아놓아야 마땅하다.
진정한 격려와 코이노니아는 내 속을 다 뒤집어 보여주는 무례함이 아니라, 상대를 존중하기에 지킬 선을 지키며, 그리스도의 사랑 안에서 옷을 입혀주듯 서로의 허물을 덮어주고 세워가는 아름다운 동행이다.
또한, 누군가를 격려한다는 명목 하에 내가 높은 위치에서 상대를 가르치거나 훈수 두듯 조언하지 않았는지 돌아본다.
상대방이 위화감을 느끼지 않도록 수평선상에서 진정으로 격려한다는 것은 참으로 쉬운 일이 아니다.
"즐거워하는 자들과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들과 함께 울라 서로 마음을 같이하며 높은 데 마음을 두지 말고 도리어 낮은 데 처하며 스스로 지혜 있는 체 하지 말라"
— 로마서 12장 15-16절
결국 내 의지와 인간적인 기술로는 이 피상성의 벽을 넘어설 수 없다.
상대의 방어막을 존중하면서도 영혼을 살리는 진정한 소통을 하려면, 내 안에 그리스도의 사랑과 주님의 눈, 주님의 마음이 부어져야만 한다.
이 어렵고도 소중한 영적 성장의 걸음을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까.
가장 가까운 '부부 관계'가 떠오른다.
가장 나의 민낯을 잘 아는 배우자에게 평가와 비난 대신, 주님의 마음으로 허물을 덮어주고 따뜻한 격려를 건네는 것부터 시작해 보고 싶다.
내 힘이 아닌, 주님이 주시는 눈으로 바라보며 한 걸음씩 나아가기를 소망하며 오늘 하루를 마무리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