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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월 19일 일요일 오후,

미국의 어바인 이라는 조용한 도시에서는 작은 태동이 있었다.

지난 2월 창단된 한미 야구학교에서 만든 어린이 주말 야구단인 리틀 타이거스의 훈련을 마치고
단원들 모두가 한자리에 모였다.
적어도 나에게는 나의 인생에서 맺은 열매중의 하나이다.

미국,아직도 동양인은 소수민족으로 취급받으며,
미국 주류사회 중심으로 운영중인 야구리그에서 당당히 서는 것은 어렵다.
또 독자적으로 운동장을 배정 받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그런 야구장을 배정 받기 위해 시청이며 각종 리그의 실무자 및 회장들을 접촉하며
때로는 문전박대를 받으며 설움을 느꼈던 시간들이 주마등 처럼 흘러간다.
 

 
은 사람들이 나에게 묻는다...왜 주말 어린이 야구단을 운영하느냐고
돈도 안되고, 시간은 많이 들며, 책임만 몇 십배...
사업이라면, 잘 한다해도 분명 손해보는 사업이다.
그것도,누구말처럼 야구도 해 본적도 없는 여자다...
그런 내가 왜 이런 일을 시작해야 했을까? 
 
들 녀석이 4살때 우연히 시직한 동네야구...
시작부터 나의 눈에 조금은 더 민첩하게 보여 6학년까지 하게 되었다.
또 아들 본인도 야구를 진지하게 생각하기 시작하였다.
그래서 맹모삼천지교의 심정으로 소위 야구의 명문(?)이라는
사이프러스란 동네로 이사까지 가게되었다.
생소한 동네에서 중학교 나이의 야구는 쉽지가 않았으나,
그래도,
 우리는 몇번의 쉼표를 찍어가며, 순간순간 고비를 넘겨고등학교까지 야구부에서 뛰게 되었다. 
 
미국에서는 조그만 동네동네 마다 야구리그가 있어 생활자체가 야구인 나라이므로
그 수많은 미국인들 틈에서 야구장학생을 바라보며 대학을 준비한다는 것이
그리 쉬운일이 아니었다.
그것도 까만머리에, 전형적인 한국의 김(Kim)이라는 성씨를 갖고는 더욱 그랬다.
그런 아들의 야구연습, 시합을 14년간 따라 다니며 난, 가슴으로 야구를 품었다.
 
픔의 정점은 모 대학에서 야구장학생들을 뽑기위한 올스타캠프에 참가한 그 순간 이었다.
발목을 다친것 이었다.
방학같은 방학 한번 제대로 해 보지못한 14년간의 시간들이 다 날라가 버린 순간이었다.
멀리 북캘리포니아에서 8시간 동안 차를 몰며  돌아오는 그 긴시간 동안,
수 도없이 마음속으로 왜쳤다.
"주님, 이게뭐예요?"
"여기까지 였어요?"
"이럴수가 있어요?" 라고...
 
순간,번쩍 스쳐가는한 생각이 나를 사로잡았다.
 '그래,
이제부터는 하나뿐인 내아들이 아니야, 야구를하며 자라나는그 아이들을 돌보는 사람이 되자.
그래서, 그렇게 힘든 자신들과의 싸움을 해야하는 그 아이들에게
비록 우리는 그 꿈을 이루지 못했을지라도
그 순간, 내가 느꼈던 그 좌절감 조차도 이아이들에겐 좋은 경험들이 되는,
든든한 후원자가 되자' 라는 굳은 마음이 솟았다. 
 
메이저리그, 아니 야구장학생으로 대학을 가지 못한 그들도
여전히 야구를 사랑하며 뛸수있고, 다른꿈들도 펼칠수 있도록
이민 1세대인 우리들이 그들의 좋은 텃밭이 되어 밑거름이 되어주어야 하지않을까?
 
으로보고, 가슴으로 읽은 야구. 
지금 이 순간에도 베팅케이지에서 땀 흘리고 있을 우리 어린 꼬마선수들,
특히 미국이민 초기에 야구를 시작할 시간과 기회를 놓친 그 아이들에게도
나이에 맞는 정규리그에 들어가 본인들의 재능을 맘껏 발휘 할수있도록해 주고 싶다.
더군다나 이 어려운 이민생활동안 아이들의 사춘기라도 조금 쉽게 넘길수 있게된다면,
나의 이 조그만마음을
꿈을 꾸는 우리 어린아이들에게 주고 싶다.
 
사랑하는 대한의 아들들아
오늘도 열심히 함께 뛰자꾸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