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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톱클래스] 영화 '싱글라이더' 이주영 감독 (펌)

감사또감사 2017.04.15 11:33 Views : 386

사회와 가정에서 상처받은 쓸쓸한 현대인의 초상

인생이라는 여행은 계획이 아니라 충동적으로 떠나는 데서 시작하는 것이 아닐까. 영화가 끝나고 〈싱글라이더〉라는 이름이 공허하게 떠오르는 순간 모든 장면과 배우는 잊히고 이 물음만이 뇌리에 맴돌았다. ‘나는 지금 잘 살고 있는가’. 호주의 파란 하늘만큼이나 시리도록 쓸쓸한 영화 〈싱글라이더〉의 이주영 감독을 만났다.

영화 〈싱글라이더〉는 개봉 전부터 화제였다. 워너브러더스 코리아와 퍼펙트스톰필름(대표 하정우)이 각각 배급과 제작을 맡았고, 시나리오는 이창동 감독의 지도를 받은 작품인 데다 무엇보다 배우 이병헌이 시나리오에 반해 먼저 출연 제의를 했기 때문이다. 이주영 감독의 표현대로 “모아보니 버라이어티하고 반짝반짝한 영화”다.

〈싱글라이더〉는 이주영 감독의 첫 장편영화다. 그는 배급사와 제작사, 출연 배우가 쟁쟁한 데 반해 영화계 이력이 전혀 없는 신인이다.

“한꺼번에 이뤄진 것은 아니에요. 이병헌이라는 배우가 이 영화를 선택해준 건 행운이었어요. 스타트가 좋았습니다. 크레디트에 있는 멋있는 이름들이 특별하게 해주었다기보다 뭉근하게 지지해주었기 때문에 극장에 올릴 수 있었어요.”


성공을 좇다 추락한 사람들

영화는 앞만 보고 달려온 한 남자의 추락에서 시작한다. 기러기 아빠인 재훈(이병헌)은 소위 잘나가는 증권사 지점장이지만 부실채권으로 회사가 넘어가며 하루아침에 모든 것을 잃는다. 가족을 찾아 호주로 간 그는 가족에게 다가서지 못하고 겉돌기만 한다. 사회와 가정에서 상처받은 재훈의 상실감은 현대인의 쓸쓸한 초상과 마주한다.

싱글라이더는 홀로 여행하는 사람을 의미한다. 영화는 결말에 이르러서야 제목을 알려준다. 이주영 감독은 “영화를 다 보고 나서 제목을 봤을 때 그 의미를 느끼기에 적합하다” 라고 설명했다.

“마케팅에서는 쉬운 제목을 원했지만, 영화의 제목조차 시나리오의 일부분이라는 확신이 있었어요. 싱글라이더의 의미는 호주에서의 짧은 여행일 수도 있고, 인생을 의미할 수도 있어요. 중의적입니다.”

〈싱글라이더〉는 대형 상영관에서 쏟아지는 장르물 사이에서 보기 드문 잔잔한 드라마다. 그 와중에 반전도 있다. 반전이 튀거나 놀랍기보다 ‘그럴 수도 있겠구나’ 싶다. 감독이나 배우 모두 입을 모아 ‘반전이 중요한 영화는 아니다’라고 말한다. 심지어 이 감독은 “반전과 이병헌이라는 배우를 기대하고 영화를 보러 왔다면 실망이 클 것”이라고 했다.

“시나리오 구상 단계부터 설정했던 상황이에요. 주인공이 호주에 가서 한동안 소홀하게 대했던 가족을 지켜보면서 자신을 돌아보는 이야기입니다. 인정하기 싫은 자신의 모습을 들여다보고 절망하고 받아들이는 과정은 누구나 살면서 한 번쯤 겪는 일이 아닐까요.”

그는 그저 “결정적인 선택 이유와 후회에 대해서만 들여다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영화는 재훈을 중심으로 그 주변 사람을 보여준다. 가족에게 다가서지 못하고 국숫집에서 멍하니 앉아 바라본 곳에 지나(안소희)가 있다. 워킹홀리데이로 호주에 온 지나는 열심히 일해 번 돈을 한 번에 잃어버렸다. 거대한 돈놀이에서 돈을 날린 장년의 지점장과 한국으로 돌아가기 위해 어렵게 모은 돈을 홀랑 잃어버린 청년은 같은 상황에 놓여 있다.

“이 영화의 주된 정서는 어떤 문제 앞에서 개인이 받은 충격과 상실감입니다. 중년이라고 해서 또 청년이라고 해서 절망에서 쉽게 빠져나올 수 있는 건 아니죠. 주변에서 안정적이고 여유로운 삶을 살면서도 더 큰 성공의 욕망에 빠져 망가지는 사람들을 많이 봤어요. 만약 그들이 최고로 가치를 두는 무언가를 빼앗겼을 때 과연 견딜 수 있을까? 생각이 달라질까? 후회할까? 다시 재기할 수 있을까? 생각하며 재훈이라는 캐릭터를 만들었죠.”


CF감독에서 영화감독으로 변신

이주영 감독은 대학에서 애니메이션을 전공했다. 성격이 급한 편인데 애니메이션 한 장면을 만들기 위해 ‘매일매일 쉬지 않고 노력하는 게’ 너무 싫었다고 한다. 존경했던 박명천 감독의 광고를 보고 진로를 바꿔 광고 프로덕션에 들어갔다. 조연출에서 시작해 감독으로 활동한 건 2007년부터다. 이 감독은 삼성 갤럭시노트2와 쌍용자동차 티볼리 광고 등을 촬영했다.

“광고는 좋아했지만, 직장 생활이란 게 다 똑같아요. 조연출 때는 한 달에 한두 번 집에 들어갈 정도로 바빴죠. 그 와중에 부당한 이유로 퇴사를 강요받았어요. 당시 사장님이 남아프리카 출장 중이었는데 복수심에 충동적으로 비행기에 올랐죠. 가는 동안 마음이 가라앉으면서 굉장히 후회했어요.”

이 감독은 회사를 원치 않게 관둬 상실감이 컸다고 한다. 시나리오는 사실상 그때의 경험이 바탕이 됐다. 2009년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영화과 전문사 과정에 입학했다. 그는 ‘조직 안에 있을 때와 없을 때 생각의 가시거리가 달랐다’고 회상했다.

“광고는 제품 안에 답이 있고 기업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파악해서 콘티를 짜면 되지만 영화에 담긴 사람 이야기는 정답이 없고 바라보는 시선이 다양하므로 과정 자체가 새롭고 재밌었어요.”

이주영 감독은 영상원에서 공부하며 3편의 단편, 1편의 장편 시나리오를 썼다. 2012년에는 미장센 단편영화제에서 작품을 발표했다.

“시나리오를 완성하고 1년간 버려뒀던 〈싱글라이더〉가 지인을 통해 이병헌씨에게 전달됐어요. 긴가민가했는데 실제로 미국에서 촬영 중인 이병헌씨가 날 만나러 왔죠. 얼떨떨했어요.”

그는 “대사가 짧고 간결해서 좋다는 평가를 받았다”며 “배우들의 칭찬 때문에 과대평가 된 부분도 분명히 있다”고 자신을 낮췄다. 배우 이병헌과의 작업은 어땠는지 물었다.

“개봉 전날까지 잔소리를 들었어요. 맨날 혼났죠(웃음). 영화를 찍기 전보다 그 후가 더 좋은 배우예요. 인간적인 면도 좋고 큰 신세를 졌어요. 사실 이병헌씨가 아니었으면 만들기 어려웠을 거예요.”

관객들은 영화 상영 내내 기러기 아빠인 이병헌의 동선을 따라가면서 같이 아프고 쓸쓸함을 느꼈다.

“어쨌든 우리는 유효한 삶을 사는데 영화의 주인공처럼 뒤늦게 후회하는 일을 만들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살면서 후회나 실수를 안 할 순 없죠. 그 횟수를 줄여나가는 게 제 인생의 미션이기도 해요.”

신인 감독의 첫 작품은 앞으로의 활동에 큰 영향을 준다. 감독의 성향과 감성, 가능성까지 ‘첫 작품’에서 예측되는 부분이 많다. 그는 “이제 다시 해야겠죠? 뭔가 하고 싶은 이미지는 있는데, 어떻게 풀어갈지는 전혀 모르겠어요”라며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이주영 감독을 만난 날은 공교롭게도 〈싱글라이더〉가 주문형 비디오(VOD)로 풀린 날이었다. 영화 상영이 거의 막바지로 갔다는 말이다. 흥행을 기대했으나 누적 관객 수는 35만 명에 그쳤다.

“한국 사람들은 실패를 두려워해요. 작은 실패도 두려워하죠. 〈싱글라이더〉의 흥행 성적이 좋지 않아요. 주변에서는 기죽지 말라며 응원하지만 사실 굉장한 실패죠. 진지하게 여러 번 생각했어요. 영화인 대부분은 관객 수를 보고 ‘저런 걸 하면 안 돼’라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뭔가의 선례가 되니까. 걱정도 되지만 그런 사람들을 보며 기분이 좋아졌어요. ‘너희는 망할까 봐 무서워서 못 하는 거 우리는 했어’ 하는…. 다만 흥행이 부진하다는 이유로 이런 종류의 영화를 만드는 이들에게 제작 기회가 안 생길까 봐 그건 마음이 아파요.”

인생에 정답은 없다. ‘싱글라이더’처럼 이주영 감독은 묵묵히 자신의 길을 걸어갈 뿐이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7/04/07/2017040700676.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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