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와여, 내가 언제까지 부르짖어야 주께서 들어주시지 않으십니까? … 어찌하여 주께서 내게 불의를 보게 하십니까?” (하박국 1:2,3).
“왜요?”
오랜 세월 동안 우리 입에서 나오는 이 질문은 혼란을 표현하는 말입니다.
선지자 하박국은 큰 소리로 이 질문을 외쳤고, 욥은 시련 중에 이 질문을 16번이나 했습니다.
갑작스러운 역경의 충격은 우리 마음속에 질문의 문을 열어놓습니다.
우리는 이해할 수 없는 일을 이해하려고 “왜”라고 묻습니다.
그 질문들이 들리십니까?
남편과 아내, 아버지와 어머니의 마음속에서 울려 퍼지는 그 소리를 들으십니까?
“왜 우리 아들이 지적 장애를 가지고 태어났을까요?”
“왜 우리 아이가 병원에서 죽어야 했을까요? 수술은 아주 간단한 거였는데요.”
“왜 내 배우자가 이렇게 젊은 나이에 죽어야 했을까요?”
“왜 우리 집이 토네이도에 맞아야 했을까요?”당신의 삶에서 어떤 “왜”라는 질문들이 있나요?
당신의 배우자는 어떤 “왜”라는 질문으로 힘들어하고 있을까요?
모든 “왜”라는 질문에 즉시 답을 받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어쩌면 이 생에서 답을 얻지 못할 질문들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런 질문들을 반복해서 묻는 것은 전혀 잘못된 일이 아닙니다.
답을 얻지 못하는 것도 괜찮습니다.
왜냐하면 어차피 당신을 만족시킬 논리적인 답이 없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입니다.
설령 하나님이 지금 당장 답을 주신다고 해도, 당신이 그것을 받아들일 수 있을까요?
아마도 그렇지 않을 것입니다.
답 없이 기다리는 것은 믿음으로 살아가는 법을 배우는 기회가 됩니다.
아픔을 완전히 덜어주지는 못할지라도, 그 투쟁 속에서 어떤 유익을 발견하게 해줍니다.
우리 누구도 모든 답을 알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은 항상 자신을 설명하지 않으십니다. 그것도 괜찮습니다.
바울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부요함이란 그 깊이가 한이 없습니다. 그분의 판단은 헤아릴 수 없으며 그분의 길은 추적할 수가 없습니다!” (로마서 11:33).
결국 당신은 하나님께 “왜”라고 묻지 않아도 되는 곳에 이르게 될 것입니다.
하박국도 그렇게 했습니다.
하박국 3:17-19에 나오는 그의 “왜” 질문에 대한 응답을 읽어보십시오.
그것이 당신에게 도움이 될 것입니다.
비록 무화과나무에 꽃이 피지 않고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고 밭에 식물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고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로 인해 기뻐하리니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인해 즐거워하리라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라 그가 나의 발을 사슴 발 같게 하시며 나로 높은 곳을 다니게 하시리로다 (셀라)
(하박국 3:17-19, 개역개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