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쁜 가게 일을 마무리한 오늘, 몸은 고단했지만 마음 한 구석은 따뜻한 감사로 채워진 하루였다.
새로 찾아와 주신 분들도 반가웠지만, 오랜만에 잊지 않고 먼 길을 다시 와 준 단골손님들의 얼굴이 유독 고마웠다.
잊히지 않고 기억된다는 것, 그리고 누군가의 발걸음이 다시 우리 가게로 향한다는 것은 참 감사한 일이다.

일을 마치고 지친 아내를 태워 침 맞으러 가는 길. 차 안에서의 대화 중에 흘러나온 한 어려운 영어 단어가 우리 두 사람의 웃음보를 터뜨렸다. 원어민처럼 매끄럽게 되지 않는 혀를 굴려 가며, 몇 번이고 엉터리 발음을 서로 따라 하다가 결국 참지 못하고 배를 잡고 한참을 웃었다.

"나 오랜만에 이렇게 크게 웃어본다."
환하게 웃는 아내의 얼굴을 보면서 오랫만에 편안했다.

미국 이민자로 수십 년을 이 땅에서 살아냈어도, 여전히 어려운 영어 단어는 장벽처럼 높고 단단하다.
아무리 잘하려고 애를 써도 영어는 우리에게 영원히 모국어가 아닌 '제2외국어'일 뿐이니까.

가끔 한국에 들어가도 이제는 그곳에서조차 낯선 이방인이 되어버린 우리를 발견하곤 한다.
이민자라는 삶이 가진 어쩔 수 없는 한계와 쓸쓸함이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이곳에서 영어를 자유롭고 유창하게 구사하는 사람들을 볼 때면 여전히 부러운 마음이 든다.
하지만 나는 우리가 걸어온 이 투박하고 치열했던 삶을 깊이 사랑한다.
영어가 조금 부족하면 어떻고, 이곳의 문화가 여전히 완벽히 몸에 맞지 않으면 또 어떠랴.

그 거친 세월 속에서도 중심을 잃지 않고 늘 성실하고 열심히 살아온 아내에게 마음 깊은 격려의 박수를 보낸다.
우리는 양쪽 모두에서 이방인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고국을 방문하고 다시 미국의 공항에 내렸을 때, 입국심사관이 건네는 "Welcome Home!"이라는 무심하고도 다정한 그 한마디에 나는 비로소 깨닫는다.
아웅다웅 살며 눈물과 웃음을 묻어둔 바로 이곳이, 이제는 우리의 진짜 '홈'이 되었다는 것을.

어쩌면 이 세상을 살아가는 인간의 운명 자체가 아내의 말대로 하나의 긴 여행을 떠난 '나그네'의 삶일지도 모르겠다.
아내는 언젠가 돌아갈 하나님 나라가 더 좋다고 고백하지만, 미련 많은 나는 아직 이 세상의 삶이 조금 더 좋다.
내가 아직 '세상 사람'이라 그렇다는 아내의 말도 다정하게 들리는 밤이다.

비록 완벽하지 않은 언어로 이방인의 삶을 살고 있을지라도, 오늘처럼 서로를 마주 보며 크게 웃을 수 있는 동반자가 있고, 돌아갈 홈(Home)이 있으니 이 얼마나 감사한 인생인가.
내일도 영어가 조금 서툰 이방인으로 살아가겠지만, 우리에겐 또 함께 웃을 내일이 있기에 충분히 행복하다.

만일 땅에 있는 우리의 장막 집이 무너지면 하나님께서 지으신 집 곧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니요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이 우리에게 있는 줄 아느니라 - 고린도후서 5장 1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