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니 (창세기 39:2)
최근에 요셉 이야기를 다시 읽어보셨나요 (창세기 37장, 39~50장)?
요셉의 삶은 오늘날 우리에게도 그대로 적용됩니다.
요셉도 과연 “하나님이 내 인생에 도대체 뭘 하시려는 걸까?” 하고 고민해 보았을까요?
우리도 가끔 그렇죠. 이 주제에 대해 리처드 엑슬리(Richard Exley)가 남긴 말이 깊이 생각하게 합니다.
우리도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신다는 확신만 있다면 어떤 고난도 견디고, 어떤 어려움도 이겨낼 수 있습니다.
우리가 견딜 수 없는 유일한 것은, 인생의 온갖 풍파를 홀로 마주해야 한다는 생각뿐입니다.
그런데 바로 이 지점에서 많은 이들이 낙심합니다.
언제부턴가 우리는 “신실하고 순종하는 삶을 살면 이 타락한 세상의 고통과 슬픔에서 면제받을 것”이라는 잘못된 생각을 품게 되었습니다.
그런 생각은 기독교적이지도, 성경적이지도 않으며, 우리를 참으로 엄청난 실망 속에 빠뜨릴 뿐입니다.
모든 고난을 하나님의 부재, 혹은 적어도 하나님의 불쾌하심으로 해석할 때, 우리는 말로 다 할 수 없는 유혹에 노출됩니다.
바로 하나님의 사랑과 신실하심을 가장 절실히 확신해야 할 순간에, 우리의 신학은 우리에게 고통스러운 질문들만 남겨놓을 뿐입니다…
고난과 실망의 때에 흔히 하는 실수는 “하나님이 이 모든 고통 속에서 어떤 선한 일을 이루시려는 걸까?” 하고 그 방법을 알아내려고 애쓰는 것입니다.
그것은 대체로 실수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길은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그 어떤 것보다 훨씬 높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그런 상황에서 하나님의 궁극적인 목적을 알아내려고 하면 터무니없는 결론에 이르거나 완전한 절망에 빠지기 십상입니다.
예를 들어, 하나님께서 요셉의 삶 속에서 일하신 방식은 오직 뒤돌아볼 때에야 비로소 분명해졌습니다.
누가 감히 노예 생활, 누명, 감옥살이를 하나님의 장대한 계획 속에 엮어 가실 것이라고 상상이나 했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