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축을 몰고 있는 유목민 꼬마.
중앙아시아의 스위스로 불리는 산악 국가 키르기스스탄은 남북한을 합친 것보다 조금 작은 나라다. 텐산(天山)산맥에 둘러싸여 있어 겉만 보기에는 샹그릴라라 불러도 좋을 만큼 아름다운 곳이다. 이토록 눈부시도록 아름다운 자연 환경에서 초원과 더불어 살아온 유목민들은 실크로드의 텐산북로가 열리자 오가는 대상들에게 휴식과 양식을 제공하면서 문물을 교환하는 가운데 오아시스의 꿈을 키워왔다.
1 텐산산맥이 보이는 풍경.
2 독수리 사냥꾼.
3 초원의 아침 풍경.
이시쿨 호수(Lake Issyk-Koel)는 텐산산맥 4000m 높이의 설산으로 둘러싸인 세계에서 두 번째 크기의 바다와 같은 고산 호수다. 길이 170km, 폭 70km의 큰 호수로, 면적은 제주도의 거의 네 배에 가깝고 깊은 곳은 668m에 이른다. 이시쿨은 ‘뜨거운 호수(hot lake)’라는 뜻으로 사계절 얼지 않아 호수 주변은 옛 소련 시절부터 유명한 온천 휴양지다. 호수에서 수영과 각종 수상레저를 즐길 수 있다.
1 말을 타고 이시쿨로 뛰어든 유목민 목동.
2 기원전에 그려진 암각화.
눈 덮인 산으로 이어지는 주변 계곡에는 선사시대의 암각화 유적지가 집중적으로 몰려있어 노천박물관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중앙아시아 최고로 손꼽히는 도보와 승마를 할 수 있는 트레킹 코스들이 즐비하다.
이시쿨의 원초적 풍경
가까이 다가서서 수정처럼 맑은 물에 발을 담그고 만년설을 병풍처럼 둘러치고 있는 모습을 감상하는 것도 좋다. 유람선을 타고 호수 한가운데로 들어가서 맑은 공기를 마시면서 선상에서 ‘사슬릭’이라는 꼬치를 구워먹는 맛도 일품이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이 이시쿨의 진면목을 다 알 수는 없다. 주변에 흩어져 있는 마을들과 호반에 어울리는 초원의 풍경 속으로 들어가 그들의 때 묻지 않은 삶을 들여다보는 것이 좋다. 도보여행이 제격이겠지만 워낙 큰 호수이다 보니 너무도 많은 시간이 걸린다.
우리나라의 운주사 석상들과 흡사한 호반의 망주석.
어쩔 수 없이 차를 타고 차창으로 스치는 풍경을 끌어안는다. 한참을 가도 인적을 느낄 수 없는 곳이 허다하다. 또 어떠한 오염원도 찾을 수 없다. 개발이 안 되어서 그렇다고 말한다면 이곳 사람들이나 이시쿨 호수의 자존심을 건드리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 옛날 실크로드를 오가던 대상들이나 구법승들이 이곳을 지나면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 하는 생각에 젖어본다.
만년설이 병풍처럼 둘러쳐진 이시쿨.
갑자기 가축을 몰고 나타난 유목민들이 있다. 이들 중에는 나귀를 타고 있는 예닐곱 살 정도의 여자아이도 있다. 물을 먹이기 위해 가축들을 호수 쪽으로 몰아넣고 있다. 오빠인 듯한 두 명의 사내들이 말을 탄 채 호수 속으로 뛰어든다. 불볕더위를 식히기에는 최고다. 저 멀리 있는 만년설의 배경과 잘 어울리는 풍경이다.
1 호반의 공동묘지.
2 사슬릭 꼬치구이.
3 아침 햇살을 받으며 가축을 몰고 나가고 있는 유목민.
그림 같은 백사장과 가지각색의 들꽃들이 유혹하지만 사실 불볕을 피해 쉬어가기 적합한 곳은 많지 않다. 이럴 때 비치파라솔이 떠오르지만 이곳에서 생각 없이 사용한다면 자연 앞에 죄악이 되고 말 것이다. 어쩌면 이곳에서 수영을 한다 해도 수영복을 입는 그 자체도 고려해 봐야 할 것이다. 이곳의 자연은 우리에게 모든 것을 드러내고 있는데 무엇을 가리고 숨기고 해야 하겠는가.
머리 위로 독수리가 날고 있다. 사냥을 나온 것일까. 유목민들이 가축들을 추스르고 있다. 찰랑거리는 호수에 발을 담그며 어린 꼬마에게 눈짓으로 인사를 나눈다. 한마디 말이 오가지 않아도 우리는 벌써 친구가 되어가고 있는 가운데 이시쿨은 오늘도 주저리주저리 전설을 만들어 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