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 난이도 5.10c, 상급자용 코스
쓰리랑 리지의 클라이맥스인 티롤리안 브리지. 오른쪽 봉우리는 쓰리랑 리지의 크럭스인 6봉이다.
“이걸 ‘첫바위’라고 불러요.”
쓰리랑 리지의 초입. 반반한 직벽이 위압적으로 취재팀의 앞을 가로막았다. 오행선(울산한백산악회)씨는 이에 아랑곳 않고 벽을 가리켰다. 동행한 이명섭(58세), 정윤선(46세), 어영미(46세)씨 역시 쓰리랑 리지의 첫 피치가 주는 위압감 따위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했다. ‘첫바위’에는 ‘릿지길’, ‘대장길’, ‘까치길’, ‘미운톱’, ‘미녀와 야수’라 불리는 5개의 암벽코스가 나 있다. 난이도는 5.8~5.11c급. 1989년 경주 만도산악회에서 개척했다. 첫바위라는 이름은 이들이 처음으로 개척했다는 의미로 붙인 것. 이 중 공식적인 쓰리랑 리지 길은 5.8급의 ‘릿지길’로 직벽의 맨 왼쪽, 디에드르 코스에서 시작한다. 5개의 바윗길 중 어느 루트를 올라도 쓰리랑 리지로 통했지만 유난히 눈에 띄는 길은 가장 쉬워 보이는 디에드르 코스(릿지길)였다. 멀리 박격포 사격장에서 들리는 “꽝꽝!” 소리에 지레 겁을 먹은 후부터 시선은 디에드르 쪽을 떠나지 못했다. ‘릿지길’로 오르길 잘했다. 곳곳에 좋은 홀드가 산재해 있을 뿐 아니라 아래서 본 것과는 달리 스탠스도 확실해 무리없이 오를 수 있었다. 박격포 소리에 놀랄 때면 크랙 사이에 몸을 끼워 넣고 숨을 수도 있었다.
1. 쓰리랑 리지 첫피치. '첫바위'라고도 불리는 이곳에는 5개의 등반루트가 더 있다. 선등자가 오르는 곳은 '릿지길(5.8)'.
2. 4봉 오버행 침니 구간에 진입하기 직전의 오행선씨. 그녀는 울산에서 이름난 클라이머다.
아리랑•쓰리랑은 영남 산꾼들의 겔렌데
전국규모의 등반대회 장년부에서 입상경력이 여럿 있는 오행선씨는 그 이름값을 하려는 듯 미운톱(5.11a)으로 1피치를 올랐다. 모서리를 잡고 균형을 잡는 폼이 ‘고수’임을 여실히 증명했다. 깔끔하게 코스를 마친 그녀는 어려운 수학 문제를 간단히 풀어낸 우등생처럼 의기양양했다. 1피치를 끝내자 이제 막 초록으로 물들기 시작한 숲지대가 펼쳐졌다. 햇살이 따가워지기 시작했던 터라 바위를 타고 막 올라온 우리에게 ‘초록그늘’에서 맞는 바람은 그야말로 청량한 음료수와 같았다. 종료지점에는 쓰리랑 리지 개척에 관한 안내판이 있었다. 그 설명에 따르면 경주만도산악회가 쓰리랑 리지를 처음 개척한 것은 1989년. 산악회 창립고문인 정학용(대구팔공산악회)씨가 아리랑 리지 등반 중 왼쪽에 보기 좋은 암릉을 발견했고 루트를 개척하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때는 산악회 창립 초기였던 지라 등반력이 뛰어난 회원이 적었다. 아울러 기술적인 문제까지 겹쳐 개척 중 3봉에서 돌아서고 말았다. 이때 첫바위에 낸 길이 까치길(5.10a), 대장길(5.10b) 이었다. 7년 후 다시 개척 작업에 불을 지핀 이는 초기에 막내로 참여했던 차재욱씨였다. 그동안 등산학교와 각종 암벽에서 익힌 경험으로, 차씨는 1996년 첫바위에 루트 3개를 추가했다. 그 여세를 몰아 리지코스까지 길을 내기에 이르렀으며 가장 어려웠던 6봉만을 남겨둔 채 매킨리 원정에 몰두하느라 작업은 또다시 지연됐다. 하지만 이때부터 만도산악회 연합 훈련부(경북경주, 충북청원, 강원도문막 3개지역 연합) 개척등반대가 조직되어 쓰리랑 리지에 대한 보수가 본격적으로 이뤄졌다. 결국 차재욱씨는 1998년, 6봉을 인공등반으로 마무리했으며 이듬해에 전 구간에 걸친 정비작업을 끝낼 수 있었다.
1. 크럭시인 6봉을 오르는 오행선씨. 칸테를 붙잡고 오르는 것이 편하다. 볼트에 슬링이 달려 있어 인공등반으로도 가능하다.
2. 7봉을 등반중인 이명섭씨. 티롤리안 브리지 연결을 위해 먼저 7봉을 올랐다.
“당시 이름이 만도 리지였어요. 그런데 당시 많은 이들이 이 암릉을 아리랑 리지 옆에 있다고 해서 쓰리랑으로 부르고 있었죠.” 개척도 되기 전에 이름이 붙어 있었다는 말. 경주 만도산악회가 새로이 길을 낸 후 신불산은 영남 산꾼들의 발길로 주말마다 미어터졌단다. 숲을 벗어나자 조망이 터졌다. 그러자 오른쪽에 북쪽으로 나란히 이어진 아리랑 리지가 눈에 띄었다. 계단식으로 이어진 암벽이 맨 몸뚱이를 그대로 드러내놓고 햇빛을 받아 반짝이고 있었다. 그 뒤로 푸른 빛깔의 가천저수지가 상큼한 봄기운을 더했다. 2봉은 10미터 정도의 페이스. 1봉과 마찬가지로 눈에 띄는 홀드가 별로 없어 꽤 부담스러웠다. 그러나 막상 벽에 가까이 가니 여기저기 잡을 것이 산재해 있었다. 별로 어렵지 않겠거니 하며 자신 있게 붙었으나 얼마 오르지 못하고 벽에서 떨어지고 말았다. 벽의 각도를 계산하지 않았던 것. 경사는 75도쯤 됐으나 체감 각도는 거의 수직이었다. “왼쪽의 칸테를 잡고 가요!” 오행선씨의 조언대로 벽의 가운데로 오르다가 왼쪽의 모서리를 잡으니 한결 쉬웠다. 엉거주춤 레이백 자세를 취한 뒤 몇 동작을 반복하자 테라스였다. 그러나 또다시 이어진 페이스, 가운데 쪽은 센 각도와 작은 홀드로 인해 오를 엄두를 내지 못했다. 역시 왼쪽으로 이동해서 모서리를 잡고 올랐다. 2봉을 지나자 암릉은 강약중강약 박자를 타듯 제법 평이하게 이어졌다.
1. 4봉 오버행 반침니에 진입한 정윤선씨. 그녀 또한 뛰어난 등반실력으로 쓰리랑 리지 전 구간을 리드했다.
2. 3봉 전경. 쓰리랑 리지는 1봉과 6,7봉을 제외하고 난이도가 약하다.
3. 6봉을 등반중인 어영미씨. 등반에 참여한 세명의 여성 대원들은 모두 쟁쟁한 실력을 갖췄다.
6봉은 크럭스, 7봉은 클라이맥스
“쓰리랑 리지는 아리랑 리지와 함께 영남 산악인들의 훈련장으로 많이 쓰이지요. 난이도도 그렇게 어렵지 않을 뿐더러 각종 등반에서 쓰는 기술들을 고루 경험할 수 있거든요. 우리 산악회에서는 매년 등산학교를 여는데, 졸업등반지로 꼭 여길 옵니다.” 울산한백산악회는 자체 암장을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정윤선씨는 이곳에서 2007년부터 운동했다. 덕분에 그녀는 영남권 여러 바위코스를 선등할 정도의 실력을 갖췄다. 쓰리랑 리지 등반도 수차례 했던 지라 바위 봉우리를 능숙하게 타고 넘었다. 암릉을 20미터쯤 오르니 3봉 페이스가 나왔다. 군데군데 커다란 크랙이 눈에 띄어 쉬워 보였다. 예상대로 3봉은 큼지막한 홀드가 곳곳에 포진하고 있어 무리 없이 올라설 수 있었다. 너무 쉽게 끝나버린 탓에 ‘쩝쩝’ 입맛을 다시고 있던 차, 봉우리 정상에서 능선 쪽으로 고개를 돌리니 4봉과 6봉이 삐죽이 모습을 드러냈다. 거무죽죽한 벽면에 갈라진 크랙과 바위 턱들이 등반욕구를 자극했다. 얼른 다음 봉우리로 이동하기 위해 재빨리 줄을 내려 15미터 하강을 했다. 수직으로 선 4봉 앞에 서자 조금 전의 의욕이 살짝 수그러들었다. 처음의 크랙이 생각보다 좁아 손가락을 끼우고서도 제대로 힘을 줄 수가 없었다. 오른쪽 벽을 이용해 스태밍으로 겨우 크랙구간을 끝내니 다음은 오버행 반침니. “과감하게 밖으로 나오라”는 아래쪽 사람들의 훈수를 들었음에도 고도감 때문에 몸이 쉽게 말을 듣지 않았다. 수차례 몸을 비비적댄 끝에 겨우 정상에서 숨을 돌릴 수 있었다. 급기야 남은 일행이 올라오기 전 뒤쪽의 널찍한 테라스에서 뻗고야 말았다. “여기가 비박지인 건 어떻게 알았수? 우리는 여기서 가끔 비박을 한답니다. 여기서 보이는 울산시가지 야경이 정말 끝내 준다니까요.”
1. 티롤리안 브리지로 6봉에서 7봉으로 건너온 이명섭씨. 보기와는 다르게 그는 암벽등반 초심자다.
2. 6봉의 크럭스 부분을 등반 중인 정윤선씨. 칸테를 잡고 균형을 유지하는 것이 관건이다.
베테랑 주부 클라이머인 어영미씨가 널찍한 비박지를 가리키며 입에 침이 마르도록 자랑을 늘어놓았다. 그 말에 벌떡 일어나 주변의 시원스런 조망을 보니 쪽 빠졌던 힘이 다시 충전되는 느낌이었다. 5봉은 쉬웠다. 경사가 약했을 뿐 아니라 암릉이 계단식으로 나 있어 일행 모두 5봉은 안자일렌으로 통과했다. 6봉이 쓰리랑 리지의 하이라트라는 것을 알리듯 5봉 정상에 서자 뒤쪽으로 영축산(1059m)의 장엄한 산자락이 펼쳐졌다. 그리고 앞으로는 반질반질한 암봉이 버티고 있었다. “여기가 쓰리랑 리지의 크럭스입니다.” 뭘 잡고 올라가야 하나 살펴보니, 다행스럽게도 볼트에 긴 슬링이 달려 있었다. 아차 싶으면 슬링을 잡을 기세로 자신 있게 벽에 붙었다. 그러나 역시 크럭스답게 6봉은 몇 동작 허락하지 않았다. 추락 직전 겨우 첫 볼트의 슬링을 붙잡고 사정없이 매달렸다. 이후 고도감 때문에 선뜻 자유등반으로 피치를 마무리 할 수 없었다. 아래 일행들에게는 “시간이 없다”는 핑계를 대며 볼트 따기로 어려운 구간을 지났다. 세 번째 볼트에 이르자 만만한 바위 턱, 여기서 잠시 쉰 다음 벽의 중앙에서 크랙으로 진입해 겨우 정상에 올라섰다. 나와 달리 오행선씨는 능숙하게 칸테를 잡고 올랐다. 내 눈앞에서는 보이지도 않던 홀드를 잘도 집으며 차근차근 벽을 탔다. 스파이더맨 마냥 손을 대는 곳 마다 단단하게 벽에서 붙어 떨어질 줄 몰랐다. 일행 모두가 6봉에 올라선 시각이 오후 4시. 이명섭씨와 정윤선씨가 클라이맥스인 티롤리안 브리지를 해야 한다면서 먼저 내려가더니 얼마 후 7봉 정상에서 ‘짠’하고 모습을 드러냈다. 이윽고 ‘다리’가 놓였으며 우리는 황홀하게 쓰리랑 리지의 마지막을 장식했다.
6봉 정상에 선 취재팀. 왼쪽위부터 시계방향으로 정윤선, 어영미, 이명섭, 오행선씨.
신불산 쓰리랑 리지
아리랑 리지가 연속된 암릉인데 비해, 쓰리랑 리지는 봉우리가 확연히 구분되는 단절된 암릉이다. 아리랑이 부드러운 맛이라면 쓰리랑은 매 피치마다 쓴맛을 한 번씩 봐야한다. 쓰리랑 리지가 아리랑 리지에 비해 어렵다는 뜻. 상급자 코스에 속하므로 초급자인 경우 전문가와 함께 등반하는 것이 좋다. 쓰리랑 리지는 아리랑 리지와 나란히 이어지므로 두 팀으로 나눠 동시에 등반하는 것도 등반에 재미를 줄 수 있다. 둘 사이의 직선거리가 50미터 정도 되므로 등반 도중 의사소통도 가능하다. 등반이 끝난 뒤 시간 여유가 있다면 신불산 주능선에 올라 신불평원의 억새밭을 걸어보는 것도 좋다. 영남알프스의 잔잔한 능선길은 암벽등반에서 느꼈던 긴장감을 풀어주기에 충분하며 감동까지 얻을 수 있다. -접근
가천리 방면 가천리에서 신불사를 경유해 취서산 오른쪽 계곡으로 올라가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군부대 사격장이 확장되며 등산로가 애매해졌다. 가천 성원목장과 불승사 쪽으로 가는 것이 좋다. 불승사를 바라보면서 왼쪽의 가파른 능선을 따라 30분 정도 오르면 이윽고 길이 완만해 진다. 5부 능선에서 왼쪽으로 산하리를 가로지르는 길을 따라 25분쯤 가면 너덜지대가 나온다. 그대로 직진하면 아리랑, 쓰리랑 리지 출발점에 닿는다. 신불대피소 방면 대피소에서 주능선에 올라 취서산 쪽으로 완만한 봉우리를 넘어가면 신불산, 취서산 중간 지점쯤 능선 왼쪽에 바위가 나타난다. 이 바위 왼쪽으로 능선을 따라 내려가는 길이 있는데 계속 내려가면 불승사에서 올라오는 길과 만난다. 여기서 오른쪽 산 허릿길을 따라 5분정도 가면 리지 출발점인 너덜지대가 나온다.
장비
퀵드로 10개 이상, 60미터 줄 2동(3인 1조 기준), 캠 1조, 비상용 슬링 다수. 시간
중급자 3인 기준 등반에만 4시간쯤 걸린다.
쓰리랑 리지 루트개념도
※주의사항
쓰리랑 리지는 편마암 계통의 떨어져 나가는 바위들이 많다. 또한 바위결이 거칠고 모서리가 날카로워 로프의 손상에도 신경 써야 한다. 각 피치 종료지점에서 탈출할 수 있으며 등반 종료 후 5분 정도 주능선으로 오르면 억새평원 능선에 닿는다. 신불산 대피소로 하산하거나 불승사로 바로 내려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