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홍 목사의 교육칼럼] 한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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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버클리대학 졸업 웨스트민스터 신학대학원 졸업 풀러 신학대학원 졸업 두란노 바이블칼리지 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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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성경에 보면, 오랫동안 아이를 갖지 못하다가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여 사무엘이라는
아들을 얻은 어머니 한나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한나는 사무엘을 낳기 전 아이를 주시면 그
아이의 평생을 하나님께 드리겠다는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리고, 아이가 태어나서 젖을 떼고
어느 정도 철이 든 어린 아이가 되니까, 자신이 한 약속을 잊지 않고 “아이의 평생을 하나님께
드립니다 (His whole life will be given to you)"란 기도를 다시 한 번 되풀이 합니다.
아직 어린 아이인데, 이 아이가 살아갈 전 인생, 모든 미래를 하나님의 손에 맡겨 버린 것입니다. 저는 종종 교인분 들 중에 아기를 임신했거나, 갓 태어난 아기의 백일, 돌 예배 때 기도해 달라는 부탁을 받습니다. 그럴 때면, 내가 우리 아이들을 매일 밤 재울 때 머리맡에서 하는 축복기도와
똑같은 기도를 해 줍니다. ”하나님, 이 아이의 육체가 건강하고, 정신이 건강하고, 영혼이 건강한 아이로 자랄 수 있게 해 주십시오. 그리고, 이 아이가 커 가면서 좋은 친구, 좋은 선생님,
좋은 영적 지도자, 좋은 배우자 만날 수 있게 해 주십시오. 남을 이용해서 자신만 성공하는
아이가 아닌, 자신이 가진 것을 바쳐서 다른 이들을 많이 성공시켜 줄 수 있는 아이가 되도록
해 주십시오. 이 아이가 평생 자기 다음 세대 사람들에게 좋은 영향력을 끼치고 하나님 품에
안길 수 있게 해 주십시오.“
그러면, 옆에 있던 분들이 기도가 끝나고 난 후 이렇게들 말합니다. ”어쩌면 목사님, 이 갓난
애기 전 인생을 원 샷 기도로 다 커버해 주시네요!“ 그렇습니다. 바로 한나가 아들 사무엘을
위해 드린 기도는 그의 평생을 다 커버하는 원대한 비전의 기도였습니다.
아이의 평생, 그 어린 것의 전 인생(人生)을 하나님 손에 맡겨 드리는 기도는 어떤 기도일까요?
그것은 첫째로, 부모가 한 발 물러서서 하나님의 손이 자유롭게 아이를 빚어가시도록
지켜보는 자세를 말합니다. 대부분의 부모들의 문제는 아이들을 위해서 뭘 해 주지 않는데
있는 게 아니라, 너무 많은 것을 해 주려 하는데 있습니다. 특히, 우리 한국의 부모들은 자녀에
대한 애착이 너무 많아서 요람에서 무덤까지 일일이 다 챙겨 주려고 하다가 오히려 아이들
인생을 망치는 경우가 많습니다. 아이의 평생을 하나님께 맡기지 않고, 오히려 부모가 하나님
역할을 해 주려고 하는 경우가 빈번한 것이죠 그러나, 누에가 껍질을 벗고 나오려고 발버둥 치는 것이 안쓰러워서 껍질을 가위로 끊어 주게 되면, 누에는 날개를 달고 나와서도 비틀비틀 거리며 날지 못하는 병신 나비가 되어 버리고 맙니다. 오늘날, 얼마나 많은 부모들이 아이들이
정상적으로 당연히 넘어가야 할 인생의 역경과 장애물들을 돈이라는 가위, 빽이라는 가위로
끊어 주고 있습니까? 그것이 오히려 그들이 날개를 펴고 비상치 못하게 한 것은 아닌가 하고
곰곰히 생각해 볼 일입니다.
글을 쓰는 사람들은 여백(餘白)의 중요성을 잘 알고 있습니다. 여백이란, 단어와 단어,
줄과 줄 사이, 위의 글과 아래 글 사이, 그리고 장과 장 사이의 빈 공간(space)을 의미합니다.
즉 숨을 돌리고, 읽는 독자의 눈이 쉴 휴식처 말입니다. 아무리 글의 내용이 좋아도 빈 여백 하나 없이 빽빽이 붙어 있으면, 한 페이지도 읽지 못하고 기가 질려 내려놓고 말 것입니다. 물론 책을 읽을 때 여백을 의식하며 읽는 사람은 없지만, 그것이 없으면 금방 표시가 납니다. 책에 여백이
필요하듯이,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아이들에게도 여백이 필요합니다. 즉, 스스로 자랄 공간,
인간 부모의 손이 멈춰지고, 하나님의 손이 부드럽게 아이들을 빚어 갈 시간적, 육체적, 정신적
여유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고대 중국의 철학자 노자(老子)는 말하기를, “항아리를 쓸모있게
하는 것은 도공(陶工)이 빚는 흙이 아니라 항아리 안의 빈 공간”이라고 했습니다. 물론
아이들에겐 자극과 지도도 필요하지만, 자기만의 시간도 있어야 합니다. 혼자 이런저런 공상의
날개를 맘껏 펼치고, 어른들이 간섭하지 않는 활동을 자유롭게 할 수 있도록 아이의 운신(運身)의 폭을 넓혀줘야 하는 것입니다.
곡식이 제대로 자라길 원한다고 해서, 농부가 노상 그 옆에 붙어 있기만 해서 되는 것이 아닙니다. 물 주고, 거름 주고 그 후, 농부는 가서 자고, 하나님의 손으로, 하나님의 타이밍에 그 곡식은
열매를 맺게 되는 것입니다. 식물학자들의 말에 의하면 채소와 나무 같은 식물들의 성장은
대부분 밤에 이뤄진다고 합니다. 물론, 낮에 햇볕을 받아 광합성 작용 같은 것을 하긴 하지만,
실제로 세포들이 증식되고, 뿌리가 깊어지고, 줄기가 길어지고, 과실이 영그는 일들이 대부분
밤에 이뤄진다는 것입니다. 아이들이 키가 크는 것도 대게 아이들이 곤히 잘 때 큰다고 합니다.
그래서, 한참 성장기의 아이들은 잘 먹는 것도 중요하지만 충분한 숙면을 취해 줘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기가 막힌 자연의 원리는 지나치게 조기 교육, 영재 교육 하면서 아이들을 볶아대는 오늘날 우리 부모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할 수 있습니다..
19세기 독일 목사 요란 불룸하르트는 아이들을 잠시도 내버려두지 못하고 일일이 간섭해야
직성이 풀리는 어른들의 태도를 이렇게 경계했습니다. “나는 하나님의 천사들이 아이들 곁에
둘러서 있다는 느낌을 종종 받는다. 따라서 누구든지 주제넘게 아이들 일에 너무 진드기처럼
끼어드는 어른이 있다면 그것은 이 천사들을 노엽게 하는 일이다.” 물론 아이들에게 어느 정도
올바른 성경 지식과 도덕적 가치관을 심어주고, 바른 태도를 가르치는 일은 필요합니다.
하지만, 그들에게 너무나 많은 인위적 과제를 주어 스스로 발전해 가는 데 필요한 여지까지
빼앗는 게 문제입니다. 요즘의 부모들은 많은 교육을 받은 사람들이라 그런지, 아이들과
대화하면서 한 마디도 지지 않고 끝까지 따지고, 몰아붙여서 아이들을 격파(?)해야 속이 풀리는 이들이 종종 있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아이들을 이기는 것이 진정으로 이기는 것이 아님을 곧
깨닫게 됩니다. 아이들과 우연히 나누게 되는 일상적인 대화에서조차 아이들을 좌지우지 하려는 태도가 무심결에 드러나는데, 이것은 하나님이 하나님이 정하신 속도에 맞춰 아이들의 삶을
꾸려 나가시도록 하는 것을 막는 일입니다.
다시 말해서, 아이의 평생을 하나님께 드린다 함은 아이의 성장과정 순간순간을 하나님의 시간 스케줄에 맡겨 드린다는 것입니다. 짐승들은 난지 1-2년만 되면 벌써 어른이 되어
돌아 다닙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사람은 그렇게 만들지 않으셨습니다. 유아기, 어린이, 청소년, 청년, 장년의 일정한 시간을 거치게 만드신 데에는 다 이유가 있습니다. 어린이 때, 청소년 때,
청년 때, 결혼해서 만나는 하나님이 다 따로 있는 것입니다. 그 때 그 때 느끼고, 생각해야 하는
것들이 다 있는 것입니다. 영화나 책을 중간 것을 건너 뛰어서 보면 뭐가 뭔지 감을 못 잡듯이,
너무 영재교육이니 뭐다 해서 아이들의 교육을 초스피드로 밀어 붙이면 정상적으로 건강한
인격체가 만들어 지기가 힘이 듭니다. 그러니까, 요즘 몸은 어른인데 인격은 어린애같이 철없는 소위 “피터팬 신드롬”의 사람들이 많은 것입니다. 우리는 항상 결론이 중요하다는 식의 교육을
합니다. “술, 담배, 도박” 같은 것도 “그건 네가 어른이 되면 다 할 수 있어”라고 한다거나,
“여자는 네가 성공만 하면 한 트럭은 줄을 선다”는 말을 툭툭 하지 않습니까? 어릴 때부터 술과
담배가 해로운 이유를 제대로 설명해 주고, 바른 성경적 결혼관을 차근히 이해시켜 가야 하지
않겠습니까? 끝도 중요하지만 과정이 더 중요합니다. 하나님이 정해 놓으신 아이의 인생
순간순간을 축복하고 엔죠이하며, 기다리는 부모가 되야 합니다.
또한, 아이의 평생을 하나님께 드린다 함은, 이 아이가 하나님의 아이이기에, 하나님의 생각을 하고, 하나님의 법대로 살며, 하나님이 주신 재능대로, 하나님이 원하시는
곳에서, 하나님이 명하신 일을, 하나님의 시간에 할 수 있도록 해 주는 것입니다.
어떻게 보면, 아이를 그냥 무책임하게 방치하는게 아니냐는 느낌이 들지만, 그냥 대책없이
버려두는게 아니라 하나님의 사람으로 만들어서 책임 있는 자유인(自由人)으로 살 수 있게
놓아 준다는 뜻입니다. 부모로써 우리의 고민은 왜 내 뜻대로 아이가 잘 안 따라와 줄까가 아니라,
“과연 하나님이 이 아이에게 원하시는 것을 내가 잘 이해하고 있는 부모일까?” 이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자녀를 위해 기도할 때 우리는 말하기보다 듣는 것을 많이 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음성에 귀를 귀울이면서, 아이의 말, 행동, 아이의 인생 속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을 잘 관찰해야
합니다. 미국의 한 유명한 출판사의 저명한 여사장은 자신의 어린 시절을 이렇게 회고했습니다. 자신은 꼬마 때부터 눈에 보이는 모든 책은 붙들고 앉아서 시간 가는줄 모르고 읽을 정도로 책을 좋아했는데, 책을 좋아하는 아이들이 대게 내성적이고 사람들과 어울리기 싫어하기 쉬운데,
자기는 책을 내려놓고 나면 친구들을 이끄는 골목대장 노릇을 했다고 말입니다. 그때 그 부모가 늘 이렇게 말해줬다고 합니다. “너는 언제나 책을 읽지 않으면 남들의 리더가 되어 이끌고 있다 (You are always reading or leading).” 그러니까 너는 커서도 두 개를 동시에 할 수 있는 사람이 될 거야.” 그리고, 진짜 그 말대로 이 여자 아이는 책을 출판하는 회사의 리더가 된 것입니다.
세상이 급변하고 있습니다. 부모 세대가 살던 세상과는 너무나 달라져 있고, 앞으로도 예측
불허로 달라질 것임을 인정합시다. 그러므로 역사의 주인이시며, 미래의 주인이신 하나님께
기도해서 자녀의 앞길을, 방향을 결정하는 겸손과 여유를 가지도록 합시다. 그것이 비전의
기도를 드리는 부모의 자세입니다.